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당 2매만 사세요"…중동 전쟁에 전국서 종량제봉투 사재기 현실화

곳곳서 비닐 등 대란 움직임…제작 요청에도 '불가' 답변
중동발 공급발 쇼크에 영세업자·농가 '비명'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가운데, 12일(현지시간) 오만 무스카트의 술탄 카부스 항에 칼리스토 유조선이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다. ⓒ로이터=뉴스1

(전국=뉴스1) 이종재 유준상 김기현 박서현 남승렬 최성국 김대벽 오미란 박정현 김낙희 기자 =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장기화로 인해 비닐·플라스틱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등 석유화학 제품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비닐·플라스틱 대란'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사재기' 현상으로 종량제봉투 등이 동나자 시민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곳곳서 종량제봉투 구매 급증에 구매제한 조치까지

24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비닐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 차질이 발생하면서 인천·경기·강원·울산·광주·경북 등 대부분 지역에서 소비자들의 종량제봉투 구매량이 급격히 늘었다.

인천 남동구 홈플러스 구월점 관계자는 "종량제봉투 재고가 아직 남아 있지만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며 "평소에 한 묶음만 사가시던 분들이 적게는 두 묶음, 많게는 열 묶음 이상 대량 구매해 가신다"고 말했다.

울산 남구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임용석 씨는 "최근 종량제봉투 소비량이 평소보다 2배로 늘어, 1주일에 2번 받던 물량을 4번씩 공급받고 있다"며 "평소 1~2장씩 사 가던 고객들이 이제는 10~20장씩 묶음으로 구매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종량제 봉투 사재기 현상이 심화하자 매장들은 판매 개수에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인천 구월동의 한 노브랜드 매장은 재고 소진이 우려돼 1인당 2매 이상 구매 제한을 두고 있다. 이마트 동인천점은 1인당 20매 제한으로 판매를 진행하고 있다.

대구 지역 농협 하나로마트는 종량제봉투 발주 지연과 고객들의 사재기가 본격화하면서 1인당 20장들이 종량제봉투 한 묶음만 판매하기로 했다. 하나로마트 달성유통센터는 2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으며, 북대구농협은 25일부터 판매 제한에 들어가는 등 대구의 25개 하나로마트가 순차적으로 판매 제한을 시행할 계획이다.

중동사태 여파로 종량제 종량제봉투 등 비닐 원료인 '나프타' 수급이 불안정한 가운데 '종량제봉투 대란'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2026.3.24 ⓒ 뉴스1 공정식 기자
종량제봉투·농업용 비닐 제작·공급 주문 늘었지만…'제작 어렵다'

종량제 봉투에 대한 소매점의 주문도 급증하고 있다. 광주 자치구에 따르면 동구는 지난달 말 외주업체에 종량제봉투 제작·공급을 주문했으나 '불가' 통보를 받았다. 중동 전쟁 여파로 나프타를 확보하지 못해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광주 광산구와 북구, 남구, 서구는 규격별로 2~5개월분 종량제봉투 재고를 보유하고 있지만, 수급 불안 장기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북구의 경우 소매점 등의 한 달 평균 종량제봉투 주문량이 약 4만 장이지만 이달엔 8만 장으로 늘었다.

강원 홍천지역 일부 농자재 마트도 중동전쟁 여파로 비닐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 농자재 마트는 최근 비닐을 납품하는 업체로부터 농업용 비닐 공급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농업용 비닐 생산 업체는 원료 부족과 치솟은 부자잿값으로 생산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장기화로 인해 비닐의 핵심 원료 '나프타'의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비닐 수급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진은 24일 서울 시내 한 비닐 전문판매장에 진열된 비닐 제품의 모습. 2026.3.24 ⓒ 뉴스1 황기선 기자
영세 포장재 제조업체, 영세업자도 고충 호소

영세 포장재 제조업체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경북 경산·칠곡·김천에 밀집한 영세 포장재 제조업체들은 규모는 작지만 농산물 유통과 식품 가공, 제조업 생산을 연결하는 중간 고리 역할을 해 수급난이 지속하면 지역 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영세업자들도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양평군에서 개인카페를 운영 중인 50대 여성은 "플라스틱 일회용 컵 1박스(1000개) 가격이 4만 6000원에서 4만 6900원으로 900원 올랐다"며 "2000~3000원짜리 커피를 판매하는 입장에서 몇백 원 오른 것도 부담된다"고 했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서 작은 커피숍을 운영하는 장 모 씨(44)는 "플라스틱 컵값이 오를까 봐 미리 재고 물품을 확보했다"며 "다음에 살 때는 최대한 많이 사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24일 서울 시내 한 비닐 전문판매장에 진열된 비닐 제품의 모습. 2026.3.24 ⓒ 뉴스1 황기선 기자
'비닐 대란' 우려 속 체감 변화 크지 않은 곳도

'비닐 대란' 우려가 확산하고 있지만, 부산과 제주에서는 아직 체감되는 변화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에서 생선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도매업체를 통해 4월 1일부터 비닐값이 오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주변에 비닐을 사재기하기도 했지만 딱히 사재기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가격 인상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있지만 실제 구매 행태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 중구와 남구 등 일선 자치구는 현재 종량제 봉투 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중구는 종량제 봉투 재고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으며 남구 역시 약 4~5개월분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고 추가 제작도 진행 중이다.

제주의 경우에도 당장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도가 도내 종량제 봉투 재고량과 제작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원료 물량을 점검한 결과 제주시의 경우 3개월 치, 서귀포시의 경우 9개월 치 물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충남도는 15개 시군을 상대로 긴급 종량제 봉투 재고 물량을 파악 중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원료 수급 문제로 단가를 올린다고 업체가 통보해 오는 실정"이라며 "당장은 문제가 발생할 거 같지는 않다. 물량 소진 후 다른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산품 원료 '나프타' 재고 2~3주 분량뿐

한편 시민들이 이처럼 종량제봉투를 사재기하는 이유엔 비닐과 플라스틱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의 수급 난항과 가격 급등이 자리하고 있다.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는 플라스틱, 합성섬유, 비닐 등 각종 공산품의 원료다.

나프타 수급 차질 우려로 이를 활용하는 섬유, 패션, 화장품, 플라스틱, 보일러, 전자제품, 자동차 등 전 산업계가 원료 수급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나프타 재고는 2~3주 분량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leej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