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 영화읽기]하울의 움직이는 성-저주, 마음으로 풀다

(울산=뉴스1) 이상길 기자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서 '저주'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비슷한 요소로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마법'보다도 비중이 더 크다.

마법이 동심을 자극한다면 저주는 현실을 직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인류를 위협하는 전쟁이나 환경오염을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로 풀이했고, 심지어 사람이 점점 나빠지는 것도 저주에 걸렸기 때문으로 봤다.

그의 그러한 태도는 <원령공주>를 거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지나 2004년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리고 그는 그 작품을 통해 그 모든 저주들의 근본적인 원인을 주인공 하울(키무라 다쿠야)이 걸린 저주로 담아내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부재'였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마법사 하울은 괴상망측하게 생겨먹은 움직이는 성(城)에 산다. 그 성은 외관도 그렇지만 내부는 무지하게 지저분했다.

성 안에는 성을 움직이는 동력인 불덩이 캘스퍼(가슈인 타츠야)와 꼬마 마법사 마르클(카미키 류노스케)이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캘스퍼는 사실 하울의 심장, 즉 마음이었다. 어렸을 적 하울은 이름 모를 들판에서 마음과 몸이 분리되는 저주에 걸려 심장을 토해내게 되고, 그것이 캘스퍼가 돼 하울의 성을 지킨다. 하울은 그렇게 늘 마음을 성에 두고 외출했다.

비록 성은 청소를 안 해 지저분했지만 하울은 초절정 꽃미남이었다. 어차피 남에게 보여지는 건 외모였기 때문에 하울은 마음을 두고 온 성이 지저분해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외모만을 가꿨다.

그런 하울은 매일 밤 전쟁터로 향했다. 흉측한 모습의 새로 변해 전장을 누비며 폭탄을 제거하고자 했다.

그런 어느 날 하울의 성에 마음씨 착한 소피(바이쇼 치에코)가 입성한다.

어린 소녀였던 소피는 황무지 마녀의 저주로 순식간에 할머니가 되어 버렸고, 집을 나와 지낼 곳을 찾다가 우연히 하울의 성에 당도하게 된다.

소피는 소녀일 때 하울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마음이 예쁜 소피는 지저분한 성을 청소하는 것부터 시작해 마음과 몸이 분리되어버린 하울의 저주를 풀어주기 위해 애를 쓴다.

학교에서부터 우리가 겪는 세상은 거의 전쟁터다. 상대방을 밟고 일어서야지만 내가 살 수 있다는 논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미 그 때부터 인간의 마음은 몸과 분리된다. 소위 하울의 저주에 걸리게 된다. 하울처럼 마음은 늘 자신의 성에 두고 외출한다.

전쟁터 같이 잔인한 세상에 마음까지 갖고 가기는 당연히 부담스러울 터. 그래서 세상 속에 나가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려고 하지도 않을 뿐더러 알아도 겉으로 표출하기 힘들다.

마음을 집에 두고 온 탓이다. 대신 남에게 보여 지는 외모나 피상적인 이미지에는 혼신을 다한다.

때문에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할머니가 된 소피의 따뜻한 마음과 사랑은 세상을 치유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극중에서 소피는 외모에는 무감각한 마음이 예쁜 소녀다. 자신이 예쁜지조차 모르는 순수한 소녀다.

그녀는 성형수술과 치장으로 떡칠한 황무지 마녀의 저주에 걸려 할머니로 변하게 되지만 크게 낙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외모는 할머니로 변했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예뻤던 소피는 사랑으로 하울이 걸린 저주를 결국 풀어준다. 하울 역시 소피에 대한 사랑을 조금씩 표현하면서 그녀가 걸린 저주를 풀어주게 된다.

아니, 전쟁을 비롯한 모든 난장판은 '마음'이라는 마법을 통해 치유된다.

마지막에 소피의 도움으로 어린 시절 자신의 몸에서 분리됐던 캘스퍼를 다시 삼키게 된 하울은 잃었던 정신을 찾게 되고 소피에게 "몸이 왜 이렇게 돌덩이처럼 무겁지"라고 묻는다. 그러자 소피가 말한다. "마음은 원래 무거운 거야."

그보다 앞서 캘스퍼의 대사가 더 의미심장하다. 하울의 저주를 풀어주기 위해 황무지 마녀로부터 캘스퍼를 돌려받은 소피는 그것이 여전히 따뜻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캘스퍼가 대답한다.

"어린 시절 그대로거든."

4일 재개봉. 러닝타임 1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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