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팔수록 손해" 깊어진 농민들 시름…갈아엎은 양배추밭

생산비 1.5배 상승·판매가 500원대 하락…수확 포기

2일 오후 2시쯤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의 한 양배추밭에서 한 농민이 갈아엎는 밭을 바라보고 있다.2026.7.2/뉴스1

(청주=뉴스1) 장예린 기자

팔수록 손해입니다.

2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의 한 양배추밭. 강한 햇볕 아래 얼굴이 검게 그을린 농민들이 모자를 눌러쓴 채 모여 밭을 바라봤다. 밭에는 양배추가 가득했지만 수확의 기쁨은 없었다.

중동전쟁 여파로 농자재값이 폭등했지만, 생산량 증가와 소비 둔화 등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수확을 포기하면서다.

농민들은 "팔수록 손해"라며 수확 대신 트랙터를 몰아 정성껏 키운 양배추를 갈아엎었다.

트랙터가 지나간 자리에는 흙과 짓눌린 초록빛 양배추만 듬성듬성 남았다.

트랙터가 지나간 양배추 밭.2026.7.2/뉴스1

인근 밭에서 농사를 짓는 60대 농민은 트랙터가 지나간 밭을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45년간 농사를 지었다는 그는 "자식처럼 키운 농작물을 갈아엎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열심히 농사해도 팔지 못하는 현실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2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 A 씨도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정부가 어느 정도 가격을 조절해 줘야 하는데 그런 조치가 없다"며 "양배추뿐 아니라 대부분의 농산물 가격이 다 내려갔다. 농업인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농사는 하늘이 도와줘야 하는데, 올해는 작황이 좋아도 가격 때문에 농민들이 어려운 상황으로 올해가 가장 힘든 해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트랙터가 지나간 양배추 밭.2026.7.2/뉴스1

농민들은 지난해에는 잦은 비로 농작물 피해가 컸지만 올해는 비가 많이 오지 않아 작황은 양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쟁 영향과 소비 부진까지 겹치면서 가격이 급락했다고 입을 모았다.

한 농민은 "소비가 둔화하고 농사 필수 자재인 비룟값과 비닐, 농약 등 가격이 크게 올랐다"며 "생산비는 지난해보다 1.5배 정도 늘었는데, 양배추 가격은 오히려 바닥을 쳤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난해 양배추 한 포기에 최소 700~800원을 받았는데, 올해는 500원 수준까지 떨어졌다"며 "양배추 가격이 이렇게까지 폭락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2일 오후 2시쯤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의 한 양배추밭에서 한 농민이 양배추를 살피고 있다.2026.7.2/뉴스1

이날 갈아엎어진 밭의 주인은 25년째 농사를 지어온 50대 농민이다.

그는 직접 트랙터를 몰아 밭을 정리할 예정이었지만 병원 진료로 작업을 지인에게 맡겼다.

그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한 해 동안 정성스레 키운 작물을 직접 갈아엎는 건 너무 힘든 일"이라며 "몸과 마음 모두 좋지 않다. 최근 들어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청주시농민회와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은 이날 해당 양배추밭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와 국회는 농산물 가격 폭락과 농자재값 폭등의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농산물값 폭락·농자재값 폭등 대책 마련 △농산물 공정가격제 시행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 중단 등을 요구했다.

이날 농민들은 트랙터 1대를 동원해 약 5000㎡ 규모의 양배추밭 가운데 절반을 갈아엎었다.

yr050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