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고생 많았어 엄마"…7명에게 새 삶 선물한 서른살 아들

폭행 당한 뒤 뇌출혈…5세때 부친 여의고 동생들 챙긴 맏이
"바라던 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삶을 남겨주고 보내"

오선재 씨 SNS에 남아있는 생전 모습. 오 씨는 '행복하고 싶으면 소소한 것에 감사하라'고 적었다. 2026.9.30 ⓒ 뉴스1 이수민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사랑해. 고생 많았어, 엄마. 그리고 미안해"

지난 1월 폭행당해 뇌출혈로 병원에 실려 온 오선재 씨(30)가 어머니에게 남긴 말이다.

가족에 따르면 그는 잠시 의식을 회복했을 때 또박또박 분명한 목소리로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전했고, 혼잣말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분하고 억울해했다.

선재 씨는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지난 2월 6일 심장과 폐, 간, 신장, 안구 등을 기증해 7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1일 선재 씨의 여동생 오수현 씨에 따르면 그는 전남광주 광양에서 2남 1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읜 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두 동생을 살뜰히 챙겼다. 어린 시절에는 일에 지쳐 돌아온 어머니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었고, 배달과 화물차 운전, 보험설계사 등 여러 일을 거쳤다. 2022년 9월에는 한 배터리 제조업체에 계약직으로 입사해 2024년 9월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는 어머니에게 "이제 돈 버는 일만 남았으니 걱정하지 마라. 나중에 꼭 집도 사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헬스와 마라톤을 즐기고, 갖고 싶던 차도 마련하며 자신의 앞날을 그려가던 청년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1월 18일은 가족이 함께 밥을 먹기로 약속한 날이기도 했다. 생일을 앞둔 동생 수현 씨가 오빠에게 밥을 사달라고 졸랐기 때문에 저녁에 온 가족이 함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날 새벽 수현 씨가 향한 곳은 식당이 아닌 오빠가 있는 병원이었다.

수현 씨는 "처음에는 왜 하필 이런 일이 생겼느냐며 오빠가 원망스럽기도 했다"며 "곧 생일도, 함께하기로 한 약속도 다 잊고 그저 오빠가 살아 돌아와 주기만을 빌었다"고 말했다.

선재 씨가 떠난 뒤 가족은 그의 집과 직장, 차를 정리해야 했다. 휴대전화 비밀번호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여러 곳에 연락할 때마다 그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다시 설명해야 했다. 수현 씨는 "오빠가 떠난 뒤 우리 가족의 삶은 전쟁과도 같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생전 오선재 씨와 가족들의 모습.(독자제공) 2026.9.30 ⓒ 뉴스1 이수민 기자

가장 친했던 친구도 아직 그에게 말을 건넨다. 친구가 최근 선재 씨에게 쓴 편지에는 애창곡이던 소울스타의 'Only One for Me'를 함께 부르고 싶다는 내용과 서로 결혼하는 모습까지 꼭 지켜보자던 약속이 담겼다.

장기기증은 선재 씨가 생전에 어머니와 친구에게 밝혔던 뜻이기도 했다. 의료진으로부터 아들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설명을 들은 어머니는 먼저 기증 의사를 전했다. 가족은 선재 씨의 뜻을 떠올리며 장기기증에 동의했다.

수현 씨는 "엄마에게 너무나 아픈 결정이었지만, 오빠가 바라던 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삶을 남겨주고 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선재 씨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A 씨(28)는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징역 5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가 그보다 무거운 형을 내렸다. 검찰과 A 씨 측은 모두 항소해 10월 13일 오후 2시 항소심 선고가 열린다.

A 씨는 술집에서 시비가 붙은 뒤 선재 씨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A 씨가 폭행에 앞서 휴대전화로 싸움에 동의한다는 취지의 말을 녹음하려 했고, 선재 씨가 쓰러진 뒤에도 폭행을 계속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항소심 법정에 선 수현 씨는 "저희가 원하는 것은 복수가 아니다. 다만 자신이 저지른 범행에 합당한 책임을 묻게 해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breat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