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시티 재발 막으려면 "인권위 같은 도계위 필요"

전원합의체 불구 특혜성 사업 무사 통과…"개발이익환수도 강화해야"

인·허가 과정에서 금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복합물류단지 개발사업 시행사인 ㈜파이시티의 서울 서초동 사무실로 한 관계자가 들어서고 있다. 2012.4.23/뉴스1 © News1 한재호 기자

"파이시티 관련 도시계획위원회 위원들은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일부 위원들이 반대했다고 하지만 안건에 대한 지적은 누구나 한다. 도계위는 전원합의체다. 단 한 명이라도 끝까지 반대했다면 통과될 수가 없었다."

현재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이하 도계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양재동 복합물류센터 '파이시티' 인허과 과정의 특혜 의혹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그는 "파이시티 사업은 누가 봐도 무리한 계획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면서 당시 도계위가 요식행위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도계위 위원들이 파이시티 인허가 과정의 특혜 가능성을 인지하고서도 결과적으로 이를 용인했다는 얘기다.

◇서울시 견제할 도계위 '거수기' 노릇만

서울 강남 노른자 위의 대형개발 사업인 파이시티가 각종 특혜성 의혹에도 서울시 인허가 절차를 무사히 통과한 것은 도계위의 헛점을 서울시가 악용한 면이 크다. 

2005년 당초 화물터미널 부지에 대형 판매시설을 허용한 세부시설 용도변경 결정과 2008년 업무시설을 사무실로 확대 해석해 비율을 20%까지 늘릴 수 있게 한 건 도계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물론 2005년 11, 12월 당시 도계위 회의록을 보면 일부 위원들은 "경부고속도로 옆이라 교통난 가중이 우려된다" "경미한 사안이 아니라 엄청난 사안이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좀 더 장기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세부시설 변경이므로 자문만 받으면 된다"는 서울시의 밀어붙이기식 회의 진행에 반대 의견을 접고 해당 안건을 통과시켰다. 

2008년 8월 도계위에서도 "편법이다. 허가를 내주면 안된다" "부대시설인 업무시설이 주기능을 보좌해야 하는데 거꾸로 됐다"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일부 공공기여를 조건으로 결국 업무시설 도입도 무사 통과됐다.

이 같은 일부의 반대의견 역시 의례적인 한 마디에 불가하다는 지적도 있다. 

도계위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한 대학교수는 "대부분의 지적은 진짜 문제가 있으니 막아보겠다는 의도보다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면서 "집행부가 마련한 구도에서 대충 편하게 가는 분위기였다"고 귀띔했다. 

사실상 도계위원들은 서울시의 특혜성 사업에 명분을 만들어주는 '거수기' 역할을 한 셈이다. 

◇결정에 책임 지는 의결기관으로 바꿔야

이에 따라 도계위가 특혜 사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요식행위로 전락할 수 있는 위원회 구조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춘섭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도계위라는 제도는 지방정부의 부패를 막기 위해서였지만 현재 우리의 경우 지방정부가 운영을 맘대로 해도 잘못을 따질 수조차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도계위 위원이 뇌물을 받은 것 말고는 결정이 잘못됐다고 위원이나 공무원, 시장이 문책을 받은 적이 없다"면서 "시의 중요한 이권 사무가 책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법적으로 도계위는 의결기관이 아니라 심의기관이라 서울시장이 위원회 결정을 따를 의무가 없다"면서 "도계위를 심의기관이 아닌 의결기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해법을 제기했다. 

의결기관이 되면 도계위의 결정을 반드시 따라야 하게 되고 위원들 역시 결정에 책임을 져야하니 신중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춘섭 교수는 "이에 앞서 이번 사태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통해 관련 공무원과 도시계획 위원의 책임을 분명히 가리고 처벌을 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도가 아닌 사람과 운영의 문제"

반면 제도적 개선이 되더라도 파이시티 같은 특혜가 되풀이 되는 걸 막을 방법은 없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서울시는 파이시티를 도계위에 상정하기에 앞서 화물터미널에 상업시설을 허용하는 '도시물류기본계획'을 수립해 근거로 마련했다. 

