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노출돼 무섭다'며 울었는데…피해자 보호제도 돌아봐야"

이혼소송 아내 피살…유족 "사건 전 도움 못 줬단 사실 안타까워"
접근금지·스마트워치 조치에도 소장 주소 노출로 참극

이혼소송 중인 아내를 흉기로 살해한 30대 남성 A 씨가 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경기 성남시 분당경찰서 유치장을 나오고 있다. /뉴스1

(경기 광주=뉴스1) 김기현 기자 = 이혼소송 중이던 현직 공무원 남편으로부터 피살당한 30대 여성 A 씨 유가족이 피해자 보호제도 실효성을 지적하며 아쉬운 심정을 드러냈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경찰 신고와 접근금지 신청, 스마트워치 지급 등 가능한 보호조치를 받았음에도 결국 주소가 가해자에게 노출되면서 범행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가족은 3일 언론에 배포한 입장문에서 "고인은 자신과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며 "가정폭력으로 경찰에 신고했고, 접근금지를 신청했으며, 스마트워치도 지급받았다"고 밝혔다.

입장문에 따르면 A 씨는 혹시라도 자신의 위치가 알려질까 두려워 차 내비게이션 기록과 블랙박스 기록까지 지우며 생활했다. 하지만 이혼소송 과정에서 소장을 통해 새 거처 주소가 노출됐다.

유가족은 "법적으로는 이혼소송 전에 주소 비공개를 위한 별도의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한다"며 "하지만 이혼소송을 처음 겪는 평범한 사람이 이러한 제도를 미리 알고 필요한 절차를 하나하나 찾아 신청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가족인 저희조차 이런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고인에게 미리 알려주고 도움을 줄 수 없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고 했다.

A 씨는 자신의 주소가 노출된 사실을 알고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너무 무섭다'며 울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가족은 "그렇게까지 조심했고 자신과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상황이었다"며 "그렇기에 결국 주소가 노출됐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고 원통하다"고 밝혔다.

유가족은 스마트워치 등 신변보호 조치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A 씨는 범행 당시 지급받은 스마트워치로 신고했지만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결국 숨졌다.

유가족은 "위급한 순간 신고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것만으로 피해자의 생명을 온전히 지킬 수는 없었다"며 "범행은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났다"고 했다.

임시거처 역시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려웠다고 유가족은 주장했다. 임시거처가 A 씨 직장과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외출에도 제한이 있어 기존 사회생활과 아이 일상을 이어가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안전을 위해서는 결국 피해자와 아이가 자신들의 기존 생활을 포기하거나 크게 바꿔야 했다"며 "고인이 원했던 것은 특별한 보호가 아니었다. 다만 가해자의 위협 속에서도 자신과 아이가 안전하게 평범한 일상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랐다"고 했다.

유가족은 남겨진 아이에 대한 장기적인 신변보호 대책도 요구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남겨진 아이가 앞으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신변보호 대책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만약 가해자에게 낮은 형이 선고돼 언젠가 다시 사회로 돌아오게 된다면, 아이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과연 가해자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지 저희 가족은 너무나 두렵다"고 호소했다.

아울러 "고인이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던 아이는 평생 이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지 않도록 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고인의 죽음이 또 하나의 안타까운 사건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제도가 실제 피해자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돌아봐 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이날 오전 11시 살인 및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를 받는 남편 B 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했다. 구속 여부는 이날 오후께 결정될 전망이다.

B 씨는 지난 1일 오전 7시 17분께 경기 광주시 한 다세대주택 외부 계단에서 출근 중이던 A 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A 씨는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모두 네 차례 경찰에 피해 신고를 하거나 상담을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B 씨와는 반복적인 가정폭력으로 별거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B 씨는 이혼소장을 통해 A 씨 새 거처를 파악한 뒤 오토바이를 타고 현장으로 찾아가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kk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