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 매직 실종' 낮 35도 '찜통 더위'에…해수욕장 텅텅, 도서관 북적(종합)
대구·경북 폭염경보 확대·제주 전역 열대야…충북·전북도 35도 안팎
전국 계곡·동굴에 막판 피서객 행렬…백사장은 곳곳이 한산
- 이종재 기자
(전국=뉴스1) 이종재 기자 = 여름 더위가 한풀 꺾인다는 절기상 '처서'(處暑)인 23일에도 전국 곳곳에서 35도 안팎의 찜통더위가 이어졌다.
밤사이 제주와 경북 일부 지역에서는 열대야가 나타났고, 날이 밝자 다시 기온이 치솟았다. 대구·경북 일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폭염주의보가 폭염경보로 강화됐다.
서울도 낮 최고기온이 33도까지 오르며 '처서 매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시민들은 청계천과 계곡, 국립공원, 연중 서늘한 동굴을 찾아 더위를 피했다. 한낮 야외활동 대신 도서관에서 책과 음악을 즐기는 '북캉스'족도 눈에 띄었다.
반면 이날 폐장하는 경북 포항지역 해수욕장은 한여름 같은 폭염에도 비교적 한산해 상인들의 한숨이 이어졌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도 비뚤어진다'는 속담이 무색한 하루였다.
서울 전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이날 낮 최고기온은 33도까지 올랐다. 오후 1시 종로구 청계천 인근 기온도 31.4도를 기록했다.
청계천 다리 밑과 그늘막 아래에는 어린 자녀와 함께 물에 발을 담그는 가족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리를 잡았다. 거리에는 양산을 쓰거나 아이스 음료를 든 시민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용인에서 8살 아들과 청계천을 찾은 한 시민은 "너무 더워서 처서가 온 줄도 몰랐다"며 "올해는 더위가 오래간다기보다 강도가 훨씬 세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대구·경북에서는 밤부터 더위가 이어졌다. 포항과 울릉도에서 열대야가 나타난 데 이어 이날 오후 4시 30분 기준 낮 최고기온은 경주 35.4도, 경산 35.3도, 대구 35.2도, 포항·고령 35.1도, 구미 34.9도 등을 기록했다.
대구와 포항, 경주, 고령, 칠곡에는 폭염경보가 발효됐고 경북 상당수 지역에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제주는 섬 전체가 밤새 더위에 시달렸다.
제주 북부의 밤 최저기온은 27.8도에 달했고 서귀포 27.4도, 성산 27.2도, 고산 26.8도를 기록하며 전 지역에서 열대야가 나타났다. 제주기상청은 당분간 해안을 중심으로 밤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열대야는 해가 진 뒤에도 기온이 25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현상이다. 낮 동안 달궈진 열기가 밤까지 이어지면서 숙면을 방해하고 다음 날 낮 활동까지 영향을 주는 등 시민들의 피로도도 높아지고 있다.
충북에서도 도내 전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낮 최고기온이 청주 35도, 증평·옥천·영동 34도, 단양·충주·제천·괴산·보은 33도까지 올랐다.
제천과 단양의 주요 리조트에도 가족 단위 관광객이 몰렸다. 특히 단양 고수동굴과 온달동굴, 천동동굴에는 바깥의 찜통더위를 피해 서늘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려는 피서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들 동굴은 한여름에도 내부 온도가 16도 안팎으로 유지된다.
옛 대통령 별장인 청주 청남대에도 1000여 명이 찾아 대청호 주변을 둘러보며 휴일을 보냈다.
무더위가 이어지자 산과 계곡에는 막바지 피서객이 몰렸다.
법주사와 화양구곡, 쌍곡계곡 등을 품은 속리산국립공원에는 이날 오후 1시 10분 기준 7600여 명이 찾았다. 월악산국립공원에도 같은 시간 1480여 명의 방문객이 몰렸고 소백산에도 더위를 피하려는 나들이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또 설악산국립공원에는 이날 오후 2시 기준 6502명이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오대산에는 6300명, 치악산 3424명, 태백산 581명의 탐방객이 산행을 즐겼다.
시민들은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거나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한낮의 열기를 식혔다.
전북에서는 물가 대신 도서관에서 '북캉스'를 즐기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전주시 덕진구 아중호수도서관에는 오전부터 방문객들이 몰렸다. 호수가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는 일찌감치 찼고, 시민들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거나 LP 청음 공간에서 더위를 식혔다.
3살 아이와 세종에서 전주를 찾은 김 모 씨(34)는 "아이가 잠을 못 자 밤마다 온 가족이 고생한다"며 "에어컨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말했다.
전날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울산에서 온 장혜련 씨(69)는 "여름을 가장 좋아했는데 갈수록 보내기가 버겁다"며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니 낮 활동까지 어려워져 삶의 패턴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도서관 밖은 여전히 한여름이었다. 오후 1시 기준 부안은 35.3도, 전주 34.9도, 군산 34.2도, 정읍 34.1도, 익산·고창 34도를 기록했다.
전남광주도 광양읍과 광주 동구 조선대의 낮 최고기온이 35.8도까지 올랐고 최고 체감온도는 36.3도까지 치솟았다. 전날 온열질환자 5명이 추가돼 올여름 누적 환자는 291명으로 늘었다.
같은 폭염 속에서도 포항 해수욕장의 풍경은 달랐다.
이날 폐장하는 영일대와 송도 등 지정 해수욕장에는 폐장 현수막이 내걸렸지만 백사장 곳곳은 비교적 한산했다.
영일대해수욕장의 한 상인은 "지난해보다 피서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올해는 장사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텅 빈 백사장을 보고 있으면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커피숍에는 손님이 많은데 정작 물놀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워터파크 등 편의시설을 갖춘 피서지 선호와 장기간 이어진 폭염 등을 이유로 꼽았다.
해수욕장은 하나둘 여름 영업을 끝내고 있지만 밤에는 열대야가 이어지고 낮에는 폭염특보가 강화되고 있다. 시민들의 발길도 바다에서 계곡과 동굴, 청계천과 냉방시설을 갖춘 도서관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
달력은 여름의 끝을 가리키기 시작했지만 체감하는 계절은 여전히 한여름에 머물러 있다.
(취재 = 소봄이, 장동열, 오미란, 장수인, 최창호, 김종엽, 이종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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