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수사 비극 단초" 청주 여중생 사건 유족 국가상대 손배소
"피해자한테 현장사진 찍게 해도 묵과…경찰 수사과정 상식밖"
유족 "명백한 2차가해 방조"…사건 실체파악 목적 소 제기 밝혀
- 조준영 기자
(청주=뉴스1) 조준영 기자 = '충북 청주 성폭행 피해 여중생 투신 사건' 피해자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뉴스1 4월21일 보도 참조).
유족 측은 두 여중생이 성범죄를 당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 중 하나로 초기 부실수사를 지목하고 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A양 유족은 최근 '대한민국 외 1명'을 피고로 명시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피고 소송대리인은 청주청원경찰서 등이 맡고 있다.
현재 A양 유족은 소송 청구원인을 정리한 준비서면까지 재판부에 제출한 상태다. 아직 첫 변론기일은 잡히지 않았다.
유족 측은 국가 상대 손배소는 배상보다 부실수사로 묻힌 사건 실체를 파악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입장이다.
A양 유족은 "피의자 고소 이후 수사 과정에서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면서 "국가 상대 손배소는 수사권이 없는 일반인 입장에서 실체 파악에 필요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도 손배소를 낸 뒤 문서송부촉탁 등을 통해 사건 관계기관으로부터 유의미한 자료를 일부 확보, 형사사건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덧붙였다.
A양 유족은 수사 과정 곳곳에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정황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중 대표적인 게 사건 발생 현장 사진 확보 과정이다.
유족이 확보한 수사보고서(청주청원경찰서·2021-02989호)를 보면 경찰은 지난해 3월16일 오후 9시20분쯤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한 후 주거지에 방문해 현장 사진을 촬영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동석한 변호인은 늦은 시간을 이유로 주거지에 있던 피의자 의붓딸에게 사진을 촬영하게 한 뒤 문자 메시지로 받자는 뜻을 경찰에 전했다.
이후 사건 현장 사진은 변호인 뜻대로 피의자 의붓딸이 직접 찍어 메시지로 보냈다.
경찰은 '피해자 ◯◯◯(의붓딸)이 촬영하여 피의자에게 전송한 사진을 수사관 휴대폰으로 재전송받아 출력하여 수사서류에 첨부하다'라고 수사보고서에 적었다.
첨부한 사진에는 '피해자 ◯◯◯(의붓딸 친구)가 강간당한 장소'와 같은 설명도 달았다.
문제는 사건 현장을 촬영한 의붓딸 역시 피의자에게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유족 측은 경찰이 피해자가 피의자 지시에 따라 사건 발생 장소를 촬영하는 데도 제지는커녕 되레 수사 자료로 활용했다고 지적한다.
성폭력 범죄는 당사자 간 진술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경우가 많아 면밀한 현장 점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유족 측 입장이다.
또 피의자 의붓딸이자 피해자가 정신과 치료 과정에서 "2개월 전에 아버지가 성폭행을 했다. 지금도 아버지가 화장실을 가면 무서워 이불을 꾸리고 잔다"고 말한 점을 들어 사건 현장을 직접 찍도록 내버려 둔 건 명백한 '2차 가해 방조'라고 정의했다.
A양 유족은 피의자 거주지·주소지·근무지를 대상으로 한 수색영장이 한 차례도 집행되지 않은 부분도 문제점으로 짚었다. 시일이 지났어도 중요 증거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 됐다는 의견이다.
유족 측은 최근 피의자 근무지에서 발견한 '밧줄'을 근거로 들었다. 피의자 의붓딸은 피해 조사에서 "밧줄에 묶인 상태로 계부에게 성범죄를 당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해당 진술에서 나온 범행 도구로 추정되는 밧줄은 A양 유족이 피의자 근무지에서 찾아 재판부에 제출, 증거로 채택됐다.
A양 유족을 돕고 있는 김석민 충북지방법무사회장은 "성범죄 피해를 본 어린 두 여학생이 스스로 세상을 등진 원인 중 하나는 안일한 대응"이라며 "특히 미성년 피해자에게 사건 현장을 직접 찍게 내버려 둔 일은 당시 사정이 어떻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넘어 반인권적인 수사 행태"라고 지적했다.
유족 측 주장과 관련, 경찰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 연결을 시도했으나 담당·책임자 모두 부재중이어서 답변받지 못했다.
앞서 지난해 5월12일 청주시 오창읍 창리 한 아파트에서 여중생 2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 숨졌다.
두 여학생은 숨지기 전 경찰에서 성범죄와 아동학대 피해자로 조사를 받았다. 피의자는 두 학생 중 한 명의 계부로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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