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오빠·언니·어머니 있다"…99세 할머니의 80년 기다림
19살에 남편 따라 남한으로…가족 80년째 못 봐
- 신준수 기자
(전주=뉴스1) 신준수 기자 = "북한에 오빠와 언니, 어머니가 있어요. 남으로 내려온 뒤 80년 동안 한 번도 못 만났어요."
추석 연휴를 앞둔 29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의 한 철물점. 명절을 앞두고 고령 이산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방문한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관계자를 본 박복주 할머니(99)가 환하게 웃었다.
명절 선물을 전하는 직원들이 손을 꼭 잡아주자, 박 할머니는 "고맙다"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환한 미소 속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남아있었다.
1927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박 할머니는 19살 때 남편의 고향인 전북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1950년 6·25전쟁 이후 어머니, 오빠·언니와 생이별을 해야만했다.
이후 몇 차례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지만 성사되지 못했고, 가족과 이별한 지 80년이 흘렀다.
박 할머니의 딸 유 모 씨는 "어머니가 남으로 넘어오실 때 큰오빠를 임신한 상태라 고생이 많으셨다"며 "함께 내려오던 조카와는 길이 엇갈려 지금까지 소식이 끊겼다. 생사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상봉에 대해 기대도 하시고, 이야기도 종종 하셨는데 최근에는 포기하신 것 같다"며 "2000년쯤 금강산 관광에 다녀오셨을 때 북한 쪽을 한참 바라보셨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젊었을 때는 북한에서 살던 시절 이야기를 자주 꺼내셨다. 오빠가 작은 배로 물고기를 잡아줬다던가, 사과를 구워 먹었던 추억 같은 것들"이라며 "그럴 땐 늘 웃음을 보이셨다"고 말했다.
위문이 끝난 후 박 할머니는 문 앞까지 나와 적십자사 직원들과 기자를 직접 배웅하며 인사를 건넸다. 잠시 멈춰 서서 문밖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서, 긴 세월 가족을 기다려온 마음이 묻어났다.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이산가족신청자(8월 말 기준)는 총 13만 4489명으로, 이 중 생존자는 3만 5311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북지역에는 전체 생존자의 1.7%에 해당하는 602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한규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사무처장은 "매년 적십자사에서 도내에 있는 이산가족 위문을 하지만, 여전히 이북에 있는 가족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 분이 있다"며 "그럴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이산가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상봉 사업인데, 이마저도 2018년 이후로는 진행되지 않았다"며 "적십자에서도 북한에 있는 적십자 단체와 지속해 소통하며 다시 한번 상봉 사업을 추진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sonmyj0303@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