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전쟁 111일] '빨래 피난민'에 '기우제'까지…강릉의 타는 목마름
9월 아파트 제한급수 강화 '사태 최악'
재난사태 선포에 군·소방 총집결…강릉시민도 보답
- 윤왕근 기자
(강릉=뉴스1) 윤왕근 기자 = 111일간 이어진 강원 강릉의 극심한 가뭄은 시민들의 일상과 지역경제를 옥죄며 '물 전쟁'을 불러왔다. 저수율은 9월 12일 역대 최저치인 11.6%까지 떨어졌고, 주민들은 제한급수 속에서 버텨야 했다. 전국에서 급수차와 헬기, 인력이 총동원한 끝에, 9월 중순부터 내린 단비가 해갈을 이끌었다. 시민들은 기우제를 지내며 하늘을 찾기도 했다.
물이 없다는 상상은 누구도 해본 적 없었다. 그러나 물이 끊기자 당장 주방과 화장실 등 일상 가까운 곳에서 가장 큰 불편이 찾아왔다. '최악 가뭄' 기간 강릉시민은 두려움과 간절함 속 수도꼭지를 열어야 했다.
봄철 90%에 육박하던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6월 말 60%대로 떨어지며 경보가 켜졌다. 이어 7월 14일 26%대까지 급락하자 강릉시는 공공수영장과 박물관 화장실 등 일부 시설을 긴급 폐쇄했다.
8월 20일 제한급수 1단계가 시작되자 주민들은 설거지·빨래·청소를 모아 한 번에 하고, 하루 200톤 규모 저수조를 2~3일치 생활용수로 나눠 쓰며 버텼다.
카페와 음식점 자영업자들은 정수 대신 생수를 내놓고, 물 절약을 위해 설거지와 청소를 최소화하며 추가 비용을 감내했다. 아파트 주방에는 김치 공장에서 볼 법한 대형 '대야'가 등장했고, 시민들은 생수병에 물뿌리개를 꽂아 몸을 씻거나, 그릇에 비닐을 씌워 설거지 물을 아꼈다.
9월 6일 강릉시가 저수조 100톤 이상 아파트 113곳 등 대수용가 123곳에 대한 제한급수를 강화하자 단수 위기가 현실화했다.
특히 제한급수 시간대를 아파트 측 자율에 맡긴 초기에는 비축수가 금세 바닥나, 일부 단지에선 오전과 오후 각각 30분씩만 물이 공급됐다. 일상 마비가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아파트 방재실에는 욕설 섞인 항의 전화가 빗발쳤고, 일부 주민들은 주문진이나 양양으로 '원정 빨래'를 떠나야 했다.
그러다 9월 19일 제한급수가 해제되자 시민들은 "물 끊길 걱정을 안 해도 돼 속이 시원하다", "물이 이렇게 소중한 줄 몰랐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가뭄은 인공지능(AI)이 세상을 뒤흔드는 2025년, 비를 부르기 위해 사람들을 하늘과 바다로 향하게 했다.
8월과 9월, 대관령 국사성황사와 안목해변 일대에서는 2차례 기우제가 열렸다. 전통 복식을 갖춘 무녀와 제관들이 술, 과일, 떡 등을 제단에 올리고 시민들과 함께 단비를 빌었다. 단오굿 예능보유자가 무녀로 나서 굿판을 진행하며 신비로운 춤과 몸짓으로 비를 청했다.
지난 8월 23일 대관령 정상에서 열린 기우제에서 빈순애 강릉단오제보존회장은 "강릉에선 매년 단오굿을 통해 시민의 안녕과 농어민의 풍요를 기원해 왔다"며 "단비가 내려 농민들이 농사를 짓고 시민들이 마음껏 물을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미신적 행위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기우제는 단순한 전통 의례를 넘어 이번 사태 속 시민들의 불안과 간절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평가됐다.
물은 강릉에서 말랐지만, 도움은 전국에서 봇물처럼 흘러들었다. 현장은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재난사태 선포 직전인 8월 25일부터 9월 19일까지 홍제정수장에는 차량 1981대, 인원 4540명이 투입돼 6만5616톤의 물을 공급했다. 같은 기간 오봉저수지에는 차량 7127대, 헬기 29대, 인력 1만8331명이 동원됐다. 단순 합산하면 차량 9108대, 헬기 29대, 인력 2만2871명이 강릉을 위해 뛰었다.
급수 지원에 나선 군 장병과 소방 인력을 향한 지역사회의 보답도 이어졌다. 한우집 사장은 군 장병 100여 명에게 180만 원 상당의 저녁 식사를 무료로 제공했고, 농협과 이통장, 청년회, 부녀회는 간식을 챙겨 나눴다. 시내 한 빵집은 매일 생수 수십 상자를 무료로 내놓았다.
김홍규 강릉시장은 "군과 소방, 전국 각계 지원 덕분에 가뭄을 이겨낼 수 있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wgjh654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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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11일 동안 이어진 강릉의 가뭄은 9월 단비와 함께 막을 내렸지만, 남긴 상처와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무엇보다 기존 예·경보 체계가 따라가지 못한 '돌발 가뭄'은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경고음이다. 강릉 가뭄을 심층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