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호우에 '지하포비아' 확산…서울 간선도로 지하화 괜찮나

서울시, 동부간선 이어 강변북도·경부간선도로 지하화 추진
"200년 빈도 현실성 없어…지진·화재 등 상황도 고려해야"

서울 강남구 염곡동서지하차도에서 지하차도 진입 차단 시설을 시연하는 모습. (뉴스1DB)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뉴스1) 권혜정 윤다정 박우영 기자 = 2021년 부산 초량 지하차도 침수 사고, 2022년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 사고에 이어 올해 청주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까지.

잦은 '극한 호우'로 해마다 지하공간에서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하면서 '지하 포비아'라는 말까지 등장한 가운데 서울시가 주요 간선도로 지하화를 추진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문제가 된 폭우 등 이상기후는 물론 예측하기 어려운 각종 재난에 따른 지하공간에서의 안전대책 마련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25일 서울시에 따르면 2021년 9월 정식 개통된 서부간선도로 지하도로에 이어 동부간선도로와 강변북로, 경부간선도로 양재~반포 구간 등의 지하화가 추진 중이다.

2015년 시작된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계획에 따라 1단계로 교통 개선을 위한 대심도 지하도로(월릉~대치·12.2㎞)를 2028년까지 건설하고, 2단계로 기존 동부간선도로 구간(월계~송정)을 지하화한다.

동부간선도로는 서부간선도로와 마찬가지로 진·출입로에 200년 빈도의 강우(시간당 114㎜)에도 견딜 수 있는 성능의 차수판을 갖출 예정이다. 집수정과 배수 펌프 등도 설치된다.

강변북로와 경부간선도로는 현재 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인 단계로, 추후 방재시설 등 기본·세부적 설계가 확정될 예정이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소방당국이 시신을 수습하는 모습. /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전세계적으로 각종 도로의 지하화는 어쩔 수 없는 추세다. 교통 분산으로 지상도로의 극심한 교통체증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토지 매입 등에서도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일으킨 '극한 호우'처럼 각종 자연재난이 예측 범위를 크게 벗어나면서 기존 대책으로는 지하공간에서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성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동부간선도로와 이미 지어진 서부간선도로의 경우 모두 200년 설계빈도의 강우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가 됐다고 하지만 최근의 기후변화를 고려했을 때 사실상 '설계 빈도'는 그 의미를 잃었다고 볼 수 있다"며 "과거의 강우 기록을 바탕으로 미래의 강우 수준을 예측하는 설계빈도로는 앞으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도 "최근의 집중호우 양상을 보면 대부분 100년 빈도 이상의 폭우를 기록하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200년 빈도 기준에 안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500년 빈도를 웃도는 폭우가 내려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지하차도와 달리 동부간선도로, 경부간선도로, 강변북로 등 '대심도'에 건설되는 도로는 길이와 규모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만큼 폭우뿐만 아니라 지진, 화재, 테러 등 각종 재난 발생 때 피해 수준 역시 커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최 교수는 "최근 오송지하차도를 계기로 침수에 모두 주목하고 있지만 지하시설의 경우 침수만 문제가 아니다"며 "화재와 지진, 폭발사고, 테러 등 예측할 수 없는 각종 재난이 빈번해지는 만큼 각 상황에 맞는 방재 개념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지하시설의 경우 대피시설과 계획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라며 "지진 발생 시 지하시설의 벽이 붕괴되며 침수가 발생하고, 연이어 전기가 끊기는 등 최악의 시나리오로 흘러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우리는 예상치 못하는 각종 복합재난, 신종 재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때"라며 "현재로서는 침수, 화재 등 단일 재난에 대한 대비책만이 마련된 상황으로, 각종 재난이 연쇄적으로 벌어졌을 때에 대한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난 관리의 관점에서 도로와 시설의 지하화가 부정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손원배 초당대 재난재해전문과 교수는 "도로와 시설의 지하화는 재난 관리 관점에서 좋지 않은 방향"이라며 "지하시설에서의 작은 사고는 지상에 비해 큰 규모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지하화는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방재 기준으로는 미래 발생할 재난에 대응하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미래의 재난 기준에 맞게 지하화를 추진하지 않을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피해에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시 관계자는 이 같은 지적에 "몇 미터짜리 지하차도와 몇 킬로미터짜리 지하도로는 (각종 구조와 설계 등에 있어) 전혀 다르다"며 "지하도로는 배수 펌프 등의 시설을 다 갖추게 돼 있어 안전에 대한 고려와 시설, 장비가 아예 다르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인 강변북로와 경부간선도로에 대해서는 "방재성능목표를 상향해 가는 추세에 있어 설계를 더 안전하게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jung907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