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 영화읽기]호빗3-가장 위대한 판타지, 막을 내리다

(울산=뉴스1) 이상길 기자 = <호빗>과 <반지의 제왕>의 원작자인 'J.R.R톨킨'과 <나니아 연대기>를 지은 'C.S.루이스' 간의 우정은 세계 판타지 문학사에 아주 의미 있는 일이었다.

1926년 5월11일 영국 옥스퍼드 대학 영문과 교수 다과회에서 처음 만난 톨킨과 루이스는 이후 문학작품 낭독모임인 '잉클리즈'에서 함께 활동하며 우정을 쌓아 나갔다.

'잉클리즈'라는 모임이 중요한 건 그 모임을 통해 톨킨은 <호빗>을 처음 낭송했고,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결국 톨킨은 1937년 9월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호빗>을 책으로 출간했다. 1940년대에 접어들자 톨킨은 <호빗>의 후속작인 <반지의 제왕> 집필에 몰두하게 된다.

자그마치 15년이 넘는 시간을 들여 톨킨은 마침내 세권으로 이뤄진 <반지의 제왕>을 완성하게 된다. 비슷한 무렵 루이스도 자신의 역작인 <나니아 연대기>를 발표한다.

이후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는 세계 판타지 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것은 두 작품의 저자들도 서로 인정했다. 톨킨은 친구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지만 루이스는 그렇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나니아 연대기>를 발표한 1949년 친구 톨킨의 <반지의 제왕> 원고를 처음 접한 루이스는 톨킨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친애하는 통행요금 징수원씨. 정말 훌륭하네. 내 오랜 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한 물이었어. 작품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늘어나는 웅장함과 두려움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스토리 아트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었네. 나는 <반지의 제왕>이 두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어 뛰어나다고 생각하네. 하나는 끝없이 풍부한 자원에 바탕을 둔 것 같은 완전한 제2의 창조의 건설이고, 다른 하나는 진지함이네. 축하하네. 자네가 <반지의 제왕>에 쏟아 부은 그 오랜 세월은 결코 헛된 세월이 아니었네."

우선 그는 다양한 종족들이 존재하는 중간계라는 세계를 통해 만물이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세계를 창조해냈다.

그의 판타지 세계에 인간중심적인 편견은 없었다. 다시 말해 인간도 그냥 하나의 종족일 뿐이었다.

중간계에는 인간을 비롯해 엘프, 드워프, 오크, 앤트, 언데드, 드래곤(용), 마법사 그리고 호빗이 존재했다. 그렇게 그는 단순히 인간만을 보지 않았다.

그의 세상에는 인간과 동·식물을 넘어 우리의 영적인 세계를 지배하는 천사와 악마까지도 같이 공존하는 것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전 산업문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해 인간이 서서히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오로지 인간 자신의 이기심과 탐욕에만 빠져들기 시작하던 때 그는 오히려 그것을 경계하고 만물에 대해 깊은 애정을 보였던 것이다.

우선 <호빗>과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종족들은 현실세계와 깊은 연관을 맺으며 나름의 상징성을 띤다.

먼저 천상계에서 중간계로 내려온 천사 '엘프'는 신(神)의 대리인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난장이족으로 광부인 '드워프'는 부를 추구하는 종족이다.

'오크'는 타락한 엘프들로 흉측한 모습만큼 악의 무리를 의미한다. 나무를 지키는 종족인 '앤트'는 자연을, '언데드'는 유령을 각각 의미하고, 불을 뿜는 '드래곤(용)'은 자연재해 같은 재앙을 상징한다.

중간계에 5명 존재하는 '마법사'는 천상계에서 중간계의 질서를 위해 보낸 이들로 현자(賢者)나 선지자(先知者)를 의미한다. 현실세계로 치면 소위 성인(聖人)이나 위인(偉人)으로 보면 되겠다.

마지막으로 '호빗'이 남는데 아마도 톨킨은 몸집은 작지만 인간과 외모가 몹시도 닮은 호빗을 통해 새로운 인간상을 구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톨킨이 구현하고자 했던 새로운 인간상이란 돈과 권력의 유혹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인간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호빗>은 호빗 종족인 주인공 빌보 베긴스의 모험을 통해 금은보화에 집착하는 드워프 종족에게 깨달음을 주는 스토리가 골격이고, <반지의 제왕>은 빌보의 조카인 프로도 베긴스가 절대반지를 버리러 가는 기나긴 여정을 통해 권력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을 담아냈다.

호빗 종족의 몸집을 외소하게 설정했던 건 외형보다는 신념이나 용기와 같은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아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전지전능한 신(神)들은 각 종족들이 어울려 사는 중간계에 11개의 반지를 만들어 주면서 자기 종족들을 통치하게 만들었고, 신들이 선물한 그 반지가 바로 권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러 신들 가운데 사우론은 유독 악의 힘에 더 끌렸고, 스스로 타락해 중간계로 내쫓긴 뒤 그 곳을 차지하기 위해 11개의 반지를 지배할 수 있는 '절대반지'를 만든다.

그게 바로 모든 권력을 지배할 수 있는 '절대권력'을 뜻하고 그 절대반지를 우연히 손에 넣게 되면서 주인공 프로도(일라이저 우드)의 기나긴 여정이 시작된다.

