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섬, 세상의 별 ㉖]…맹골곽도(藿島)

대한민국 최상급 돌미역 생산지…'산모미역'귀한 대접
바다위에 세운 '마추픽추' …벼랑 끝 섬의 정상에 취락 형성

편집자주 ...'보배섬 진도'에는 헤아리기 힘들 만큼 '보배'가 많다. 수많은 유·무형문화재와 풍부한 물산은 말할 나위도 없고 삼별초와 이순신 장군의 불꽃 같은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하지만 진도를 진도답게 하는 으뜸은 다른 데 있다. 푸른 바다에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섬 들이다. <뉴스1>이 진도군의 별 같은 섬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리즈를 게재한다.

곽도 선착장. 2026.7.11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진도=뉴스1) 조영석 기자 = 외딴 섬 곽도는 가파른 섬의 꼭대기에 취락이 형성돼 있다. 해안을 중심으로 마을이 들어서고, 선착장이 마을의 들머리가 되는 여느 섬마을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잉카 제국이 산맥의 정상에 '마추픽추'를 건설했다면, 남녁의 바다 사람들은 거친 바다의 고도(孤島) 위에 '곽도'라는 마을을 세웠다. 면적이 0.17㎢에 불과한 작은 바위섬을 수직으로 치솟는 단애가 성벽처럼 둘러싸고 있는 지형적 특성에 따른 생존방식이다.

제국의 도시 잉카는 멸망했으나 바위섬 곽도는 여전히 순환의 삶으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바위섬의 꼭대기에 자리한 곽도마을. 2026.7.11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해안가 갯바위에 내리면 계단으로 시작되는 경사진 콘크리트 길 하나가 산으로 오른다. 길은 보이지 않는 마을을 향해 굽이 돌아 숲속으로 사라지고, 까마귀 우는 숲길 끝에서 비로소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산꼭대기의 마을 사람들은 바람막이가 하나도 없는 망망대해의 강풍으로부터 삶의 터전을 지켜내기 위해 나무를 심었고, 동네 곳곳의 나무들은 자라 하늘은 찌른다.

곽도는 맹골군도의 주섬인 맹골도로부터 동쪽으로 1㎞쯤 떨어져 있다. 이름처럼 '미역 섬'이다. 섬 주위에 대한민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돌미역이 자생한다. 물살이 거친 탓에 양식은 불가능하다. 바다는 인공 양식을 허락하지 않는 대신 대체불가의 최상급 돌미역을 제공했다. 바위섬 곽도가 유인도로 버티고 있는 이유다.

마을로 가는 길. 선착장 옆의 갯바위 계단에서 시작돼 경사진 콘크리트길을 타고 1㎞쯤 걸어야 마을이 나온다. 2026.7.11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평소 5~6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지만 7월 중순부터 8월 하순까지의 미역 철에는 인구가 30여 명으로 늘어난다. 섬을 나가 살던 사람들이 미역 철이 되면 철새처럼 돌아오고, 또 미역 채취가 끝나면 다시 육지 생활을 위해 떠나는 순환이 반복된다.

이름처럼 '미역 섬'이다. 섬 주위에 대한민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돌미역이 자생한다. 물살이 거친 탓에 양식은 불가능하다. 바다는 인공 양식을 허락하지 않는 대신 대체불가의 최상급 돌미역을 제공했다. 바위섬 곽도가 유인도로 버티고 있는 이유다.

겨울철인 정월에도 떠났던 사람들이 갯닦이를 위해 잠시 들어온다. 갯닦이는 미역의 포자가 잘 붙을 수 있도록 갯바위를 '닦는', 청소하는 작업이다.

'미역밭'으로 불리는 갯바위의 자생 미역이 물살에 휩쓸리며 자라고 있다. 2026.7.11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마을 공동작업으로 여름철 미역채취를 위한 공평한 의무 행위이다. 대신 수확한 미역에도 공평함이 적용돼, 무게를 재어 서로 똑같이 나눠 갖는다. 마을이 생긴 이래 변함없이 이어온 전통이다.

곽도는 돌미역과 함께 바다낚시로도 유명하다. 곽도의 돌돔· 참돔 ·감성돔 등은 왕구슬만큼이나 큰 눈알을 부라리고, 뒤질세라 우럭· 농어· 광어· 삼치 등도 우람한 근육질의 야생을 자랑한다. 낚시를 위해 아예 거주지 주소를 곽도로 이전, 상시주민으로 현지화한 유입 인구가 이를 증명한다.

곽도마을 장독대. 장독 대신 물탱크가 장독대를 채우고 있다.2026.7.11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아들 딸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의 시절인 1973년도에는 13가구 62명과 초등학생 15명이 살았다. 1968년 세워진 서거차초등학교 곽도분교는 곽도 역사의 최대 경사였지만 1983년, 겨우 15만에 문을 닫으면서 막을 내렸다.

