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특전사령관 정호용 사망…집단 발포 명령자 '미궁'으로
발포명령·비공식 지휘체계·행불자 등 '3대 과제' 미완
"남은 기록 재검증·생존 관계자 증언으로 사후 규명해야"
- 박지현 기자
(광주=뉴스1) 박지현 기자 =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 핵심 인사였던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사망하면서 핵심 인물들의 직접 증언을 통해 5·18의 진실을 확인할 기회도 사실상 사라졌다.
정 전 장관의 사망으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황영시 전 육군참모총장, 이희성 전 계엄사령관 등 이른바 '신군부 5적'이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됐다.
이들이 진실을 고백하고 사죄할 기회를 외면한 채 숨지면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의 '3대 미완 과제'는 남겨진 기록과 생존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사후에라도 밝혀내야 할 숙제로 남았다.
14일 5·18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정 전 장관은 지난 12일 향년 94세로 별세했다.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난 정 전 장관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육사 11기 동기로 신군부 내 핵심 사조직인 '하나회' 멤버였다. 1980년 5·18 당시에는 특전사령관으로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의 상급 지휘관이었다.
이후 육군참모총장과 내무부·국방부 장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는 12·12 군사반란과 5·18 관련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됐으나 같은 해 특별사면됐다.
정 전 장관까지 숨지면서 5·18 당시 신군부 수뇌부 5명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이 2021년 10월과 11월에, 황영시 전 총장과 이희성 전 사령관도 2022년 세상을 떠났다.
이들이 유명을 달리하면서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희생과 5·18 진상규명을 위한 3대 핵심 과제 역시 미완으로 남게 됐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1980년 5월 20일 광주역과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의 최종 명령자를 명확히 특정하는 일이다.
앞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조사 과정에서 발포 전후 신군부 수뇌부의 '자위권 발동' 논의 등 정황을 확인했다. 다만 결정이 누구를 거쳐 현장까지 전달됐는지는 규명하지 못해 결국 '진상규명불능' 결정을 내렸다.
특전사령관이었던 정 전 장관 역시 생전 "통상적인 업무를 수행했다"는 입장만 고수했다.
공식적인 군 지휘계통과 별개로 신군부 수뇌부와 광주 현장 사이에 작동했던 '비공식 지휘·보고체계'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도 남아있다.
수뇌부의 실시간 개입 정황은 무수히 포착됐지만 핵심 인물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비공식 지시가 유통된 구체적 경로와 밀실 결정 과정은 사료와 문서 재검증을 통해서만 파헤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여전히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행방불명자 추적과 암매장 의혹 규명도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다.
진상조사위는 관련자 증언을 토대로 암매장 의혹 지역을 발굴하고 유전자(DNA) 대조 작업을 진행했으나 5·18 행방불명자로 확인된 유해를 찾지 못해 국가 차원의 지속적인 조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5·18 단체들은 가해자들의 직접 고백은 불가능해졌지만 남아있는 기록을 토대로 한 진실 규명 작업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재대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핵심 가해자들이 진심 어린 고백과 사과로 용서를 구할 기회조차 스스로 포기했다는 것이 문제"라며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진실을 찾아가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최경훈 5·18기념재단 기록진실부 팀장은 "핵심 5인이 사망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라며 "그동안 축적된 조사 기록을 다시 확인하고 실제 관련자들의 증언을 기록해 사후에라도 진실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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