이처럼 그가 권력의 실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은 인간 세상에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

통치와 억압은 다르겠지만 모든 권력은 그 근본이 악할 수밖에 없다는 것. 때문에 스위스 근대문학사학자인 부르크하르트도 "권력은 어떠한 자가 행사한다 해도 그것 자체가 악"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권력과 인간의 관계를 골룸(앤디 서키스)이란 존재를 통해 잘 담아내고 있다.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골룸도 원래는 주인공 프로도처럼 착하고 순수한 호빗족이었다.

하지만 친구와 연못에서 낚시를 하다 우연히 절대반지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뺐으려 친구까지 죽이면서 종족으로부터 추방당한다.

이후 골룸은 깊고 깊은 동굴 속에서 외롭게 혼자 살며 철저히 절대반지의 노예가 되어 간다. 외모 역시 절대반지를 바라보는 눈만 커다란 괴물로 변해갔고 식성도 빵 대신 육식으로 바뀌어갔다.

주변에 사람이 붐비지만 스스로는 철저히 외로울 수밖에 없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도 골룸처럼 권력의 노예로 전락한다.

하지만 주인공 프로도는 반지소유자가 아닌 '반지운반자'였다. 그에게 절대반지는 권리가 아니라 의무였던 것.

영화상에서는 절대반지가 파괴되면서 중간계에 평화가 찾아오지만 인간세상에서 필요악인 권력이 사라질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인간세상에서도 권력을 누가 운반하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고, 권력을 갖는다는 게 기쁨이 아니라 의무감으로 고통일 때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그는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톨킨은 1차 세계대전 참전자였다. 1914년 사관학교 후보생이 된 그는 1916년 하급장교로 솜 전투에 참전했는데 이 전투에서 6만 여명의 영국군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때문에 일부 비평가들은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전쟁에 대한 참혹한 묘사와 어두운 색채가 이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로부터 30여년 뒤 톨킨은 이번엔 자신의 아들을 2차 세계대전에 참전시키게 된다. 당시 부자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반지의 제왕>에 대해 견해를 나눴다고 한다.

결국 <반지의 제왕>에서 악의 정점에 선 사우론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던 독일의 '히틀러'를 염두에 둔 것이었고, <반지의 제왕>이라는 작품은 아들을 전장에 보낼 수밖에 없도록 만든 권력이라는 절대악에 대한 한풀이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호빗>에서 스마우그(용)에게 빼앗긴 에레보르를 찾기 위해 난장이 동료들과 마법사 간달프, 그리고 빌보와 함께 원정에 나섰던 난장이족 왕자 소린. 그는 마침내 에레보르를 되찾지만 그곳 보물들로 인해 선친들처럼 탐욕에 눈이 멀게 된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던 빌보는 위험한 결정까지 내리며 소린이 이성을 되찾도록 애를 쓰지만 탐욕의 병은 갈수록 더해간다.

하지만 전쟁이 벌어지면서 소린은 보물보다 생명이 더 소중하다는 걸 결국 깨닫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소린이 제정신이 들도록 만든 계기가 됐던 건 빌보의 손바닥에 놓인 작은 도토리였다.

빌보는 에레보르의 보물보다는 그것을 고향에 가져가 심고 싶다고 참나무 방패 소린에게 말한다.

빌보가 자신이 그토록 찾던 아르켄스톤을 훔친 도둑이라 생각했던 소린은 그의 소박함에 감동을 받게 되고, 전쟁에서 승리한 뒤 빌보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황금보다 나무를 더 소중히 여긴다면 세상이 더욱 아름다워질 거야."

하지만 그것의 영화화는 한참 뒤에나 이뤄졌다. 영화로 만들기만 하면 소위 대박이 터질거라 누구나 믿었지만 방대한 스케일의 전투신과 다양한 캐릭터들을 스크린에 구현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

결국 CG기술이 충분히 발달하고 난 뒤에야 '피터 잭슨'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반지의 제왕>시리즈 1편이 2001년 개봉됐고,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호빗>시리즈 3편까지 모두 막을 내렸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판타지 영화가 결국 막을 내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영화화가 되기 전까지 <반지의 제왕>이란 작품을 알지 못했다. 더불어 원작자인 톨킨이 누군지도 몰랐다.

하지만 피터 잭슨 감독에 의해 영화화가 되면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판타지 작품을 접하게 됐고, <반지의 제왕> 평생 팬이 되어 버렸다.

<반지의 제왕>시리즈는 지난 10여 년 동안 벌써 10번은 넘게 본 것 같다. 1년에 한번 꼴로 다시 본 셈.

그런데 이상한 건 횟수를 거듭할수록 영화나 그것을 이뤄낸 피터 잭슨 감독에 대한 경외심이 점점 원작자인 톨킨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언제부턴가 나 역시 그를 숭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거대한 세계를 혼자 창조해낼 수 있었을까.

톨킨이 말했다고 한다. <반지의 제왕>을 쓴 건 1·2차 세계대전으로 지친 영국 국민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이제 와 생각하면 너무 소박한 이야기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당신으로 인해 삶에 지친 내 중년까지 위로받고 있다면 톨킨이 웃어줄까.

17일 개봉. 러닝타임 144분.

lucas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