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 영화읽기]인사이드 아웃-기쁨이 슬픔과 함께 할 때

(울산=뉴스1) 이상길 기자 = 내가 생애 처음 '슬픔'이란 감정을 접하게 된 건 아주 어렸을 적 엄마와 떨어졌을 때였다. 그 때 당시 난 엄마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슬퍼서 막 울어재꼈다.

물론 더 어렸을 적엔 배고파서 슬퍼 울기도 했겠지만 그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슬픔이란 감정은 충격적이다. 이후로도 슬픔은 언제나 견고하게 쌓아온 일상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어떤 슬픔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슬픔은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었다. 슬픔이 싫어 거부해도 그것은 일상처럼 늘 반복됐다. 다만 그 크기가 다를 뿐.

그래도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슬픔에 조금 익숙해지는 것 같긴 했다. 아마도 그 즈음 비가 좋아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릴 때는 화창한 날이 좋았는데 조금씩 커가면서 비오는 날도 좋아졌다.

비오는 날엔 꾹꾹 눌러왔던 슬픔들이 빗줄기를 타고 조용히 새어나왔고 비로 흠뻑 젖은 세상은 마치 내 슬픔을 대신 울어주는 것만 같았다.

비를 통해 때론 전혀 깨닫지 못했던 슬픔이 내안에 있다는 걸 알게 된 적도 있었다.

어른이 되니 슬픔은 내 삶에서 더욱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부모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홀로 서기 시작하니 다양한 고통들이 엄습했고, 고통은 대부분 슬픔으로 이어졌다.

어른이 되니 슬픈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건 상대적으로 기쁜 일들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어릴 적엔 크리스마스 시즌만 다가와도 기뻤는데 지금은 그저 무덤덤하다. 이제 기쁨은 오직 성취에서만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지독한 경쟁 속에서 무언가를 이루기는 어려운 일이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슬픔과 더욱 가까워지게 된 듯하다.

아마 그 때쯤 사랑에 기대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은 더 큰 슬픔을 가져다줬다.

슬픔이 깊어지면 우울증이라는 덩어리가 마음속에 생긴다. 그때는 정말이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어떤 의지나 의욕도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삶 전체가 그저 슬픔에 질질 끌려 다녔다. 아니, 바닥에 드러누운 슬픔을 힘겹게 끌고 다녔다.

난 지금도 내가 가진 감정들 중에 슬픔이 가장 싫다.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아직도 슬픈 일이 불현듯 나를 엄습할까 두렵다.

하지만 슬픔은 반드시 슬픈 일로 연해서만 생기는 건 아니다. 추억 속에도 슬픔은 있다. 지난 상처나 아쉬움에 문득 슬퍼지기도 한다. 물론 나만 그런 건 아닐 테다.

하지만 그래서 그런가. 나이를 먹어가니 그토록 싫은 슬픔이지만 슬픔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는 걸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다.

기쁠 때는 나만 생각했던 내가 슬플 때는 주위를 둘러보게 되더라.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처투성이인 채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인간에 대한 연민도 생겼다.

슬픔에 젖었을 때 다른 이들의 위로를 통해 행복을 느끼기도 했고, 슬픔을 통해 행복의 문은 사실 대단히 넓다는 것도 알게 됐다.

뭔가를 이루지 않아도 슬프지만 않으면 행복하더라.

몸에 좋은 약은 쓰다고 했던가. 그토록 싫은 슬픔이지만 결국 슬픔이 없었다면 난 더욱 교만해졌을 테다.

그런 거 같다. 다이아몬드처럼 귀한 행복은 질투를 유발하고 우리를 갈기갈기 찢어놓지만 돌처럼 흔한 고통은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구인들은 자연재해라는 거대한 슬픔이 생겼을 때만 서로 하나가 돼 왔다. ​

우릴 성숙하게 만드는 건 기쁨이 아니다. 슬픔이다.

기쁨(Joy), 슬픔(Sadness), 버럭(Anger), 까칠(Disgust), 소심(Fear)이라는 다섯 가지 감정을 의인화한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주인공은 사실 '슬픔'이다.

모든 사건은 슬픔으로 인해 발생했고, 나머지 감정인 기쁨과 버럭, 까칠, 소심은 슬픔이 친 사고를 수습하느라 바쁘다. 내가 그랬듯 우리들 삶에서 슬픔의 위력은 그만큼 엄청나다.

때문에 영화 속에서도 기쁨은 슬픔을 자꾸만 가둬 두려 한다. 하지만 슬픔은 시도 때도 없이 스며들어 전체를 뒤흔든다.

당연히 슬픔은 기쁨과 버럭, 까칠, 소심에게는 경계 대상이자 애물단지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어린 라일리(케이틀린 디아스)의 감정본부를 벗어나 길을 잃은 기쁨(에이미 포엘러)은 슬픔(필리스 스미스)과의 동반여행을 통해 슬픔의 가치를 조금씩 깨달아 간다.

라일리가 행복하기만 바랐던 기쁨이었지만 때론 슬픔을 거쳐야 행복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라일리가 그러했듯 우리도 그렇게 성장해간다. 울면서 태어난 우리는 죽을 때도 주변을 울리면서 간다.

산다는 건 어쩌면 슬픔의 존재를 이해하는 긴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미국 소설가 '펄벅'도 말했다.

"슬픔 속에는 연금술이 있다."

lucas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