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손대니 쑥 뽑혀"…폭염 못 버틴 해남 6년근 인삼

30도 넘는 고온에 잎 누렇게 말라…예상 수확량 15% 감소
농민 "봄엔 아들 데려와 자랑했는데…속상해서 밭에도 못 가"

13일 전남광주 해남군의 한 인삼밭에서 천희구 씨(70)가 폭염으로 말라붙은 6년근 인삼 잎을 살펴보고 있다. 2026.8.13 ⓒ 뉴스1 박지현 기자

(해남=뉴스1) 박지현 기자

"원래 이맘때면 잎이 빽빽하게 살아 있어야 합니다."

13일 오후 전남광주 해남군 산이면의 한 인삼밭. 천희구 씨(70)가 검은 차광막 아래에서 누렇게 말라붙은 6년근 인삼을 가리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밭에서도 인삼의 상태는 확연히 갈렸다. 지대가 높은 곳에는 푸른 잎을 유지한 인삼이 남아 있었지만, 밭 가운데 낮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누렇게 변하거나 갈색으로 타들어 간 포기가 눈에 띄게 늘었다.

천 씨가 말라버린 인삼 한 포기를 잡고 당기자 별다른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땅에서 쑥 뽑혀 나왔다. 땅속을 단단히 붙들고 있어야 할 뿌리는 이미 힘을 잃은 상태였다.

천 씨는 "이렇게 쉽게 뽑힌다는 것은 뿌리가 썩었다는 뜻"이라며 "밭 가운데는 뜨거운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피해가 더 심하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자라는 6년근 인삼은 오는 9월 28일 납품을 앞두고 있다. 6년 동안 물과 미생물, 영양제를 챙기며 키워 이제 수확만 남겨뒀지만, 인삼은 납품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고온을 견디지 못했다.

천 씨는 "장마가 끝나고 날이 뜨거워지면 잎이 데쳐진 것처럼 노랗게 변한다"며 "30도가 넘는 날이 계속되니까 잎이 갑자기 확 가버렸다"고 말했다.

피해는 2~3년근보다 오랜 기간 키운 5~6년근에서 두드러졌다. 장마 뒤 찾아온 폭염을 버텨낼 힘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게 천 씨의 설명이다.

그는 "장마가 끝난 뒤 폭염이 찾아왔을 때 버티느냐, 버티지 못하느냐가 문제"라며 "지금 상태라면 올해 수확량이 당초 예상보다 15% 정도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봄까지만 해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잎이 무성하게 돋고 생육 상태도 좋아 풍작에 대한 기대가 컸다.

천 씨는 "처음부터 인삼이 좋지 않았다면 모르겠는데 봄에는 정말 잘 자랐다"며 "아들들에게 자랑하려고 밭까지 데려왔을 정도였다"고 돌이켰다.

그만큼 수확을 앞둔 인삼이 시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고역이다. 6년 동안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이 폭염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어서다.

천 씨는 "인삼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속이 상한다"며 "요즘은 밭에도 가고 싶지 않다"고 털어놨다.

천희구 씨(70)가 13일 전남광주 해남군에 위치한 자신의 인삼밭에서 폭염으로 말라붙은 6년근 인삼 잎을 살펴보고 있다. ⓒ 뉴스1 박지현 기자

농민이 할 수 있는 대응은 많지 않다. 차광 시설의 높이를 조절하고 물과 영양제를 공급하고 있지만,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날이 이어지면 피해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

폭염에 가뭄까지 겹치면서 인근 밭의 흙도 곳곳이 갈라져 있었다. 인삼뿐 아니라 다른 작물의 생육도 예년만 못했다.

천 씨는 "예년에는 씨를 심고 물을 두세 차례 주면 대부분 싹이 올라왔다"며 "올해는 일주일 동안 물을 줬는데도 팥 발아율이 50% 정도에 그쳤다"고 말했다.

그가 체감하는 기후변화는 여름에만 머물지 않는다. 봄에는 냉해를 걱정하고 여름에는 폭염과 가뭄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천 씨는 "4월 말 인삼 싹이 올라올 때는 냉해가 걱정이고, 여름에는 폭염이 문제"라며 "농사를 지을수록 해마다 날씨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했다.

결국 그는 지난해부터 새 인삼을 심지 않고 있다. 현재 재배 중인 인삼을 관리해 수확한 뒤에는 재배보다 홍삼 가공의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천 씨는 "우리 지역에서 인삼 농사를 짓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이미 심어놓은 것은 어떻게든 관리해야 하니 달리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고온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지역 농업 관련 기관에서 지원받은 영양제를 사용했지만, 장기간 이어지는 고온을 견디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영양제를 여러 차례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면 농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농민이 할 수 있는 것은 물을 주고 영양제를 공급하는 정도인데, 고온이 계속되면 그것만으로 버티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기준 전남광주 지역의 농작물 피해 면적은 누적 132.4㏊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폭염 피해가 87.4㏊, 가뭄 피해가 45㏊다. 폭염으로 피해를 본 인삼 재배지는 10㏊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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