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 영화읽기]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예술과 외설의 차이

(울산=뉴스1) 이상길 기자 = 개그맨 김제동씨가 예전에 한 토크쇼에 나와 포르노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풀어놓은 적이 있었다.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포르노가 나쁜 이유는 과정이 생략됐기 때문이다. 남녀가 서로 사랑해서 섹스를 하기까지는 힘든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포르노는 그 과정이 생략돼 있다. 그래서 자칫 성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

김제동씨가 말하는 힘든 과정이라면 보통 여자의 경우 자신의 몸을 허락하기까지 남자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을 말할 테고, 남자는 거절당할까봐 가슴 졸이면서도 용기를 낼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을 의미하지 않을까.

물론 시대가 바뀌면서 그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남녀가 잠자리를 같이 하려면 어느 정도의 과정은 필수다. 하지만 김제동씨의 말대로 포르노는 보통 그게 생략돼 있다. 무조건 벗고 본다.

그러한 과정은 현실을 벗어난 가상의 이야기에서도 꽤 중요하다. 똑같이 벗고 뒹굴더라도 과정이 있고 없고는 천지 차이다. 소위 야동 좀 보는 남정네들 사이에서는 그걸 전문용어로 '벗는 이유'라고 말한다.

섹스를 하려면 흥분이라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무조건 벗고 보는 포르노는 벗는 이유가 없어 때론 무미건조하다. 설령 이유가 있더라도 현실적으로 개연성이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른 남정네들 사이에서는 "포르노보다 3류 에로영화가 더 재밌다"는 탄식이 가끔 터져 나오기도 한다.

적나라한 면은 에로영화가 좀 떨어지지만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벗는 이유는 예술과 외설을 구분 짓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성기노출 등 적나라한 정도를 기준으로 알고 있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가령 '라스트 폰트리에' 감독의 <안티크라이스트>란 작품을 보면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성기노출은 물론 삽입장면까지 노골적으로 보여주지만 아무도 그 영화를 외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영화는 너무 심오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술성이 높다. 영화 전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초반의 적나라한 정사신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관객들을 흥분시키려하기 보다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필요한 정사신이라서 그렇겠지만 넓게 보면 결국 벗는 이유가 분명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개봉하자마자 수위 높은 베드신으로 외설 논란까지 불러일으키며 세간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문제작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이처럼 '벗는 이유'를 기준으로 한번 평가해보자.

물론 순전히 내 개인적인 평가일 뿐임을 미리 밝혀둔다. 과연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예술일까 외설일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크리스찬 그레이(제이미 도넌)는 모든 걸 다 가진 남자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중견기업 CEO가 된 그는 어느 날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아나스타샤(타코다 존슨)라는 여대생을 만나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다. 아나스타샤 역시 크리스찬의 숨 막히는 매력에 순식간에 그에게 빠져든다.

그런데 크리스찬에게는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있었다. 바로 변태성욕자였던 것. 몇 차례의 만남 이후 크리스찬은 아나스타샤에게 자신의 서브미시브(성적 노예)가 되어달라고 요청한다.

아나스타샤는 고민에 빠진다. 첫눈에 반한 크리스찬이 너무 좋지만 그의 변태성욕이 두려웠던 것. 게다가 아나스타샤는 아직 처녀였다.

때문에 서브미시브 계약서를 작성하자는 크리스찬의 제안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일종의 사전 체험 형식으로 그의 서브미시브가 되어 변태적이면서도 격렬한 섹스를 수차례 경험하게 된다.

영화가 워낙 야하다보니 자연스레 정사신에 우선 현혹될 수밖에 없지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부분은 사실 여자를 대하는 크리스찬의 독특한 태도다.

크리스찬도 분명 아나스타샤를 좋아하지만 그는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그녀를 함부로 대한다. 늘 명령조다.

모든 걸 다 가진 남자라서 생기는 자신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만 보기엔 조금 이상하다. 크리스찬이 자신의 사랑을 원하는 아나스타샤에게 말한다.

"내 취향은 분명해. 나는 로맨스를 하지 않아. 사랑을 속삭이지도 않아. 그냥 관계를 가질 뿐이야."

이쯤에서 '사랑'과 '섹스'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섹스에 대한 남녀 간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여자에게 있어 섹스는 사랑의 한 모습이자 과정일 뿐이지만 남자는 넘치는 성욕으로 그것이 사랑의 목적이나 결론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남녀 간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만큼 그것을 탓하기도 어렵다. 인류 종족번식의 근본적인 원동력이 남자들의 넘치는 성욕에 있다고 말하면 웃을 텐가.

그러한 차이로 인해 섹스에 두는 의미도 남녀 간에는 차이가 있다. 즉, 여자는 사랑해야만 할 수 있는 편이지만 남자는 사랑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편이다.

어떻게 아냐고? 남자가 마흔이 넘으면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뭘 새삼스럽게.

아무튼 이 지점에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바로 아나스타샤와 오로지 변태적인 섹스만을 원하는 크리스찬의 마음은 어느 쪽일까라는 점이다.

아나스타샤가 크리스찬을 진심으로 사랑하듯 그도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일까. 아니면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변태적인 섹스만을 원했던 것일까.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대번에 튀어나온다. "크리스찬도 아나스타샤를 진심으로 사랑했어!"라고.

아나스타샤를 바라보는 크리스찬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친절하게도 크리스찬이 그렇게 변태성욕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의 과거를 통해 제시한다.

김제동씨의 말처럼 그는 남녀가 사랑해서 잠자리까지 같이 하기까지의 힘든 과정은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허나 개인적으로는 다른 이유까지 생각해보게 됐다. 처음부터 상처를 갖고 태어난 크리스찬은 상처받는 게 너무도 두려워서 좋아하는 여자가 생겨도 육체적인 섹스만을 원했던 건 아닐까.

