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 총에 언니 죽었는데 왜 사진 찍나 했죠…그게 역사가 돼"
80년 5월 취재 프랑스 기자 만난 오월가족들
- 박지현 기자
(광주=뉴스1) 박지현 기자 = "우리 언니는 죽어 힘든데 왜 사진을 찍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이 역사를 증명해 줬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촬영한 프랑스 사진기자 패트릭 쇼벨과 그의 사진 속 인물·유가족들이 46년 만에 한자리에서 만났다.
23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린 '사진 속 당사자·유가족과의 만남'에는 고 박금희·조사천·김동수 열사의 유가족과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한 경창수 씨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대형 화면에 비친 쇼벨의 사진을 함께 바라보며 사진에 담긴 인물과 당시 상황을 되짚었다.
박금희 열사의 언니 박금숙 씨는 상무관에 안치된 동생의 곁에서 어머니를 부축하던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 앞에 섰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박금희 씨는 부상자들을 돕기 위해 헌혈한 뒤 다시 거리로 나갔다가 숨졌다.
박 씨는 사진을 찍던 쇼벨을 바라보던 당시를 떠올리며 "우리는 이렇게 죽고 힘든데 왜 사진을 찍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는 왜 이런 장면을 찍느냐는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사진이 모든 것을 증명해 줘 고맙다"고 했다.
쇼벨은 "사진을 찍을 때 박 씨가 놀라고 불편해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며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다면 찍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사진은 단순한 사진을 넘어 증언이 되고 역사가 된다"며 "그 희생을 통해 민주주의가 지켜졌다는 사실을 전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 조사천 씨의 영정사진을 들고 상무관에 앉아 있던 '꼬마상주' 당시 5살 조천호 씨와 어머니 강복순 씨도 쇼벨과 만났다.
강씨는 남편이 총격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 시내 병원을 돌아다니다 기독병원에서 시신을 찾았던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남편의 영정사진을 마련해 어린 아들에게 상복을 입혀 상무관으로 데려왔고 아들이 아버지의 관 옆에 앉아 울던 모습이 쇼벨의 카메라에 담겼다.
강씨는 "아들에게 영정사진을 들고 있으라고 시킨 적은 없다"며 "나도 아이가 어떻게 영정을 들고 앉아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쇼벨 역시 "아이에게 영정을 들라고 요구하거나 장면을 연출한 적이 없다"며 "이미 그 상태로 앉아 있어 그대로 촬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고등학생 시민군이었던 경창수 씨도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경씨는 항쟁 당시 신원을 확인한 희생자의 관을 옛 전남도청에서 상무관으로 옮기는 일을 맡았다.
그는 "관을 옮길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애국가를 불렀다"며 "확인된 시신을 상무관에 인도한 뒤 다시 도청으로 돌아와 같은 일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5월 27일 새벽까지 도청을 지키던 경 씨는 계엄군의 진압 과정에서 파편상을 입고 붙잡혔다.
쇼벨은 46년 만에 사진 속 인물과 유가족들을 다시 만난 소감을 묻자 "이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 기쁘고 제게는 영광스러운 과거가 다시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5·18의 기억이 다시 살아난 것 같다"며 "빨리 모두와 악수하고 안아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war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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