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16세 대학생 '로봇다리 수영선수' 김세진 군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 3관왕, 당당하게 '체육특기생' 입학
"내 꿈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19일 성균관대 자연과학 캠퍼스에서 만난 김세진(16·화성)군은 조금 특별했다. 새내기지만 13학번 동기 형·누나보다 3살 어렸다. 해당 과 최연소 입학자다.
체육특기자로 입학했지만 선천성 무형성장애를 가지고 있어 한쪽 손과 두 다리가 없다. 2009년 런던 19세 미만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 대회에서 3관왕에, 작년 열린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에서 7관왕에 오른 김군은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니고 있다.
화제를 뿌리며 입학한 '로봇다리 수영선수' 김 군의 학교생활을 들여다 보았다.
수원 율전동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 캠퍼스에서 19일 만난 김세진군(오른쪽 2번째)와 친구들 © News1 박현우 기자
"영쓰(영어쓰기) 시험 본대요?" 한 무리의 친구들과 봄내음 가득한 교정을 거닐며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짓던 김군은 영락없는 대학 새내기였다. 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중간고사가 부담이 되는 모양이었다. 전날도 기숙사에서 새벽 2시까지 공부하다 잠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나이 청춘들이 그러는 것처럼 벚꽃만 날려도 금세 '까르르' 웃음꽃이 피었다. 언제 시험 걱정을 했느냐는 듯 "가자고"를 외치며 동기들과 캠퍼스 곳곳을 누볐다.
"별 차이는 못 느껴요. 나이는 어리지만 우리보다 훨씬 더 어른스러운 것 같아요. 수업도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성실히 듣고 오늘은 우리(형·누나)도 꺼려하는 발표도 했어요."
최가형(19)양과 정종현(19)군 등 동기들은 김군 칭찬에 입이 말랐다. 하나같이 성실하고 예의 바르며 성격이 좋다고 김군을 치켜세웠다.
손유래(19)양은 "연하는 별로라…동생이 있으면 소개 시켜 줄텐데"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김군의 다음 대회 일정까지도 꿰차고 있던 친구들은 "독일에서 열리는 대회 나가서 잘하고 오라"고 김 군을 응원했다.
이날 오후 수업이 없었던 김 군은 친구들과 커피를 마신 뒤 수영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장까지는 미리 와서 기다리던 어머니 양정숙(44)씨 차로 이동했다.
김세진군(오른쪽 2번째)와 친구들이 19일 벚꽃이 핀 수원 율전동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 캠퍼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News1 박현우 기자
차 안에서 조심스레 "힘들지 않으냐"고 물으니 김 군은 "내가 힘들면, 내가 울면 왕따나 보육시설에 있는 아이들, 저보다 더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들은 더 힘들어 하고 피눈물을 흘린다"며 "많은 분들이 저를 보고 희망을 가지시고 힘을 내니까 이제 제 삶은 저만의 삶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군 어머니는 김 군의 이야기가 초등학교 검정교과서 도덕(4학년)과 국어과목(6학년)에 실려 있다고 귀띔했다. 김 군이 '교과서에 나온 형'으로 유명하고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덧붙였다.
"저는 군대에 가고 싶은데 (지체장애 때문에)병무청에서 안 된다고 하더라구요." 김 군은 많은 남성들의 고민인 군대에 자원입대하고 싶다고 했다.
김 군 어머니는 김 군이 군대에 가길 원해서 직접 병무청에 찾아가 묻기도 했고, 군 고위관계자에게도 부탁을 해봤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김 군의 꿈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되는 것이다.
IOC위원 이라는 장기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년 아시안게임, 내후년 세계선수권대회, 2016년 올림픽 출전 등과 대학원에 진학해 교수에 도전해볼 생각이란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을 가장 중시한다는 김 군은 매일 새벽까지 공부하면서도 오전 7시면 항상 일어난다고 말했다.
훈련 중인 김세진 군. © News1 박현우 기자
삼십여분간 차를 몰아 김 군이 훈련하는 경기도 화성시 유앤아이(U&I)센터에 도착했다.
위 층 관람석에서 지켜보던 김 군의 어머니는 "사실 전동칫솔, 자동차 오토매틱 기어, 구부러지는 빨대 등 다 장애인을 위해서 만들어진 물건들인데 이것들을 이용해 비장애인도 편리하게 살고 있다"며 "삶은 서로 도움을 주고 '상생'하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 문제에 대해 '장애인을 위해 경사로를 만들어 달라'가 아닌 유모차를 이용하려면 경사로가 필요한데 그 구간을 10㎝만 늘리면 나도 편하고 너도 편한 것"이라는 '상생'의 개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비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인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계체조 선수 출신인 양씨는 "훈련 중 크게 다쳐 4년간 장애인으로 지낸적 있다"며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자주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잘' 넘어지면 된다. 그리고 일어서면 된다. 힘들면 주위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고 말했다.
또 "'도와줘'라는 말을 장애인들은 굉장히 자존심 상해한다. 또는 많은 분들이 '너네가 알아서 도와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힘들면 도움을 요청하되 그 기대가 막연해서는 안된다.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불평과 투정은 거지근성 뿐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애인끼리도 시각, 청각, 지체장애인들끼리 서로 편의를 위해 싸운다"며 "베리어프리(Barrier Free·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을 갖춘 건축물) 개념에서 모두가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게 힘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인터뷰는 김 군의 어렸을 적 일화를 듣는 것을 끝으로 마무리했다.
"세진이가 어렸을 때 저와 함께 길을 가다가 다리가 없어 고무를 차고 수세미를 파시던 분을 봤어요. 제가 세진이에게 물었죠. '저 분은 세진이가 어떻게 하면 좋아하실까? 천원짜리, 만원짜리 엄마가 줄까?' 세진이가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근처 햄버거 가게로 달려가는 거에요. 햄버거를 사오더니 그 아저씨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같이 먹더라구요. 그 사람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게 뭘까. 마음을 읽어낸 거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서로 마음을 읽어내려고 노력하는 게 배려 아닐까요"
20일 전국에서는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곳곳에서 열렸다. 거창한 행사는 일년 중 하루 열리지만 서로의 마음을 읽어 내려 노력하고, '어떻게 하면 '함께' 잘 살까' 고민하는 일은 일상 속에서 매일 할 수 있다. 김군 어머니 말처럼 장애인들은 장애인의 날 하루를 위해 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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