또 화물터미널 면적의 4배가 넘는 점포를 허용하면서도 '세부시설 변경' 사안이라 심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법적 해석을 내밀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아무리 제도가 바뀌어도 특혜성 인허가를 판별하고 막아야 하는 도계위원들의 강력한 의지가 없이는 이를 입증하고 걸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도계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형식 서울시의회 의원은 "민간사업자가 도시개발에 참여하게 하려면 일정 정도의 혜택은 불가피하다"며 "다만 그 혜택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적정 수준이 되도록 하는 건 제도가 아닌 판단의 몫이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오세훈 시장 시절 도계위에서 반대 의견을 끝까지 고수해 몇 개의 안건을 보류시킨 적이 있다"면서 "파이시티 건이 도계위를 통과한 건 당시 서울시가 임명한 개발론자 위주의 위원들이 결국 동의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수현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 역시 "파인시티 특혜는 도계위의 제도적 문제라기보다 시장과 시공무원이 비정상적으로 몰아 붙인 것이 결과였다"고 지적했다. 

◇도계위 위원 밀실 아닌 공개모집해야 

지금과 같이 시장이 도계위 위원을 직접 임명하는 선정방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지만 도시계획에 대한 시장의 개발철학을 반영하는 '코드 인사'도 일정 정도는 필요하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김수현 교수는 "도계위 위원은 시장이 어떤 성향이냐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는데 꼭 나쁘게만 보기는 어렵다"면서 "시민들의 투표로 뽑힌 시장의 개발철학이나 도시에 대한 가치관이 위원 선임에 반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완전히 객관적이고 중립성을 갖춘 위원 선정은 불가능하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물론 한 번 도계위 위원으로 임명되면 2년의 임기가 보장되고 2년을 추가로 연임할 수 있어 시장이 바뀌더라도 위원들 모두가 물갈이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도계위 위원 임명이 지금처럼 서울시장이나 관련 고위 공무원들의 '알음알음'을 통해 밀실에서 선정되는 과정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춘섭 교수는 "기업들이 사외이사를 모집하는 것처럼 도계위 위원도 공개적인 모집 절차를 거쳐 선발해야 한다"면서 "그래야 시장이나 시공무원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계위 독립과 함께 개발환수 강화해야 

도계위로 한정하면 심의에 대한 책임을 높이고 위원을 대상으로 한 로비발생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은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일부 만들어져 있다. 

박 시장은 파이시티 특혜의혹이 불거지기 전인 3월 초 도계위 위원 명단을 공개하기로 결정하고 회의록을 열람할 수 있는 공개 시점도 6개월 이후에서 30일 이후로 대폭 앞당기는 제도적 개선안을 내놨다. 

김형식 의원은 "도계위 위원 명단을 공개하고 회의록 공개시한을 앞당긴 것은 엄청난 제도적 변화"라며 "이를 기반으로 도계위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도 "도시계획이 시장이나 시공무원들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이뤄지거나 부정, 부패와 결부되지 않도록 견제하는 본래의 취지대로 도계위가 운영될 수 있도록 위원들이 책임감을 갖고 심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에 따라 본질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선 도계위가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이 독립적인 상설기구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감시팀장은 "서울시 고위 공무원이 참여하는 도계위는 작동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시장이 위촉하는 자문조직으로는 파이시티와 같은 특혜성 인허가 결정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별도의 도시계획 관련 전문가들을 고용해 독립적으로 투명하게 도시개발 관련 사업을 심의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면서 "이 조직에서 정치인들이 남발하는 개발공약도 걸러내는 기능을 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김 팀장은 이와 함께 "도계위의 제도 개선에 앞서 파이시티처럼 막대한 개발이익이 특정인에게 사유화되는 걸 막기 위해 현재 25% 수준인 개발이익환수제를 50%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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