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 요청 청년 계엄군 총에…" 佛 기자가 목격한 '5·18 광주'
패트릭 쇼벨, 특별강연서 당시 취재 뒷이야기 공개
"사진은 증언이 되고, 그 증언은 역사가"
- 박지현 기자
(광주=뉴스1) 박지현 기자
"사진은 증언이 되고, 그 증언은 역사가 됩니다."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프랑스 종군사진기자 패트릭 쇼벨이 46년 만에 다시 광주를 찾아 자신이 기록한 사진의 의미를 이같이 설명했다.
쇼벨은 23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계엄군의 진압 현장을 목격하며 카메라에 담았던 당시 상황을 생생히 증언했다.
그는 "당시 해외 언론사의 요청을 받고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뒤 서울에서 차량을 타고 광주로 향했다"고 회상했다.
군이 설치한 바리케이드로 도로가 차단되자 차량에서 내려 샛길로 이동했고, 나룻배를 타고 광주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쇼벨은 "광주에 도착했을 때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며 "통역을 구할 수 없어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계엄군의 진압작전이 시작된 5월 27일 새벽에는 외신 기자들에게 숙소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졌지만 쇼벨은 다른 프랑스 기자와 함께 전일빌딩 옥상에 숨어 현장을 지켜봤다.
계엄군에게 발각돼 건물 아래층으로 끌려간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허리춤에 숨긴 채 사진을 촬영했다.
셔터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기침을 하며 사진을 찍었고, 이 과정에서 계엄군에게 붙잡혀 손이 뒤로 묶인 시민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그는 전일빌딩에서 YMCA 방향을 내려다보다 한 청년이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도 목격했다.
청년은 쇼벨 일행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며 도움을 청했지만 계엄군의 총격을 받고 쓰러졌다.
쇼벨은 "광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도움을 요청하다 총에 맞은 청년"이라며 "도와주고 싶었지만 총알이 빗발쳐 다가갈 수 없었고, 다시 갔을 때는 이미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청년은 숨졌지만 사진을 통해 우리의 기억 속에 계속 남아 있다"며 "이것이 사진이 지닌 기억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쇼벨은 "사진을 찍히는 사람을 존중해야 하지만 사진기자로서 현장을 기록해야 하는 책임도 있다"며 "누군가 찍지 말라고 했다면 촬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진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증언이 되고 그 증언이 역사가 된다"며 "사진을 통해 자유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쇼벨은 17세부터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베트남전쟁과 체첸전쟁, 최근 우크라이나전쟁까지 세계 각지의 분쟁 현장을 취재했다.
쇼벨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촬영한 사진 635점을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기증했다.
war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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