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처증 참극…48년 함께한 아내에 명절날 시비 건 남편 [사건의 재구성]

1·2심 모두 징역 12년 선고

뉴스1 DB

(전주=뉴스1) 강교현 기자 = "당신은 남자를 너무 자주 만나고 다녀."

설날인 지난 2월 17일 오전 전북 정읍시의 한 주택. 남편 A 씨(80)와 아내 B 씨(68)는 명절을 맞아 찾아온 아들 C 씨와 식사를 마치고 소주잔을 기울였다.

하지만 아들이 집을 나선 뒤 둘만 남게 되자, A 씨의 삐뚤어진 마음이 술기운과 함께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근거 없는 의처증으로 인한 다툼은 48년 세월을 한순간에 짓밟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법원 등에 따르면 이들은 1977년 결혼한 이후 48년을 함께 살아왔다. 하지만 혼인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A 씨의 술버릇 때문이었다.

A 씨는 평소 아무런 근거도 없이 B 씨가 다른 남자를 만나 불륜을 저지른다고 의심했다. 게다가 A 씨는 술을 마실 때면 아내에게 폭언을 쏟아내고 주먹을 휘두르는 등 폭력까지 행사했다.

사건 당일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오전 10시 18분께 아들이 집을 떠난 뒤에도 부부의 술자리는 계속됐다.

술기운이 오른 A 씨는 "당신은 남자를 너무 자주 만나고 다닌다"며 아내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에 B 씨는 참지 않고 맞받아쳤다. 그는 "당신이 옛날에 바람을 피우지 않았느냐. 여긴 내 집이니까 나가라"며 오랜 세월 쌓인 울분을 토해냈다.

격해진 말다툼은 집 안 집기를 던지는 싸움으로까지 번졌고, 화를 참지 못한 A 씨는 주변에 있던 소주병으로 B 씨의 머리를 내리쳤다.

A 씨는 범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주방으로 간 A 씨는 흉기를 가지고 돌아와 B 씨에게 여러 차례 휘둘렀다. A 씨의 범행에 결국 B 씨는 숨졌다.

범행 직후 A 씨는 아들에게 전화해 범행 사실을 털어놨고, 아들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체포 당시 A 씨는 만취 상태였으며, 자해까지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선 A 씨는 "죄인으로서 제가 할 말이 있겠느냐"며 고개를 떨궜다.

1심 재판부는 "48년 넘게 동고동락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배우자를 살해했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면서 "또 한순간 모친을 잃은 자녀들은 회복할 수 없는 충격과 고통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점을 감안할 때 엄벌이 불가피하다"며 A 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A 씨와 검사는 양형부당을 사유로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의 판단도 원심과 같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은 형을 정하는 데 있어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과 불리한 정상을 모두 참작해 형을 정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원심형이 너무 무겁거나 가벼워서 재량의 합리적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kyohyun2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