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서 경북 산불 보고…" 호기심에 산에 불 지른 50대 2심도 실형

피고인 "불 지르면 걸리지 않을까 생각…불이 쉽게 붙는지 호기심" 진술
'심신미약' 주장에…法 "사물 변별·의사 결정 능력 없었다고 보이지 않아"

23일 오후 어둠이 짙게 깔린 경북 의성군 의성읍 업리 동사곡지(저수지) 뒤편 야산에 거대한 산불이 확산하고 있다. 2025.3.23/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수원=뉴스1) 김기현 기자 = 50여 명에 이르는 사상자를 낸 경북지역 산불을 보고 호기심에 산에 불을 지른 50대 남성이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항소했으나, 또다시 실형에 처해졌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고법 형사2-1부(김민기 김종우 박광서 고법판사)는 최근 산림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 씨가 제기한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A 씨는 1심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양형부당'을 사유로 항소한 바 있다. 음주 및 과거 머리 수술에 따른 인지 장애로 이 사건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즉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게 A 씨 측 주요 주장이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은 불을 붙인 경위, 범행 당시의 행동, 범행 후 정황 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며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였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나아가 심신미약은 형의 임의적 감경사유에 불과한데, 설령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정을 들어 피고인 형을 감경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된다"며 "원심 형은 주요 양형요소들을 두루 참작해 결정한 것이라고 인정되고, 피고인이 이 법원에서 주장하는 사정들을 감안하더라도 원심 양형은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여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판단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A 씨는 올해 3월 29일 오후 6시 50분께 경기 평택시 안중읍 안중리 한 가문 묘역에서 일회용 라이터로 잔디, 나뭇가지 등이 쌓여 있는 3곳에 불을 질러 약 산림 660㎡(200평)을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범행 현장 인근에 있는 주거지에서 술을 마신 상태로 밖으로 나와 소주를 사러 가던 중 갑자기 TV 뉴스를 통해 접한 경북 안동 등지 산불이 떠올라 호기심에 불을 지르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경북지역에서는 대규모 산불로 26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중경상을 입는 등 5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온 바 있다. 산불 피해 면적은 9만 여㏊로, 역대 최악의 산불로 불린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 면적의 4배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A 씨는 비교적 최근 일반물건방화 혐의 등으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누범 기간 중 아무런 이유 없이 재차 동종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당초 수사기관에서 "머리를 다쳐서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술을 마셔서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하다 "TV에서 보던 불이 나는 모습이 생각나서 한번 불을 질러야 되겠다고 생각했고, 나무가 쌓여 있는 곳으로 가서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고 번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A 씨는 또 "목격자가 소리를 질러 도망갔는데 저를 따라잡지는 못할 것 같았다. 도망가서 한 100m 떨어진 묘지 앞 공터에 또 불을 피웠고 그 옆으로 가서 묘지 부근에도 불을 놓았다"며 "TV를 보다가 산불을 지르게 되면 큰 불이 나지만 범인이 검거가 되지 않는 상황이 확인되고 내가 불을 지르면 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 불을 지르면 쉽게 불이 붙는지 호기심도 있었다"고도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1심 재판부는 "방화 범죄는 공공의 안전과 평온을 해치는 범죄로서 다수의 생명·신체 및 재산에 중대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엄정히 대처할 필요가 있고, 개전의 정이 없어 교화의 시간 없이 사회에 복귀할 시 재범의 위험성도 있어 보인다"며 A 씨에게 실형을 선고했었다.

kk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