곽도분교 개교 이듬해인 1969년, 앞바다에서 배가 뒤집혀 분교 선생님을 포함한 마을 주민 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바람이 사나워지고 덩달아 바다도 거센 물살로 일어서던 11월 초 어느 날, 목포에서 친척의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오던 주민들과 학교로 오던 선생님이 참변을 당했다.

곽도를 불과 700m 남겨놓고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생한 참사는 사건 발생 60년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여전히 '정지된 영상'의 아픔으로 남아 있다.

찜질방을 겸하는 '섬마을 주민건강센터'.2026.7.11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곽도는 여느 섬과 달리 어선이 한 척도 없다. 거친 바람과 파도가 일상화된 섬이지만 배를 댈만한 방파제나 접안시설이 없는 탓이다. 선착장이 있다고 하나 철부선이 닿을 수 있는 작은 경사제가 전부이다.

섬의 정상에 자리한 6~7가구의 마을은 어느 산골 마을처럼 고요하고, 바다 건너 서북쪽으로 동·서거차도를 비롯해 '무리 지은 섬이 새 떼가 내려앉아 있는 것 같다'는 조도군도가 발끝 아래로 열병하듯 끝없이 펼쳐진다.

병풍도. 2026.7.11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조도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병풍도(屛風島)가 동쪽 끝 저만치서 가물거린다. 동거차도에 딸린 섬이지만 곽도에서 더 선명하다. 환경부의 특정도서 제40호로, 같은 특정도서 제44호로 지정된 조도 옥도의 백야도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섬으로 이뤄진 조도면에는 병풍도와 백야도 이외에도 행금도, 납태기도, 탄항도 등 5개의 섬이 생태계 보전 가치가 큰 특정도서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백야도. 2026.7.11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물이 귀한 섬으로 해수담수화시설이 들어서기 전만 해도 산속 절벽 밑에 우물터를 조성, 암반수를 식수로 사용했다. 아직도 집집마다 파란 색의 커다란 물탱크 두세개씩을 갖고 있고, 장독대에는 장독보다 물탱크가 더 많이 놓이기도 한다.

바다낚시로도 유명하다. 곽도의 돌돔· 참돔 ·감성돔 등은 왕구슬만큼이나 큰 눈알을 부라리고, 뒤질세라 우럭· 농어· 광어· 삼치 등도 우람한 근육질의 야생을 자랑한다. 낚시를 위해 아예 거주지 주소를 곽도로 이전, 상시인구로 현지화한 유입주민들이 이를 증명한다.

작은 바위섬 곽도에는 여느 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찜질방'이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서 전기장판의 찜질방인 '섬마을 주민 건강센터'를 기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찜질방은 이용자가 없어 '이름'만 남고 '용도'는 상실됐다.

국가보조항로인 곽도는 진도항에서 섬사랑 9호가 하루 한차례 오간다. 3시간가량 소요된다. 하지만 안개와 바람으로 발이 묶이는 뱃길은 결항이 일상이다. 사전 확인이 절대 필요하다. 낚시꾼을 위한 민박집이 있으나 이 또한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곽도 미역/

맹골곽도 미역은 '진도곽'이나 '진도 돌미역'으로 잘 알려진 조도미역의 대표성을 갖는다. 딸의 출산을 앞두고 친정엄마가 제일 먼저 준비하는 '산모미역'이다.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우는 포유류인 고래도 새끼를 낳은 어미가 제일 먼저 미역을 뜯어 먹는다고 전해온다.

맹골 해역은 서해와 남해의 조류가 만나는 경계로 조도 관내에서 바닷물이 가장 맑고 차가울 뿐만 아니라, 조류가 사납기로 으뜸이다.

곽도의 미역말리는 풍경.(김명표 곽도 반장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뉴스1

이러한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경쟁을 벌이는 강인함이 미역에 고스란히 담겨 맹골도 돌미역은 우리나라 최상의 품질로 평가된다. 서너 번 끓여도 흐물거리지 않을 만큼 원래의 식감을 유지한 데다 끓일수록 깊은 맛의 뽀얀 국물이 우러난다. 한 뭇(20가닥)의 가격이 200만 원을 호가할 만큼 귀한 대접을 받는다.

미역 채취는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계속되고 찬바람이 나기 시작하는 9월쯤이 되면 섬은 다시 평상으로 되돌아간다.

갯바위가 많이 드러나는 씬사리(대사리)때를 이용해서 한 가닥 한 가닥 낫으로 베어내는 미역 채취 작업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미역은 공동 채취한 뒤 무게를 재어 똑같이 나눈다. 다만 상품 제작은 개별적으로 하다 보니 생산자에 따라 약간의 가격 차이가 난다.

달포 가량의 미역채취로 평균 1500만 원가량의 수입을 올린다. 나이 든 어른들의 한 해 살이 예산이 되고, 가끔 들리는 손주들에게 용돈으로 쥐여 주는 기쁨도 된다.

kanjoy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