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방안 온도 오를까 봐 음식도 안 해요"…펄펄 끓는 쪽방촌

광주동부 폭염중대경보 발령…중앙제어에 냉방은 '30분'
오후 10시까지 운영시간 늘린 노인 상담소 그나마 위안

폭염중대경보가 발효된 3일 광주 동구 대인동의 한 쪽방촌에서 장기 거주 중인 한 어르신이 자신의 거주 공간에서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2026.8.3 ⓒ 뉴스1 박지현 기자

(광주=뉴스1) 박지현 기자

"방 온도 오를까 봐 여름에는 밥도 안 해 먹어요."

3일 오전 폭염중대경보가 발령된 전남광주 동구 대인동의 한 달방. 오춘우 씨(60)는 여름을 어떻게 버티느냐는 질문에 잠시 웃더니 이렇게 답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후텁지근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침대와 소형 냉장고, 생활용품이 빼곡히 들어찬 3평 남짓한 방은 성인 두 사람이 서 있기에도 비좁았다.

방 한쪽 벽에는 그래도 에어컨이 설치돼 있었다. 방 안으로들어서자 오씨는 "손님 왔는데 더우면 안 되잖아"라며 서둘러 에어컨을 켰다. 잠시 시원한 바람이 나왔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이내 리모컨을 내려놓고 "전기요금 때문에 오래 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오 씨가 생활하는 달방은 중앙제어방식으로 냉방이 이뤄진다. 그는 "정말 못 버티겠을 때만 잠깐 켠다"며 "밤에도 30분 정도 더위만 식힌 뒤 끄고, 다시 더워지면 또 잠깐 켜는 식으로 버틴다"고 전했다.

이날 광주 동부에는 최상위 폭염 대응 단계인 폭염중대경보가 처음으로 발효됐다. 오 씨의 방에도 에어컨은 있었지만 폭염을 피할 만큼 오래 켤 수는 없었다.

오 씨가 이곳에서 생활한 지는 1년여다. 경기도에서 목수로 일하다 나이가 들면서 일거리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고향인 광주로 돌아왔다.

허리 통증까지 겹치면서 지금은 일을 쉬고 있다. 오 씨는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이라며 "기술이 있어도 나이가 드니 불러주는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폭염중대경보가 발효된 3일 광주 동구 대인동 쪽빛상담소에서 어르신들이 냉방이 가능한 공간에 모여 무더위를 피하고 있다. ⓒ 뉴스1 박지현 기자

방 한쪽에는 생수 페트병 묶음 위에 커다란 벽걸이 달력 종이가 덮여 있었다. 별도의 책상이나 식탁이 없는 탓에 오 씨는 그 위에 밥그릇과 반찬을 올려놓고 끼니를 해결한다.

여름에는 음식을 끓이는 일도 쉽지 않다. 조리할 때 생기는 열기 때문에 가능하면 불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허리 통증 탓에 밤잠을 설치는 날도 많다. 이달 말에는 수술을 앞두고 있지만 함께 병원에 갈 가족은 없다. 가족과 연락하지 않은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대신 힘이 되는 것은 쪽빛상담소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오 씨는 "혼자서는 병원에서도 뭘 잘 모르는데 친구가 같이 가 설명도 해주고 많이 도와준다"고 말했다.

점심 무렵이 되자 오 씨는 달방을 나섰다. 목적지는 자전거로 3분 거리인 광주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쪽빛상담소였다.

상담소 안은 조금 전까지 머물던 달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실내에서는 어르신들이 신문을 읽거나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한쪽에서는 다음 정보화 프로그램 참가 신청이 한창이었다. 직원의 설명을 들은 어르신들은 익숙한 듯 신청서에 이름을 적었다.

폭염을 피해 쉬던 어르신들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여기가 최고야"라고 웃었다.

오 씨도 이곳을 자주 찾는다. 그는 "다른 낙은 없고 여기 오는 재미로 산다"며 "사람들하고 이야기하고 커피 한잔 마시는 시간이 제일 좋다. 선생님들도 친자식처럼 잘 챙겨준다"고 했다.

폭염이 이어지면서 쪽빛상담소는 평일 운영 시간을 기존 오후 6시에서 오후 10시까지로 늘렸다. 주말에도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문을 열어 쪽방 주민들이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했다.

상담소 관계자는 "평소에도 하루 평균 20~30명의 어르신이 찾는다"며 "폭염이 이어지면서 저녁에도 쉬었다 갈 수 있도록 쉼터 운영 시간을 연장했다"고 말했다.

war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