'1100만 영화'가 소환한 충신 엄흥도…울산 '원강서원비' 이전 딜레마

영화 '왕사남' 흥행에 단종 시신 거둔 충신 엄흥도 재조명
일부 주민들 '원강서원비로 재산권 침해' 민원…"요즘엔…"

울산 울주군 삼동면 원강서원과 증공조참판엄공원강서원비.2026.3.11/뉴스1ⓒ 뉴스1 박정현 기자

(울산=뉴스1) 박정현 기자 =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누적 관객 수 1000만 명을 돌파하며 단종과 엄흥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겁다. 이와 함께 울산에 위치한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비석이 주목받고 있으나, 비석의 보존과 이전 문제로 지자체와 문중, 지역 주민 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1일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등에 따르면 엄흥도는 단종이 세조에 의해 영월에 유배되었을 때 그 지역의 호장이었다. 1457년 단종이 영월에서 죽자, 엄흥도는 그 시신을 수습해 지금의 장릉자리에 몰래 장사 지낸 후 세조의 보복이 두려워 종적을 감췄다.

이후 엄흥도와 그의 후손은 충남 공주와 경북 문경·군위 등을 거쳐 울산에 숨어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98년 단종이 복위되면서 그의 명예도 회복됐다.

울산에 정착한 후손들은 1799년 온산읍 대정리에 사당인 '원강사'를 세워 엄흥도의 제사를 지내오다 유림의 의견에 따라 1817년 이곳을 '원강서원'으로 승격시켰으며, 1820년 이를 기리는 비석을 세웠다.

이 비석의 글은 홍문관 제학 조진관이 지었고, 동부승지 이익회가 글씨를 썼다. 특히 앞면에 새겨진 비의 명칭은 당시 명필로 이름을 날리던 이조판서 이조원이 직접 쓴 것으로, 서예와 미술사적 가치도 매우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원강서원과 비석은 1994년 온산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현재 위치인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하작마을로 옮겨졌다. 1998년 이 비석은 '증공조참판 엄공 원강서원비'라는 명칭으로 울산시 지정 문화유산 제10호로 등록됐다.

다만 지정에 따라 문화유산 반경 500m 이내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묶이면서 인근 주민들이 재산권 침해를 주장하며 서원 이전을 요구했다. 이에 울산시는 지난해 3월 해당 비석을 '울산박물관'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문중 측에 제시했지만,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마을 주민은 "최근 영화 흥행 덕분인지 비석을 찾아오는 사람이 늘었다"면서도 "과거엔 비석을 옮겨달라는 요구가 있었는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울산시 관계자는 "비석은 울산의 문화유산이지만, 영월 엄씨 문중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다"며 "현재 문중이 이전을 원하지 않고 있어, 관광 자원화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niw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