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습니다"라는 기적…'소방가족'이 꿈꾸는 소박한 바람
부부와 부모·자녀, 형제까지…"무사 귀환 가장 바라"
- 김기현 기자
(수원=뉴스1) 김기현 기자 = 부부는 서로를 현장으로 보내고, 자녀는 부모의 뒤를 따라 같은 길을 걷는다. 형제는 같은 꿈을 품고 같은 제복을 입었다. 누구보다 소방관의 사명을 잘 알기에, 누구보다 무사 귀환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소방가족'의 이야기다.
화염은 가족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 비상소집과 함께 집안의 평범했던 일상도 멈춘다. 부부는 각자의 소방서로 향하고, 부모는 자녀를, 자녀는 부모를 걱정하며 같은 재난 현장으로 달려간다. 같은 제복을 입었다는 것은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의미이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깊은 걱정을 안고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같은 사명을 품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소방가족'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현재 경기도에서는 부부소방관 792쌍과 부모·자녀, 형제자매 등 171가족이 함께 근무하고 있다. 경기도 밖에서 근무하는 가족까지 포함하면 부부소방관은 830쌍, 가족은 215가족에 이른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김재승 소방령은 과거 같은 소방서에서 근무하던 구급대원인 아내와 인연을 맺었다.
상황실과 구급 현장을 오가며 나눈 하루의 이야기들이 공감이 됐고, 그 공감은 평생을 함께하는 인연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소방관 부부에게 비상벨은 함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관내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 부부는 서로를 붙잡을 수 없다.
같은 집에서 나와도 각자의 소방서와 각자의 현장으로 향해야 한다. 김 소방령은 "그럴 때마다 직업인으로서의 사명감과 가족으로서의 책임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같은 직업이기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피로와 긴장감을 안다. 그래서 집에서는 오히려 업무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배우자가 출동했다는 말만 들어도 걱정부터 앞섰지만, 지금은 서로의 전문성을 믿는다.
다만 출동이 유난히 많았던 날이면 "오늘은 평소보다 더 힘들었겠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고 했다.
김 소방령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품고 있는 말도 있다.
"예전에는 오늘 출근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족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나섰습니다. 그래서 '다녀오겠습니다' 대신 '간다!'라는 말로 집을 나서곤 했습니다."
평범한 인사조차 쉽게 하지 못했던 그 마음에는 가족에게 다시 돌아오고 싶은 소방관의 절실함이 담겨 있었다.
31년간 경기소방에서 근무한 뒤 지난해 정년퇴직한 이상돈 전 소방령.
이제 그의 자녀인 김포소방서 이도형 소방교와 부천소방서 이주연 소방위가 뒤를 이어 같은 제복을 입고 있다.
어린 시절 이도형 소방교는 아버지가 초과근무를 자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아버지가 일을 좋아하는 줄만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도 소방관이 된 후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가족을 위해 묵묵히 책임을 다했던 아버지의 시간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 셈이다.
이제는 누나와 아버지가 업무를 알려줄 때면 자연스레 '정말 우리 가족은 소방관 가족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도형 소방교 역시 출동 소식이 들릴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 하나다. 아무 일 없이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다.
누나인 이주연 소방위 또한 소방관이 되고 나서야 아버지의 무게를 알게 됐다. 직장에서 만난 아버지는 더 이상 '우리 아빠'가 아니라 수많은 직원을 이끄는 책임자였다.
존경은 더 커졌고, 그만큼 안쓰러운 마음도 함께 커졌다. 소방관 가족이라는 사실은 든든한 버팀목이지만, 서로가 감당하는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걱정 또한 더 깊어진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이상돈 전 소방령도 처음에는 자녀들이 같은 길을 선택한 것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소방이라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대견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국가소방동원령이 발령되거나 대응 단계가 높아질 때면 누구보다 가족이 먼저 떠오르지만, 같은 조직을 이해하기에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할 수 있는 것이 가족의 가장 큰 힘이라고 전했다.
성남소방서 송기남 소방교와 경기소방학교에서 신임교육을 받고 있는 쌍둥이 동생 송기훈 교육생은 같은 꿈을 선택한 특별한 형제다.
먼저 소방관이 된 형을 보며 동생도 자연스럽게 같은 길을 꿈꾸게 됐다.
송기훈 교육생은 형이 들려주던 현장 이야기를 통해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알게 됐고, 자신에게도 가장 잘 맞는 일이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말했다.
쌍둥이라는 특별한 인연은 교육 현장에서도 웃음을 만들었다.
동생이 소방학교에 입교하던 날, 교육 일정으로 학교를 찾은 형과 마주치자 교육생들과 현직 소방관들조차 두 사람을 구분하지 못했다.
형은 교육생들에게 "왜 모른 척하느냐"는 농담을 듣기도 했다.
언젠가 같은 현장에서 함께 근무하게 된다면 누구보다 든든한 동료가 될 것이라는 데 두 사람의 생각은 같았다.
형은 동생의 활동을 직접 볼 수 있어 오히려 걱정이 덜할 것 같다고 했고, 동생은 함께 위험을 마주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족들의 걱정은 더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소방관에게 출근은 평범한 일상이 아니다. 언제 어떤 재난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길이다.
그래서 소방관 가족들은 매일 같은 바람을 품는다. 무사히 다녀오기를.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해주기를.
홍장표 경기소방본부장은 "'다녀왔습니다'라는 한마디에는 반드시 무사히 돌아오겠다는 소방관의 다짐과 가족의 간절한 바람이 함께 담겨 있다"며 "같은 길을 선택한 소방가족은 서로의 사명을 가장 잘 이해하고 응원하는 든든한 동반자"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모든 소방공무원이 임무를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더욱 안전한 근무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누군가는 평범한 인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방관 가족에게 그 말은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이다.
그리고 "다녀왔습니다"라는 짧은 한마디는, 그 어떤 훈장보다 소중한 하루의 기적이다.
kk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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