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최전방 군사지역엔 ‘숲속 예술학교’가 있다
‘폐목에 생명을 넣다’
'목어는 사람을 치유한다'
- 홍성우 기자
(화천=뉴스1) 홍성우 기자 = 강원도 화천군은 북한과 맞닿아 있는 최전방지역으로 국제 정세에 따라 긴장감이 감도는 지역이다. 화천읍에서 차량으로 북쪽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군부대가 줄지어 들어서 있다. 이렇게 20분가량 달리면 민통선(민간인통제구역)이 나온다. 이 곳은 민간인이 들어 갈 수 없는 지역인 군 작전 구역이다.
이 지역과 어울리지 않지만 민통선에서 4km 떨어진 신읍리에 ‘숲속 예술학교’가 있다. 이정인(49), 이재은(44·여) 부부는 2011년 이곳에 들어와 둥지를 틀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숲속 예술학교에서 만난 이정인 작가는 “이곳은 군부대 훈련기간엔 포와 총소리를 들으며 예술 작업을 할 수 있다”며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숲속 예술학교는 1980년대 중반 학생 120여명의 율대 분교였지만 학생 수 감소로 1999년 3월 1일자로 문을 닫았다.
이후 11년간 폐교로 남아 있던 학교를 예술 공간으로 바꾼 사람이 이정인, 이재은 부부다.
이정인 작가는 서울미술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던 중 같은 학교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러나 2001년 크론병(만성 염증성 장질환) 확진을 받고 건강회복을 위해 강원 홍천군을 거쳐 지금의 화천으로 왔다.
화천군에서 군 생활을 한 이정인 작가는 “화천으로 추억여행을 왔다가 아내가 화천군에 반해서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됐다”며 “민통선 끝자락인 이곳은 굉장히 매력적이며 예술작품 활동의 최적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이정인 작가는 자신의 삶을 그리고 있다.
홍천에서 나무를 깎아 가구를 만들던 이정인 작가는 화천에 들어와서는 물고기도 그리고 있다.
이정인 작가는 “가구 디자인을 위해 깎여 버려지는 자투리 나무의 마음을 보상해 주기 위해 나무에 색깔을 입혀 물고기를 만들기 시작했다”면서 “(나의) 병든 서울 생활을 접고 화천으로 온 것은 물고기의 다시 태어 난 것과 같다”고 물고기를 그리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물고기가 다시 태어난 것과 같이 지금의 나는 화천에서 다시 태어나 건강이 많이 회복됐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바닷가에서 수집해 온 폐목에다가도 색깔을 입혀 물고기를 그려내고 있다.
이 작가는 “바닷가에 있는 폐목은 계곡과 강을 타고 결국엔 바다에서 햇빛과 모래와 사투를 벌이며 온갖 시련을 겪었다. 그래서 보존성도 좋고 모양도 아름답다. 폐목에 물고기를 그려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양폭대피소’라는 표지판으로 사용됐던 폐목이 물고기가 되어 벽에 걸려 있었다. 이 작가는 “양양바닷가에서 수집한 폐목인데 이젠 물고기가 되어 새 삶을 살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어 “폐목을 다듬지 않고, 상처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 목어(木魚)의 특징이며, 목어는 사람들의 삶과 같다”고 설명했다.
연목구어(緣木求魚)는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한다는 의미로 불가능한 일을 표현할 때 쓰이지만 이정인 작가는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한 것으로 바꾸고 있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연목구어 시리즈다. 연목구어 시리즈는 나무를 켤 때 나오는 작은 자투리를 사용해 물고기 작품을 만든 것이다.
이 작가는 “작은 물고기 하나는 힘이 없지만 1000마리가 모여 원을 만들면 굉장한 에너지를 갖는다”며 “치어 작품은 에너지와 힘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고 말했다.
부부는 상처가 난 폐목을 물고기로 부활시키듯 인근 부대와 자연결연을 맺고 관심사병을 치유하는 ‘장병 문화예술 캠프’를 진행해 오고 있다.
생태세밀화가로 활동하고 아내 이재은 화가는 “이 프로그램은 장병들이 상처나 버려진 폐목에 물고기를 그리는 체험이다. 폐목이 물고기로 치유 받은 것처럼 장병들도 체험을 통해 상처 받은 이야기를 꺼내면서 상처받은 자신을 치유하고 희망을 갖는다.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 체험에 참여한 한 병사는 “사람들에게 상처 받아 두렵고 겁이 많았지만 이 체험을 통해 희망과 열정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계기였다”고 편지를 남겼다.
소문이 나면서 ‘숲속 예술학교’는 강원도교육청으로부터 ‘강원도일터체험제공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학생들을 대상으로 물고기 치유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정인 작가는 “‘숲속 예술학교’는 최전방 접경 지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지나가다가는 들릴 수 없는 곳이다”면서도 “연간 5000명 이상은 방문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중 배우 심혜진씨는 이곳에 와서 감동을 받고 작품 7~80점을 가져가 전시·판매를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앞으로도 버려지고 부러지고 상처받은 폐목들을 살려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며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hsw012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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