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 영화읽기]오블리비언-톰 크루즈, 반란을 꿈꾸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통해 생각하는 나는 확실히 존재한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 그는 세상 모든 것의 존재를 의심했지만 의심하고 있는 자신의 존재만큼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먹고 사는 것도 벅찬데 내가 보고 만지며 듣고 느끼는 세상의 존재여부를 의심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고 인식하는지의 문제는 철학의 오랜 명제였다.
종교도 그러한 고민과 결코 무관하지 않고, 과학의 궁극적인 목표도 그것에 있다.
알다시피 여태껏 이 지구에서의 대세는 신(神)이 인간을 만들어 우리가 존재하고, 신체 일부기관인 뇌와 감각기관을 통해 사물을 인식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전자의 믿음 때문에 인간은 지구를 넘어 이 우주 전체에서 아주 특별한 존재가 됐고, 후자의 방식대로 세상을 보고 느끼면서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됐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 그러한 기존 질서를 거부하는 움직임들이 많이 일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오블리비언>의 주인공 '톰 크루즈'가 심취해 있는 신흥종교 '사이언톨로지(scientology)'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톰 크루즈 데뷔 30주년 기념작인 <오블리비언>은 대단히 종교적이면서도 철학적이다. 그 배경에는 그가 믿고 있는 '사이언톨로지'란 종교가 있다.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 등 이미 영화화가 많이 된 기계와 인간 간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일견 휴머니즘에 무게가 실리는 것 같지만 <오블리비언>이 진정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사이언톨로지의 가르침과 맥을 같이 한다. 보통 이런 영화는 깊이 파고드는 게 더 재밌다.
일단 과학의 힘에 크게 의존하는 사이언톨로지는 우리를 있게 만든 존재가 신이 아니라 외계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이 나타나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고 기다린다. 비록 적으로 나오지만 <오블리비언>에서도 출처와 정체가 불분명한 외계존재가 등장한다.
문제는 영화상에서 그가 만든 복제인간들을 살아남은 인류와 자꾸만 동일선상에 놓으려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 이유는 원형의 기억과 함께 그의 영혼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것. 영혼을 갖고 있지만 복제인간이라는 이유로 처단하려 했던 1982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때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때문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영화의 결말이다.
"같은 영혼을 가진 우리는 모두가 하나"라는 식의 마지막 메시지는 모든 인간에게는 '테탄'이라 불리는 불멸의 영혼이 공통적으로 있다는 사이언톨로지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사이언톨로지는 테탄을 통해 죽음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데, 죽었어도 다시 부활하는 영화 속 복제인간은 그것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다.
거기다 톰 크루즈가 사이언톨로지의 홍보와 로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항간의 언론보도에도 주목해야 한다.
요컨대 영화 속 쟁점은 이거다.
과연 우리는 따로 존재하고, 따로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오블리비언>의 메시지처럼 공통된 영혼이 있고 그것이 인간의 육신을 빌어 복제인간처럼 끊임없이 반복되는 존재일까.
불교의 윤회사상과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지만 그 차이가 불러올 수 있는 결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
선과 악, 천당과 지옥, 너와 나, 신과 인간, 인간과 자연 등의 이분법적 논리가 지배하는 기존 기독교적 세계관보다는 후자의 전일적(全一的) 세계관이 서로 도우면서 사는 데는 더 용이하다.
모두 형제니까. 어쨌든 지구가 멸망하면 가진 거나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들은 함께 사라지게 돼 있다.
실제로 과거 주술로 배척됐던 고대의 천인합일(天人合一)적 세계관이 최근 들어 철학과 자연과학을 비롯한 거의 모든 학문의 영역에서 다시 부활하는 움직임이 많이 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것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인데 2009년 말 개봉해 전 세계적인 흥행돌풍을 일으켰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가 대표적이다.
이용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구성원으로서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판도라 행성 나비족들의 모습은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결국 교황청까지 나서 <아바타>의 세계관을 비난하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1997년 <타이타닉> 이후 10여년의 공백 기간 동안 예수의 무덤을 찾아다녔다.
그랬거나 말거나 SF영화로서 <오블리비언>은 매력이 넘치는 영화다.
외계인의 침략으로 황폐해진 지구에서 아담과 이브처럼 지구에 남은 잭(톰 크루즈)과 빅토리아(안드레아 라이즈보로)의 매혹적인 모습은 관객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또 자아를 찾아가는 잭의 여정은 풍부한 볼거리와 함께 스릴러적인 요소가 강해 마지막까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인간의 의식이 자꾸 진화해서 꼭 톰 아저씨가 믿는 사이언톨로지가 아니더라도 <오블리비언>의 메시지처럼 지구인들 모두가 서로를 같은 형제로 인식하며 도우면서 살날이 올지 말이다.
최근 들어 미국 예일대 '마노브렛' 교수 같은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은 개개인의 뇌와 신체에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사물들 사이에는 공통적인 영혼의 연결고리가 존재한다는 보고도 잇따르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은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는 건 아닐까.
물론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오블리비언>에서 주인공 잭도 생각하고 기억하면서 자아를 찾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살을 꼬집어보고서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도 한다. 인간은 때론 고통을 통해 존재를 실감하기도 한다.
때문에 결국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을까. 11일 개봉. 상영시간 124분.
lucas02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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