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별오름 태우던 제주들불축제, 진짜 불 대신 디지털 불로 바뀐 사연

도민 공론화 결과, 현행법 따라 '오름 불 놓기' 결국 폐지
'디지털 불 놓기+소규모 불 콘텐츠' 전통·현대 조화 방점

제주들불축제 '오름 불 놓기'.2018.3.3 ⓒ 뉴스1 DB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옛 제주 사람들은 봄이 올 무렵이면 소와 말을 풀어놓고 키우던 너른 중산간 들판에 부러 불을 놓고는 했다. 해묵은 풀과 해로운 벌레를 동시에 없애기 위해서였다. 이 같은 제주의 전통 목축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바로 지금의 '제주들불축제'다.

제주시가 1997년에 첫선을 보인 이 축제는 애월읍 어음리(제1·2회), 구좌읍 덕천리(제3회)를 거쳐 2000년 제4회 때부터 매년 봄 애월읍 봉성리에 있는 새별오름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하이라이트는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오름 불 놓기'다. 탐라국(제주에 있었던 고대국가) 개국 신화가 깃든 삼성혈에서 채화한 불씨를 축구장 40개 면적에 달하는 새별오름 남쪽 경사면에 놓는 행사다. 커다란 오름을 따라 일렁이는 붉은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제주들불축제는 그렇게 해마다 약 30만 명을 끌어모으며 국내 대표 축제로 자리 잡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최우수 문화관광축제(2019년), 제주특별자치도 지정 최우수 축제(2020년), 대한민국 축제 콘텐츠 대상 5년 연속(2016~2020년) 수상 등이 이를 증명한다. 이 과정에서 '오름 불 놓기'는 제주들불축제가 국제적인 축제로 성공하는 데 있어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오름 불 놓기'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됐다. 공론화 결과가 그렇고, 현행법이 그렇다.

2023년 9월19일 오후 제주시 아젠토피오레컨벤션에서 제주들불축제의 존폐 여부를 결정할 도민 숙의형 원탁회의가 열리고 있다.2023.9.19. ⓒ 뉴스1 오미란 기자

전환점은 2023년이었다.

2022년 봄 동해안 산불, 2023년 봄 전국 동시다발 산불로 제주들불축제가 2년 연속 취소되자 도와 시가 축제 전반에 대해 재검토에 착수한 해다. 동시에 제주녹색당이 숙의 민주주의로 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도민 749명의 서명을 받아 도에 숙의형 정책개발을 청구한 해이기도 하다.

도는 그해 5월 '도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 기본조례'에 따라 도민 200명이 참여하는 원탁회의로 해법을 찾기로 하고 공론화 절차에 돌입했다. 그 결과 전체 응답자(187명·불참 13명)의 50.8%(95명)는 '현행 유지', 41.2%(77명)는 '폐지', 8.0%(15명)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원탁회의 운영위원회는 이 같은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시에 '축제의 재탄생'을 권고했다. 축제는 이어가되 기후 위기 시대, 도민·관광객 탄소 배출, 산불, 생명체 훼손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대안을 조속히 마련하라는 취지였다. 결국 시는 그해 10월 '오름 불 놓기' 폐지를 결정했다.

그러나 논란은 계속됐다.

2024년 5월에는 축제지역 주민들이 도민 1283명의 서명을 받아 '오름 불 놓기'를 부활시키는 내용의 조례를 도의회에 청구하면서 다시 1년 가까이 공방이 벌어지는가 하면, 지난해 3월에는 현행법상 애초 2013년부터 불가능했던 '오름 불 놓기'가 8차례에 걸쳐 불법적으로 이뤄져 왔다는 도 감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지역사회에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제주들불축제 '달집 태우기'.2018.3.2 ⓒ 뉴스1 DB

여러 부침 속에서도 제주들불축제는 다시 찾아왔다. 지난해 축제가 기상 악화로 2일 차에 전면 취소되면서 사실상 올해 축제가 '오름 불 놓기' 폐지 후 첫 축제가 된 만큼 기대를 모으고 있다.

9일부터 14일까지 6일간 새별오름에서 펼쳐지는 올해 제주들불축제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공존에 방점을 둔 모양새다.

우선 '오름 불 놓기'는 '디지털 불 놓기'로 대체됐다. 시는 새별오름을 활용한 미디어아트에 불꽃쇼 등 특수효과를 더해 풍성한 연출을 선보인다는 포부다. 또 축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합법적 범위 안에서 횃불대행진, 소원지를 품은 달집태우기 등 소규모 불 콘텐츠도 부활시키기로 했다.

개막공연에는 김용빈, 폐막공연에는 자우림이 오른다. 축제 기간에는 전 품목을 20% 이상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농·수 특산물 상생장터', 제주 전통 예식을 재현한 '지꺼진 가문 잔치', 오름 해설사와 동행하는 '오름 도슨트 투어', 마상마예 공연, 민속 체험, 읍면동별 경연대회 등도 펼쳐진다.

김완근 제주시장은 올해 제주들불축제를 두고 "전통과 디지털을 결합한 새로운 시도가 시민 평가를 받는 중요한 시험대"라면서 "알차게 준비한 이번 축제에서 많은 도민과 관광객들이 새봄의 새로운 희망을 듬뿍 담아가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옛 제주 사람들은 봄이 올 무렵이면 해묵은 풀과 해로운 벌레를 없애기 위해 들판에 부러 불을 놓고는 했다. 사진은 1986년 제주의 한 들판에 놓은 불이 나무에 붙지 않도록 잔불을 끄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제주학연구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mro122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