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 충청칼럼] 충북체육인은 바보인가요

체육회 사무처장 자리 10여년간 퇴직 앞둔 공무원 낙하산
전문성·사기 고려해 체육인과 사무처 직원에 되돌려 줘야

이광형 뉴스1 세종충북본부장./뉴스1

(충북ㆍ세종=뉴스1) 이광형 기자 = 지방자치단체 체육회 사무처장의 직무상 역할은 회장의 영을 받들어 사무와 조직관리를 총괄하는 것이다. 임기는 대부분 2년으로 하고 지방부이사관(3급) 상당의 대우를 받는다. 이런 충북체육회 사무처장 자리에 퇴직을 앞둔 도청 간부공무원이 낙하산으로 안착했다.

이번엔 달라질(내부승진) 것이라 기대했던 사무처 직원들의 상실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충북체육회는 1946년 창립 돼 사무처가 설치되고 도와 대한체육회 등의 지원을 받아 운영해 오고 있다. 76년이 넘는 세월동안 체육회 사무처를 사실상 이끌어 온 처장은 본래 지역 체육인이 맡아 왔다.

전국체육대회 개최 등 대규모 행사가 있을 때만 한시적으로 도청 소속 국장이 투입됐다 행사를 마친 뒤 복귀하는 일은 한 두 차례 있었다. 그런데 이시종 충북지사가 취임한 2010년 이후 아예 퇴직을 앞둔 도청 간부 공무원이나 선거캠프 인사들의 낙하산 자리로 전락했다.

업무가 과중하지 않고 기관장 대우를 받는 데다 최소 1년에서 4년씩 근무하다보니 퇴직을 앞둔 간부 공무원들은 '꽃보직'으로 선호한다.

문제는 민선 체육회장 시대란 점이다. 과거엔 체육회장을 단체장이 맡아 왔기에 단체장 의중에 따라 인사를 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2020년 민선 이후에도 도가 체육회 사무처 인사를 쥐락펴락한다는 건 사실상의 권한남용이다. 가난한 체육회 살림에 재정 지원을 고리로 인사권을 빼앗는 것과 다름없다.

2022년 기준 충북체육회 연간 예산은 220억원 규모인데 이중 도가 지원하는 예산은 110억원 정도다. 이 돈으로 사무처 직원과 지도자 60여명 인건비와 52개 가맹경기단체 소속 엘리트선수 훈련비 등을 지원한다.

만약 이런 예산을 지원받아 선수육성과 생활체육 지원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체육회 사무처가 없다면 이 모든 일은 충북도가 해야 한다. 체육은 체육인을 비롯해 그 직에 다년간 종사, 연구해온 사람이 가장 잘 안다.

그런데 전문가를 배제하고 퇴직 공무원의 일자리 연장수단으로 내주는 건 체육인의 자존심을 훼손하고 체육발전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동안 지역 체육계에서는 차기 사무처장을 내부에서 발탁하거나 체육인으로 임명할 것을 줄곧 요구하고 희망해 왔다.

그런데도 예산을 지원하는 충북도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설명은 체육계만이 아니라 도민이 분노할 일이다. 그 돈은 충북도 공무원들이 벌어온 돈이 아니라 체육을 위해 쓰라고 국민이 낸 세금이다.

그리고 공무원 출신이 업무수행에 능하다는 건 공무원들의 착각이고 오만이다. 그동안 충북체육회 역사의 절대 다수 기간을 체육인이 법과 시스템에 의해 운영해 온 사실을 직시하면 된다.

결과적으로 이번 인사는 체육계의 바람과 사무처 직원들의 사기는 염두에 두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윤현우 체육회장의 처신도 논란이다. 도지사의 '심기경호'를 위해 체육회장을 자임한 것이 아니라면 조직원들의 여론을 담아 소신 있게 내부 발탁이나 체육계가 공감하는 인재영입을 결행했어야 했다.

판단이 서지 않았다면 객관적 판단 능력을 가진 인사들로부터 조언을 구했어야 했다. 그런데 제 밥그릇도 포기하고 도에 추천을 요청했다면 리더로서 자격미달이 의심된다. 사업 환경을 고려하더라도 '겸손'이 아니라 권리를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다.

조직의 장으로서 인사권한을 포기한다면 '귀 떼 낸 당나귀'와 무엇이 다른가. 윤 회장의 이번 결정은 본인이나 체육계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직 승진자리가 늘어나 파티가 벌어진 충북도와 재취업에 성공한 신임 사무처장만 즐거운 일이다.

소위 '국민이 주인'인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는 조직의 효율과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역기능을 유발한다. 더는 체육인들의 자존심에 상처 주지말 것을 김영환 지사에게 간곡히 당부한다.

체육계도 각성해야 한다. 부당한 일이 10여년 넘게 반복돼 왔다면 즉각 분노하고 행동으로 보여줬어야 한다. 그래야 잘못 된 일을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은가. 대다수 체육인은 순박하고 강직하다.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으며 신의를 중시한다.

그래서 체육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 중심이 돼 힘을 모으고 체육계 목소리를 대변하면 무시당할 일도 없고, 압력단체로까지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못해 아쉽다. 정치 바람에 물든 일부 체육인들이 논리적 근거 없이 자기편의대로 불만만 토로하는 상황이다.

반면 현재 충북체육회 사무처엔 수십 년간 행정과 지도자를 경험한 전문인력이 다수 존재한다. 전국대비 3%밖에 되지 않는 '작은 충북'이 올해 전국체육대회에서 17개 시도 중 종합7위를 달성한 것도 이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들은 낙하산 사무처장이 발표 되던 날 '왜 우린 민선시대 이후에도 인사 때면 도청의 눈치를 봐야 하나'라고 한탄하며 소주잔을 기울였을 것이다. 김영환 지사가 이들의 마음과 체육계의 바람을 살피는 건 2년 뒤 빼앗은 자리(사무처장)를 되돌려주는 것이다.

12khl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