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 앞뒀는데 배추 크기 7월 말에 멈춰" 망연자실 강릉 농민들

"생육 부진 심각 수확시기 어떻게 잡아야 할지"
강릉 오봉저수지 저수율 14.2%까지 떨어져

2일 오전 강원 강릉 왕산면 안반데기에서 배추밭 주인이 더위와 물 부족에 생육이 매우 부진한 배추를 가리키고 있다.2025.9.2 한귀섭 기자

(강릉=뉴스1) 한귀섭 기자 = "배추가 7월 말 정도 크기에 멈춰 있으니 이게 말이 되나요?"

2일 오전 11시 30분 강릉 안반데기 배추밭 일대. 폭염 특보가 해제됐는데도 여전히 내리쬐는 햇볕에 바람도 불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9월인데도 기온은 여전히 30도를 웃돌았다. 여기에 가뭄까지 겹치면서 사실상 안반데기 배추밭은 '초비상'이었다.

배추밭마다 땅이 갈라지고 배추가 상해있는데도 스프링클러는 물이 없어 작동하지 않았다. 전날 잠시 오랜만에 내린 비로 인해 병해충이라도 올까 농민들은 배추밭에 약을 뿌리고 있었다.

한 안반데기 배추밭은 생육이 부진해지자 수확을 포기하고 남겨둔 곳도 있었다. 인근 마을회관 옆 물탱크에는 살수차가 물을 채워 넣고 있었다.

7000평대 안반데기 배추밭 주인 A 씨(50대·여)는 "배추들이 다 커서 수확 시기를 잡고 다음 주부터면 수확해야 했는데 지금 배추 크기는 7월 말 정도에 불과하다"며 "폭염이 겹친 데다 물까지 부족해지면서 배추가 생육 부진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2일 강원 강릉 왕산면 안반데기 마을회관 앞 물탱크에 살수차가 물을 넣고 있다.2025.9.2 한귀섭 기자

이어 "올해 추석이 늦어지면서 일부러 배추를 늦게 심었는데 날씨가 이렇게 무덥고 비가 안 올 줄 몰랐다"며 "이미 다 커서 수로를 배춧잎이 다 덮어야 하는데 생육 부진이 심각해 수확시기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최선동 강릉 왕산면 대기2리 이장도 1만 2000평대 배추 농사를 30년 넘게 하고 있지만 이번처럼 가뭄 때문에 힘든 적은 처음이라면서 혀를 내둘렀다.

최 이장은 "양수기를 이용해 인근 하천에서 물을 끌어다 쓰지만 용량이 부족해 배추밭 해갈에 도움이 될 정돈 아니다"면서 "살수차를 부르자니 돈도 많이 들고 크게 소용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왕산면 대기리에서 무 1만 1000평대를 키우는 고승연 씨(43)도 "밭에서 2㎞ 떨어진 도랑에서 물을 끌어다가 억지로 물을 주고 있는데 이마저도 다른 농민들도 다 같이 쓰면서 물이 거의 떨어졌다"며 "아무래도 올해 생산량이 떨어질 것 같다. 주변도 같은 상황이다. 빨리 비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일 오전 강원 강릉 왕산면 안반데기에서 배추들이 무더위와 가뭄으로 생육 부진을 겪고 있다. 지난 이맘때쯤이면 수로가 배춧잎들로 덮여 있어야 한다. 2025.9.2 한귀섭 기자

앞서 김봉래 강릉시농민회(준) 회장은 전날 저녁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상 유례없는 가뭄 속에서, 강릉 농민들은 더 이상 농사를 이어갈 수 없음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오봉저수지가 고갈을 앞두고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농민의 손길로 지켜왔던 논밭은 메말라 가고, 강릉시민의 먹거리를 책임져 왔던 우리의 땀과 노력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편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강원 강릉시 주요 상수원인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2일 오전 14.2%로 전날(14.4%)보다 0.2%p 더 줄어들었다.

han12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