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에 '통일 강연' 주최한 독립운동가…64년 만에 무죄

징역 3년·집유 5년→재심서 "북한 찬양·동조로 볼 증거 없어"

ⓒ 뉴스1 이은현 디자이너

(군산=뉴스1) 강교현 기자 = 1960년대 초 '영세중립화 통일론' 강연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옥살이했던 독립운동가가 64년 만에 누명을 벗게 됐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는 57년 만이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형사부(백상빈 부장판사)는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던 고(故) 송병채 씨(1909년생·1968년 사망)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19일 밝혔다.

독립운동가이자 사회대중당 전북 이리시당 창당준비위원이었던 송 씨는 지난 1961년 4월께 열린 시국 강연회를 주선·참석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수사기관은 송 씨가 통일사회당 간부들을 초청, 강연자들이 반공법과 데모규제법에 반대하고 '영세중립화 통일론'을 주장하도록 했다고 봤다. 수사기관은 이런 행위는 정부의 반공 정책에 반하는 것으로 북한을 이롭게 하고 반국가단체 활동에 동조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송 씨는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구속영장 없이 구금돼 수사를 받았고, 이듬해 혁명재판소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송 씨 손자가 고인이 된 할아버지를 대신해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 재판부는 "이 사건의 경우 당시 수사 기록과 재판기록이 모두 소실돼 어떤 근거로 유죄 판단이 내려졌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당시 4·19 혁명 이후에는 평화통일과 남북 교류에 대한 논의가 사회 각계에서 공개적으로 이뤄졌고, 정부 역시 유엔 감시 아래 자유선거를 통한 통일 정부 수립을 언급하는 등의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며 "이 사건의 '영세중립화 통일론'은 미국과 소련의 협조를 전제로 한 중립국 형태의 통일 구상으로 당시 북한이 주장한 통일 방안과 동일하거나 유사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강연회를 주선하고 관련 발언이 이뤄지도록 했더라도 이는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 범위에 속한다"며 "이 같은 사정만으로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된다는 점을 인지하면서 북한을 찬양·동조했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 증거도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고 송병채 씨는 1926년 전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6·10 만세운동 당시 학생들을 이끌며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체포되는 등 독립운동을 했다. 이후 그는 사회주의 사상과 항일 의식을 바탕으로 비밀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해 학생운동을 전개하다 일제 경찰에 붙잡혔으며, 징역 4년 형을 선고받고 약 4년 5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정부는 이런 공로를 인정해 2005년 고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kyohyun2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