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 충청칼럼] '화이트리스트'인가 '블랙리스트'인가

충북교육계 논란…신성한 교육현장 흙탕물 우려
교육 영역만이라도 정치 이념 오염되지 않아야

이광형 뉴스1 세종충북본부장./뉴스1

(충북ㆍ세종=뉴스1) 이광형 기자 = '블랙리스트'의 사전적 의미는 수사정보기관 등에서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만든 명단이다. 우리 현대사에서는 정치권력을 잡은 측이 과거 정부 정무직 인사들의 명단을 작성해 찍어내기를 하면서 블랙리스트 논란이 이어져 오고 있다.

새해벽두 충북교육계를 블랙리스트 논란이 흔들고 있다. 교육계 수장이 바뀌면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사무인데 진영의 음습한 프레임이 파고들면서 점입가경이다.

진영이 다른 내부 감시자가 존재하는 것을 잊은 채 허술하게 업무를 처리한 게 발목이 잡혔다. 블랙리스트를 자신의 SNS를 통해 폭로한 건 다름아닌 2만여 명의 충북교직원 교육연수를 총괄하는 김상열 단재교육연수원장이다.

김 원장은 전교조 출신으로 같은 이념과 교육철학을 가진 김병우 전 교육감의 핵심 측근이자 정책브레인이었다. 본청 정책기획과장을 역임하는 등 김 전 교육감 임기(8년)동안 실세로 군림하며 사실상 교육정책을 총괄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김 원장은 지난해 6월 김 전 교육감이 3선 도전에 실패하자 즉각 명퇴신청을 냈다. 2월 말 퇴직을 앞두고 있다. 그는 벌써 차기 교육감 선거에 진보진영의 후보로 나설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김 원장은 이념의 편향성은 차치하고, 정세에 밝으며 논리적이고 박식하다.

그는 왜 블랙리스트를 터뜨렸으며, 이 사안이 정상적인 업무 추진과정인지 사실관계를 들여다보자.

김 원장은 지난 선거에 당선한 윤건영 교육감 취임 이후 교육청이 교육원 강사 교체 작업에 들어가 김 전 교육감 시절 임명된 강사들을 대거 탈락시키는 선별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연수원 운영과정에 대한 내부사정을 밝혔다.

이게 그가 작명한 '강사 블랙리스트'이다. 이 글은 언론 등을 통해 사실여부와 무관하게 확산했다. 그러자 같은 진영의 인사로 김 전 교육감 시절 외부에서 감사관으로 채용된 유수남 감사관이 '장군멍군'하듯 감사를 자청했다.

유 감사관은 현 교육감 취임 이후 노골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며 동거가 불편한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됐다. 그런 유 감사관에게 감사를 맡길리 만무하다. 결국 윤 교육감은 대도민 사과와 함께 진상규명을 위해 교육부 인력 등으로 특별감사반을 편성해 감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보수·진보단체들은 진영을 엄호하기 위해 입맛에 따라 정적을 경찰에 고발해 수사가 진행 중이다. 언론은 양비론적 보도만 있을 뿐 옳고그름을 판단할 '가르마'를 타주지 않고 있다.

충북은 지난 교육감 선거에선 학력중심의 학교교육을 반대하고 평준화교육에 무게를 두었던 전교조 출신의 진보교육감이 도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학력과 인성교육을 중시하겠다는 중도보수 성향의 현 교육감이 충북교육의 새로운 수장이 됐다. 진보교육에 대한 8년의 평가였다.

그러면 선거 때 도민에게 약속한 교육정책을 집행해야 하는 게 선출직 공직자인 당선자의 책무다. 따라서 해당 교육정책에 맞는 강사와 강좌를 선별, 교체하는 건 당연하다.

예를 들어 비뚤어진 역사교육을 바로 잡으려는 데 엄연히 존재하는 6·25전쟁과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강사를 투입해서 되겠는가.

이 과정에서 해당 강사에 사퇴 압박을 한 것도 아닌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임명권자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면 해촉하고, 적임자를 위촉하면 될 일이다. 8년 전 보수교육감(이기용)에서 진보교육감으로 바뀔 때도 그랬다.

김 원장의 논리라면 그때의 명단도 블랙리스트가 돼야 한다. 그땐 '화이트리스트'이고 지금은 블랙리스트라면 전형적인 '내로남불'로 아이들이 절대로 배워선 안 될 비교육적 논리다.

김 원장의 입장에서 감정이 상했을 수 있다. 과거 교육감시절 자신들에 의해 짜놓은 교육프로그램과 강사진이 허망하게 교체되는 것을 보고 말이다.

하지만 교육에 정치가 개입돼서는 안 되지만, 그게 단체장의 정체성과 가치가 투영된 '선출직 공직'의 태생적 한계이며, 승복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도 지난 8년 동안 충북교육정책의 뼈대를 설계하며 보수교육정책과 충돌하지 않았던가.

3선을 역임한 이시종 전 지사가 지역인재발굴을 위해 강력히 염원하고 추진했던 명문고 설립을 좌절시킨 장본인도 김 원장이다.

문제 제기 방식도 논란이다. 김 원장은 교육연수를 총괄하는 직속기관장으로서 자신의 판단과 다르고 문제가 있다면 법과 시스템에 의해 바로잡았어야 한다.

그런데 1개월 후면 퇴직할 고위공직자가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다고 마치 '공익제보'처럼 내부 업무를 외부에 알렸다. 그것도 '블랙리스트'임을 간접적으로 적시해 정치적 분쟁의 소재를 제공한 것은 교육공직자 윤리나 현행법상 논란이 될 수 있다. 자칫 명퇴를 앞두고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충북교육청의 대응력 부재도 문제다. 오죽하면 보다못한 지역 보수단체와 국민의힘이 장악한 충북도의회가 윤 교육감을 보호하고, 김 원장 군기잡기에 나섰으나 되레 존재감만 키워줬다. 이 문제는 조직력과 저항력을 갖춘 전교조 등이 뒤에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신분과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을 대신해 선거캠프에 잠시 몸담았다 어공(어쩌다공무원)이 된 정무직 비서진들이 나서야 했다.

그들이 적극 해명에 나섰다면 문제가 이렇게 확산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꿀먹은 벙어리처럼 침묵행보를 유지하고 있는 걸보면 이들도 영혼이 없기는 공무원 조직과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 또한 얼마 후면 태풍이 지나가듯 마무리될 것이다. 그런데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큰 산이 울리고 흔들더니 나온 것은 쥐 한 마리라는 뜻)로 신성해야할 교육에 흙탕물만 튀기는 꼴이 된다면 누구의 책임인가. 제발 교육의 영역에는 정치와 이념이 개입되지 않기를 바란다.

12k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