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항소심서 'ECU 사양서' 제출되나
제조사 제출 범위 놓고 공방…내달 13일 항소심 변론준비기일
"증거 제출해 사실 관계 파악" vs "핵심 기술, 공개 신중해야"
- 한귀섭 기자
(춘천=뉴스1) 한귀섭 기자 = 지난 2022년 12월 강원 강릉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 유족 측이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제조사가 보유한 ECU(전자제어장치) 사양서 제출을 촉구했다.
원고 측 소송대리인인 법률사무소 나루 하종선 변호사는 20일 강원창작개발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리기 시작했다"며 "항소심에서는 ECU 사양서의 핵심 내용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는 고(故) 이도현 군의 아버지 이상훈 씨도 함께했다.
앞서 지난해 재판에서는 ECU 사양서 자료 전체 제출 여부를 놓고 양측이 공방을 벌였다. 당시 하 변호사는 "증거 제출을 통해 사실관계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제조사 측 변호사는 "업체의 핵심 기술자료인 만큼 공개에 신중해야 한다"고 맞섰다.
하 변호사는 이날 "제조사 측은 지난 4월 준비서면에서 'ECU는 페달 신호를 내부적으로 복잡한 알고리즘과 로직에 따라 별도로 처리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ECU 사양서 일부를 증거(을 제42호증)로 제출했다"며 "하지만 우리가 ECU 사양서 전체에 대한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하자 해당 증거를 철회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하 변호사는 "재판부가 이미 제출된 서증은 임의로 철회할 수 없다"며 "항소심에서는 ECU 사양서를 어느 범위까지 제출하도록 할지가 핵심 쟁점"이라고 강조했다.
ECU 사양서는 차량의 가속과 제동, 토크 명령, BCM(차체제어모듈)과의 신호 전달, BOS(브레이크 오버라이드 시스템) 작동 방식, EDR(사고기록장치)로 전달되는 신호 등이 담긴 설계 문서다.
특히 하 변호사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ECU 사양서 일부가 이번 항소심에서 증거로 제출된 점에도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 변호사는 ECU 사양서가 제출되면 △소프트웨어 결함에 따른 급발진 여부 △ECU와 BCM 간 신호 전달 과정 △EDR에 전달되는 신호 △BOS의 작동 방식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다만 제조사의 영업비밀을 고려해 법원이 사양서 목차를 먼저 검토한 뒤 사건과 관련된 부분만 제출받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 하 변호사는 국내에서 사양서를 분석할 전문가를 찾기 어려울 경우 해외 전문가의 검증도 검토할 계획이다.
이상훈 씨는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사고의 진실을 명확하게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며 "1심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를 토대로 판단이 이뤄졌지만 해당 감정은 실체적 검증 없이 가능성과 추론에 근거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과정에서 사실관계와 판단에 오인이 있었다고 보고 항소를 제기했다"며 "항소심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명확하게 검증하고 사고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올해 강릉에서 열리는 ITS 세계총회와 연계한 'AI·자율주행 대전환 시대, 자율주행 시대의 책임은 누가 지는가'를 주제로 한 정책세미나도 제안했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는 내달 13일 변론준비기일에서 ECU 사양서 제출의 필요성과 범위, 제출 절차 등을 심리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 2022년 12월 6일 오후 3시 56분쯤 강릉 홍제동 한 도로에서 급발진 추정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도현 군 할머니가 몰던 티볼리 에어 차는 배수로로 추락했고, 차에 타고 있던 도현 군이 숨졌다.
유족 측은 사고 원인이 차 결함에 따른 급발진이라며 제조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2년 6개월 뒤 1심 재판부는 결함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 측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han12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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