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실험 윤리 확보 요원…法도 안 지켜<2>
대한민국에서 동물로 살아간다는 것…동물실험 윤리
- 차윤주 기자
(서울=뉴스1) 차윤주 기자 = 뉴스1이 입수한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지난해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지도 감독 내역'에 따르면 '윤리적인 동물실험'을 논하기에 현실은 요원했다.
지난해 기준 동물실험윤리위가 설치된 곳은 338개로(일반기업 135개, 대학 111개, 공공기관 63개, 의료기관 29개) 실제 실험을 진행한 곳은 284개(기업 110개, 대학 95개, 공공기관 54개, 의료기관 25개)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지난해 1월 법이 개정돼 처음으로 동물실험 기관에 대한 지도·감독 및 행정처분이 가능해지면서 338개 중 60개 기관에 나가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이 중 현재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획이 없어 폐지권고를 받은 6개를 제외하면, 나머지 54개 기관은 크든 작든 모두 문제가 있어 '개선명령'(6개) 또는 '현지시정 및 보완요구'(48개) 처분이 내려졌다.
개선명령을 받은 곳은 동물약품 업체인 녹십자 수의약품, 바이오업체인 마크로젠, 사료업체인 카길애그리퓨리나 등 일반기업 3개와 동덕여대·신라대 등 2개 대학, 공공기관인 강원도 축산기술연구센터 1곳이었다.
위원회 부실 운영은 공통적인 지적사항이었다. 1명 이상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외부위원을 두지 않고 실험기관과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대거 윤리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법적 구성 요건을 지키지 않고, 위원회가 동물실험 계획을 형식적으로 승인하는 것 등이 문제가 됐다.
위원회 운영 지침에 동물실험계획 승인 후 동물 구매, 실험계획 승인 후 준수 여부 점검(PAM) 절차 등을 명시하지 않은 것도 지적받았다.
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 동물실험을 하거나 개선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동물기관은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지난해 개선명령을 받은 6개 기관은 기한(60일)내 명령을 이행해 과태료 처분은 면했다.
현지시정 명령이 떨어진 곳은 기업과 대학이 각 16개, 공공기관 14개, 병원 2개로 나타났다.
동물연구를 진행하고 관련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들은 대부분 위원회 구성 요건, 정부가 정한 위원회 표준운영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위원 자격 기준을 반드시 지키라" "운영규정에 동물 구매는 동물실험계획이 승인된 후에만 가능하다는 내용의 조항을 신설하라" "위원 및 실험 종사자에게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하라" 등의 요구가 이어졌다.
포천중문의대·순천향대·성신여대·건양대·군산대·대진대·동의대·배재대·순천대·안동대·영동대·용인대·인천대 등이 포함됐다. 대구한의대학교는 관련 교육 이수 여부가 불분명한 외부위원을 선임해 시정 요구가 있었다. 상명대는 "(실험)과제에 참여하는 위원은 해당 과제 심의에 제외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민간기업으로는 부광약품·애경산업·안트로젠·코리아본뱅크 등이 있었다.
이 중 초중고 학생들에게 생명과학 교육을 실시하는 21세기 생명과학연구재단은 "가능한 살아있는 동물을 이용한 생체 해부실습보다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동물 모형 등을 이용하는 대체 방안을 강구하고, 생체 해부 실습대상은 만 15세 이상 등 연령 제한을 두는 것을 고려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은 위원회에 민간단체 추천위원을 위촉하지 않았다. 화순 전남대병원에 대해선 고통등급 분류와 실험동물의 사육환경 개선 요구가 있었다.
시정 조치를 받은 곳 가운데 일부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곳은 "위원회 운영 내규 및 세칙이 충실하게 잘 마련돼 있다"는 연세대 원주캠퍼스, "규정이 준수하게 마련돼 있다"는 동물약품업체 바이오포아 등 두개에 불과했다.
이런 국내 현실은 동물권이 우리보다 잘 보호받고 있는 미국과 대비된다. 지난 4월 미국 하버드대학은 의과전문대학원 산하 '뉴잉글랜드 영장류 연구센터'를 2015년까지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8대 동물실험센터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센터는 인류의 난치병 치료 기술개발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함께 정부로부터 막대한 연구비를 받아왔다.
하버드대학은 연구비 모금의 어려움 등을 폐쇄 이유로 들었지만, 실은 지난해 11월 미 농무부(USDA) 이 연구센터 운영과정에서 동물복지 규정을 위반한 채 영장류가 죽어나간 사실을 적발하 뒤 비난 여론이 거셌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박창길 성공회대 교수는 "하버드 대학의 영장류센터 폐쇄 결정은 세계 최고 연구기관도 동물실험 윤리를 충족하지 못하면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chach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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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애완동물'이 '반려동물'로 승화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동물권(動物權)에 대한 인식이 발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인간과 짝이 돼 살아간다'는 의미의 '반려동물'에게도 인권(人權)과도 같은 개념의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뉴스1은 이같은 시대의 흐름속에서 '대한민국에서 동물로 산다는 것'이란 주제의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183만마리의 동물들이 실험실에서 사라지고, 유기동물 10마리 중에 1마리만 집에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동물권'이 필요한 부분은 실험동물과 유기동물이다. 뉴스1은 '동물실험 윤리(上)'와 '유기동물 보호(中)' '동물권(下)' 등 세차례로 나누어 보도하는 이번 기획을 통해 우리나라 동물권의 현주소를 짚어본다.[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