다시 말해 상처받기 싫어 마음까지는 주지 않으려고 했던 것. 그러한 태도는 현실에서도 흔한 일 아닌가.

아무튼 그 관점에서 보면 아나스타샤를 대하는 크리스찬의 이상한 행동들도 대부분 설명이 된다. 후반부에 벌을 주겠다고 채찍으로 그녀를 때리게 된 것도 자꾸만 마음이 가면서 힘들어지자 그랬던 게 아닐까.

원래 사랑이란 게 검(劍)과 같다. 상대방이든 자신이든 상처를 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상처를 두려워하는 겁쟁이는 검을 들 수 없듯이 사랑도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던 아나스타샤에 비해 크리스찬은 그러질 못했다.

변태 성행위로 가득 차 있지만 이제 이 영화가 점점 예술작품으로 보이지 않는가.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초반 몇 장면을 빼고 크리스찬과 아나스타샤의 베드신은 거듭될수록 슬퍼지더라.

사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가 가진 성적 취향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아나스타샤의 아픔과 마찬가지로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성적 취향으로 괴로워하는 크리스찬의 슬픔이 동시에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게 원래 그렇다. 그나 그녀의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헤어지고 만다.

변태성행위보다는 로맨스를 원하는 아나스타샤가 크리스찬에게 "왜 이렇게 사랑을 해야 하냐"고 묻는다.

크리스찬이 울부짓듯 외친다. "나란 인간은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이쯤 되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변태성행위가 주된 소재로 등장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설명됐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벗는 이유가 비교적 명확하고 개연성도 충분하지 않나.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영화 밖으로 나와 왜 이렇게 낯 뜨거운 정사신을 소재로 하는 영화가 만들어 졌을까라는 질문도 한번 던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속된 말로 원작소설의 작가든, 이 영화의 감독이든 당연히 외설논란이 일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왜 등장인물들을 마구 벗겼을까.

물론 원작소설이 출간 석 달 만에 2000만부 넘게 팔린 만큼 상업적인 이유를 배제할 수 없지만 작품만을 두고 봤을 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사회비판의식이 어느 정도 탑재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가식과 위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이성은 위대하지만 결코 본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아니, 본능이 먼저고 이성은 언제나 그 다음이다. 원래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들은 스스로 본능에서 자유로운 척 한다. 남들 앞에서는 늘 가식과 위선을 떤다. 그러한 가식과 위선은 식욕보다 성욕이 특히 심하다. 먹는 이야기는 자유롭게 하는데 하는 이야기는 쉬쉬한다.

자기는 섹스에 관심 없는 척 하려 안간 힘을 쓴다. 크리스찬처럼 사회 지도층일수록 더욱 심하다. 하지만 성욕은 종교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인간이란 것 자체가 성욕으로 인해 태어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러한 가식과 위선 때문에 대부분의 인간은 변태가 될 수밖에 없다. 남들 앞에서는 근엄한 척, 고상한 척 하지만 남들 눈을 피해서는 본능 앞에 과감하게 굴복하며 전혀 다른 모습을 행사한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변태성욕자 크리스찬은 솔직해서 차라리 인간적이다.

원래 파격적이지 않으면 작가가 될 수 없다. 어쩌면 주인공의 이름이 기독교 성도를 뜻하는 '크리스찬'인 건 이성으로 본능을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적 금욕주의를 작가가 비꼬고 있는 건 아닐지.

더불어 풀 네임이 '크리스찬 그레이'인 건 순백(White)의 크리스찬도 사실은 회색의 그레이(Grey)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는 아닐까.

인간은 누구나 회색이다. 백색인간은 없다. 태양이 존재하는 이상 인간에겐 모두 그림자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예술과 외설도 종이 한 장 차이다. 다시 말해 생각하기 나름이다. 포르노란 게 벗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지만 요즘 세태도 거의 포르노 수준 아닌가.

이미 세대를 초월해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섹스를 할 수 있다는 주의로 점점 변해가고 있다. 그렇게 현실과 맞닿아있다면 포르노도 가끔은 예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엄연한 현실이자 진실이면서도 남들 보기 부끄럽다고 억지로 숨기려 하는 우리 사회구조가 더 문제가 아닐까.

저도 그렇게 살면서 자기는 안 그런 척 하는 소위 '양반근성'이 포르노보다 우리 사회를 더 좀먹는다는 이야기다.

그런 심각한 변태들이 돈과 권력을 가졌을 때 비밀은 많아지고 국민들의 알 권리는 더욱 침해받기 마련이다.

수년 전 '메가쇼킹 만화가'란 필명의 한 만화가가 모 스포츠 신문에 연재했던 작품 중 <애욕전선 이상없다>라는 카툰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즐겨봤었는데 너무 쇼킹해서 처음에는 '뭐 이런 울트라 저질 만화가 다 있나'라는 식으로 비웃었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계속되는 거침없는 음담패설에 한편으로는 속 시원한 그 무언가를 느끼기도 했다.

특히 마지막 회에서 작가가 자기 만화의 캐릭터로 등장해 날렸던 마지막 대사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감동을 주었는데 그동안 왜 그렇게 저질적인 만화를 그렸는가에 대한 이유를 그는 이렇게 밝히면서 마무리를 지었다.

"우리 모두가 가식과 위선을 1그램씩만 버린다면 세상이 좀 더 뽀송뽀송 즐거워지지 않을까요."

2월25일 개봉. 러닝타임 125분.

lucas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