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명예회복 나선 동해안 납북귀환어부들
68~73년 동해안 납북귀환어부 1000여명 달할 것으로 추정
이중 100여명만 명예회복 활동…재심서 무죄는 겨우 '5명'
- 윤왕근 기자
(속초=뉴스1) 윤왕근 기자 = "역사가 부끄러움이지, 여러분 인생의 부끄러움이 절대 아닙니다. 세상으로 나오세요."
70년대 속초항 소속 멸치잡이 어선 '창동호'에서 조업 중 납북됐다가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겪은 납북귀환어부 고(故) 장모씨의 재심이 열린 지난달 31일 춘천지법 속초지원 앞.
동해안 납북귀환어부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시민모임) 대표직을 맡고 있는 김춘삼씨가 아직 세상으로 나오지 않는 납북귀환어부들에게 소리쳤다.
이날 재심에서 판사가 반공법 등 위반으로 처벌받은 장모씨의 무죄를 선고하자 장내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장씨의 유족과 동해안 납북귀환어부 시민모임 회원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날 장씨의 무죄로 '창동호 납북 사건' 관련자 6명 중 5명이 무죄 판결을 받아 '50년 간첩 딱지'의 오명을 벗었다.
시민모임 김춘삼 대표는 장씨의 무죄 선고를 지켜보며 환희를 쏟아냈다가 이내 다시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납북귀환어부의 명예회복은 갈길이 멀기 때문이다.
속초에 거주하는 김 대표 역시 1971년 납북됐다가 귀환한 '승해호' 사건 피해자다. 당시 승해호의 선원이었던 김 대표의 나이는 고작 열여섯. 1971년 납북된 김씨는 이듬해인 1972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 고향으로 돌아온 소년 김씨에게 돌아온 것은 수사기관의 불법 구금, 고문, 구타였다.
엄혹했던 시절 우리 수사기관은 김씨 등 귀환어부들에게 무리한 수사를 벌였다. 찬양고무와 같은 이념 용어부터 시작해서 각종 법률용어는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열여섯 오징어잡이 소년이 알리가 없었다.
결국 소년 김씨는 반공법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가 붙어 재판정에 섰고 결국 이 같은 혐의는 그대로 적용돼 옥살이를 해야했다.
김씨는 "수사, 재판기록에는 우리 배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조업하다가 북한 배가 붙잡힌 것이라 돼 있다"며 "그러나 우리 배는 분계선을 절대 넘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 같은 내용을 당시 수사관에게 진술했지만 수사기록에는 승해호가 월선, 북한 해역에서 조업 중 북에 납치된 것으로 돼 있었다.
조작되거나 폭력적인 조사로 인해 강제 자백을 통해 받아낸 조서가 그대로 공소사실로 인용된 것이다.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나온 김씨는 정보기관으로부터 불법적인 감시에 시달려야 했다.
김씨는 "옥살이를 하고 나와 생계 때문에 다시 배를 탔다"며 "나중에 알고보니 선장을 통해 내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정보기관에 보고되고 있었다"며 "선장 뿐 만이 아닌 마을 통·반장 등 다 형님동생, 누님아우하던 분들이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처음에는 가까운 사람들이 결국 '쁘락치' 였다는 사실에 섭섭하고 분개했다"며 "그러나 이들도 결국 엄혹했던 시절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어 용서했다"고 말했다.
당시 김씨를 감시했던 이들은 훗날 김씨가 납북귀환어부 재심 활동을 할 때 각종 증언을 하는 등 김씨의 중요한 조력자로 돌아왔다.
열여섯 열일곱 나이에 '사상범'이 돼 버린 오징어잡이 소년은 이처럼 평생 감시 속에 살아왔지만 더욱 열심히 살아왔다. 세상의 모진 시선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일해 훗날 지역에 식당을 차리기도 했다.
물론 그때도 '공작금'으로 차린 것이 아니냐는 정보기관의 의심을 받았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과 연을 맺고 일을 돕다 지난해 출범한 시민모임의 대표직을 맡은 김씨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수 많은 납북귀환 어부의 명예를 회복하기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김씨는 고인이 된 분들에게는 그 영정에 명예회복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생존 어부들에게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일지라도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고 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실시한 전수조사에 따르면 지난 1968년부터 1973년까지 속초, 고성 등 동해안 일대에서 조업 중 납북되는 피해를 겪은 어부만 1000여명에 가깝다.
그러나 이중 재심 등 명예회복을 신청한 어부는 100여명에 불과하다.
또 이중 명예회복이 된 동해안 납북귀환어부는 최근 무죄판결을 받던 고 장모씨 등 '창동호' 소속 선원 5명 정도다.
자신 역시 고초를 겪고, 같은 일은 겪은 이들의 명예회복을 돕는 김씨에게 "대표님께 국가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했더니 재밌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씨는 "납북귀환어부들의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은 국가보안법상 절대 폐기하거나 손을 댈 수 없더라"며 "엄혹하고 야만의 시절, 그 순간을 영원토록 만들기 위해 만든 법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겪은 고초를 증명할 수 있게됐다"고 웃어보였다.
김씨는 "어려웠던 시절 못먹고 못배워서 배를 탔다가 국가가 개인에게 저지른 폭력을 겪은 것은 어부들 자신의 잘못이 절대 아니다"며 "고문의 트라우마, 감시, 세간의 시선으로 아직 밖으로 나오지 못한 납북귀환어부나 그 가족이나 유족은 꼭 명예회복을 신청해 달라"고 호소했다.
wgjh654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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