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하우스 꿈꾸다 멈춘 노들섬…20년 돌아 다시 '예술섬'으로

오세훈 시장 복귀 후 '글로벌 예술섬' 재시동…토마스 헤더윅 참여
수변문화공간 첫 개방…2027년 수상정원, 2030년 하늘예술정원 공개

서울 노들섬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20년 전 한강 한복판에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와 같은 세계적인 문화예술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구상으로 출발했던 '한강예술섬'. 서울시의회의 반대와 시장 교체로 좌초됐던 이 구상이 20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오페라하우스 대신 세계적인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이 설계한 공중정원과 수상정원이 들어서고, 한때 텃밭과 음악섬으로 활용됐던 노들섬 전체를 하나의 입체적인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그 첫 결과물이 18일 시민들에게 공개됐다. 기존 주차장과 쓰레기장, 저이용 수변공간을 정원과 산책로로 바꾼 '수변문화공간'이다. 서울시는 이를 시작으로 2027년 수상정원, 2030년 하늘예술정원까지 단계적으로 조성해 노들섬을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랜드마크로 만들 계획이다.

오페라하우스 꿈꿨던 2006년…착공 문턱서 멈춘 '한강예술섬'

노들섬을 세계적인 문화예술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구상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년 전이다.

서울시는 2005년 노들섬을 274억 원에 매입했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처음 취임한 2006년부터 오페라하우스와 전시시설 등을 갖춘 '한강예술섬' 조성을 추진했다. 한강 한가운데 세계적인 공연·문화시설을 세워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2009년 국제지명초청 설계경기에서 박승홍 건축가의 '춤'이 당선작으로 선정됐고, 기본설계도 마무리됐다. 이어 2010년에는 도시관리계획 변경과 건축심의, 교통영향분석 등 실제 착공에 필요한 절차도 잇달아 밟았다.

당시 계획에는 1751석 규모 오페라극장과 2100석 심포니홀, 400석 다목적극장이 포함됐다. 동쪽에는 공연시설, 서쪽에는 미술관과 전시관, 전망카페, 야외음악공원 등을 배치하는 대규모 복합문화공간이었다. 서울시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 견줄 세계적인 문화예술 랜드마크를 목표로 내걸었다.

하지만 착공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2010년 지방선거를 거치며 서울시의회가 민주당 다수 구도로 바뀌었고, 시의회에서 대규모 사업비 등을 둘러싼 반대가 이어졌다. 여기에 2011년 시장 교체까지 겹치면서 사업은 결국 중단됐다.

서울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대신 텃밭…다시 '음악섬'으로

세계적인 오페라하우스가 들어설 예정이던 공간에는 이듬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2012년 노들섬 서쪽 부지에 시민들이 직접 작물을 재배하는 도시농업공원 '노들텃밭'이 들어섰다. 하지만 약 600명의 텃밭 분양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일반 시민이 폭넓게 이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시는 다시 활용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2015년부터 시민공모 방식의 '노들꿈섬' 사업을 추진했고, 2019년에는 라이브하우스와 야외공연장, 서점, 음식문화공간 등을 갖춘 '음악섬'으로 문을 열었다.

시민들이 다시 노들섬을 찾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있었지만 섬 전체를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용객이 서쪽 공연장과 편의시설에 집중됐고 동쪽 숲과 수변공간은 상대적으로 활용도가 낮았다.

운영 문제도 불거졌다.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2021년 특정감사에서 운영업체의 전문성 부족과 부실 운영 등을 지적하며 노들섬이 "일반시민들의 이용도가 낮은 공간"으로 전락했다고 평가했다.

세계적 예술섬을 꿈꿨던 공간이 텃밭에서 음악섬으로 두 차례 모습을 바꿨지만, 한강 한복판이라는 입지와 섬 전체의 잠재력을 온전히 끌어내지는 못한 셈이다.

오세훈 복귀 후 다시 꺼낸 '예술섬'

노들섬의 운명은 2021년 오 시장이 서울시정에 복귀하면서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았다.

서울시는 2023년 '도시·건축 디자인 혁신'을 발표하면서 노들섬을 첫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했다. 10여 년 전 좌초됐던 '세계적인 문화예술 랜드마크'라는 목표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다만 2006년의 한강예술섬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계획이 오페라극장과 심포니홀 등 대형 공연시설을 새로 짓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현재 추진 중인 '노들 글로벌 예술섬'은 2019년 조성된 기존 복합문화공간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지상과 수변, 공중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기존 건축물을 철거하기보다 정원과 산책로, 공중보행로 등을 더해 섬 전체를 하나의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설계 방식도 달라졌다. 서울시는 사업계획부터 확정한 뒤 설계를 맡기는 기존 방식 대신 세계적인 건축가들에게 먼저 아이디어를 제안받고 이를 토대로 사업을 구체화하는 '선(先)디자인 후(後)사업계획' 방식을 도입했다.

2024년 국제설계공모에서는 토마스 헤더윅의 '소리풍경(Soundscape)'이 최종 선정됐다. 뉴욕 '베슬'과 '리틀 아일랜드', 런던 '롤링 브릿지' 등을 설계한 헤더윅은 한국의 산과 자연의 소리, 라이브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곡선형 정원과 공중보행로로 노들섬을 연결하는 구상을 제시했다. 기존 건축물을 최대한 존치한 점도 당선작 선정 과정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10월에는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오 시장은 당시 노들섬을 "한강르네상스의 큰 그림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라고 표현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토마스헤더윅 건축가 등이 21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에서 열린 '노들 글로벌 예술섬' 착공식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5.10.21 ⓒ 뉴스1 김명섭 기자
20년 만에 첫 결과물…정원에서 수상·공중으로

지난 18일, 2006년 첫 '예술섬' 구상이 나온 지 20년 만에 새로운 노들섬의 첫 결과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시민에게 돌아온 곳은 수변이다. 주차장과 쓰레기장으로 사용됐던 공간은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놀이정원으로 바뀌었다. 통나무와 잔디언덕, 자연석 등을 활용한 빗물놀이정원과 언덕놀이정원, 숲놀이정원이 조성됐다.

시민들이 노을을 바라보던 수변에는 무대형 좌석을 갖춘 생태정원이 들어섰고, 한강의 바람과 소리를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그라스정원과 수국정원 등도 마련됐다. 한강의 흐름을 따라 섬을 둘러볼 수 있는 약 1.5㎞ 순환형 산책로도 새로 조성됐다.

이번 수변문화공간은 헤더윅의 '소리풍경'이 실제 노들섬에 구현된 첫 단계이기도 하다.

노들섬의 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서울시는 수변에서 수상으로, 다시 공중으로 공간을 단계적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2027년 12월에는 한강 수면과 맞닿은 '수상정원'을 조성하고, 2030년 4월에는 7개의 비정형 꽃잎 형태 공간을 공중보행로로 잇는 '하늘예술정원'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공중보행로에는 전시공간과 전망대 등이 들어서고 현재 단절된 동·서측을 연결하는 기능도 맡게 된다.

20년 전 오페라하우스에서 시작된 노들섬의 '예술섬' 구상이 사업 중단과 텃밭, 음악섬을 거쳐 전혀 다른 형태의 글로벌 예술섬으로 돌아온 셈이다.

안대희 서울시 미래공간기획관은 "이번 수변문화공간 개방은 시민들이 노들섬의 변화를 가장 먼저 직접 체감하는 시작점"이라며 "수상정원과 하늘예술정원까지 단계적으로 완성해 노들섬을 자연과 예술, 시민의 일상이 어우러지는 서울의 대표적인 한강 문화 명소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k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