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섬, 세상의 별 ㉕]…맹골도(孟骨島)

해안 골짜기가 '맹수'같은 '맹골군도'의 중심 섬
멸종위기 상괭이·수달 집단 서식처…'앳가심'이 된 천연기념물

편집자주 ...'보배섬 진도'에는 헤아리기 힘들 만큼 '보배'가 많다. 수많은 유·무형문화재와 풍부한 물산은 말할 나위도 없고 삼별초와 이순신 장군의 불꽃 같은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하지만 진도를 진도답게 하는 으뜸은 다른 데 있다. 푸른 바다에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섬 들이다. <뉴스1>이 진도군의 별 같은 섬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리즈를 게재한다.

선착장에서 본 맹골 마을 풍경. 2026.7.3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진도=뉴스1) 조영석 기자 = 맹골도로 가는 날, 아침부터 해무가 짙었다. 해무는 뱃길까지 묶었다. 진도항에서 오전 9시 맹골도로 출항 예정이던 섬사랑 9호는 안개가 걷히기만을 방도 없이 기다렸다. 선장은 "안개가 개야 배가 뜬다"고 했지만, 안개는 선장의 소관이 아니기에 "안개가 언제 걷힐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오리무중'의 시간을 1시간쯤 보낸 뒤에야 주변의 무인도가 실루엣처럼 흐릿한 윤곽을 드러내고, 뱃길이 풀렸다. 진도항을 나선 섬사랑 9호는 조도면 동쪽의 탄항도부터 시작해 독거도, 혈도, 창류항 등을 거쳐 오후 1시 30분쯤 목적지인 맹골도에 닿았다.

맹골도 선착장 건너편으로 해무가 짙게 낀 죽도가 보인다. 2026.7.3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맹골도는 유인도인 죽도와 곽도를 비롯해 무인도인 명도, 몽덕도, 상·중·하죽도여 등으로 구성된 맹골군도의 중심 섬이다. 죽도와 곽도의 이름 앞에도 '맹골'이 붙는다.

진도 울돌목처럼 물살이 맹수처럼 거칠고 센 탓에 '맹골'이라고 부른다는 일설과 달리 주민들은 '맹수'를 물살이 아닌 섬의 골짜기로 풀었다.

아닌 게 아니라 맹골도의 들고나는 해안 골짝은 깊고 거칠어, 금방이라도 맹수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 기세다. 하지만 해안 수직 단애에 바람길이 지나며 만든 '남대문 바위'는 맹수 같은 골짜기가 빚어낸 명품의 절경이기도 하다.

'남대문 바위'. 2026.7.3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맹골도에는 내연발전소 직원을 포함해 평시 9명의 주민이 살고 있지만 매년 여름철에는 50여 명으로 증가하면서 섬에 활기가 돈다.

7월 중순부터 도회지에 살던 사람들이 돌미역 채취를 위해 섬에 들어오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평소 2~3명이 사는 인근 곽도와 죽도도 이때쯤에는 주민 수가 30여 명으로 늘어난다.

물살이 맹수처럼 거칠고 센 탓에 '맹골'이라고 부른다는 일설과 달리 주민들은 '맹수'를 물살이 아닌 섬의 골짜기로 풀었다. 아닌 게 아니라 맹골도의 들고나는 해안 골짝은 깊고 거칠어, 금방이라도 맹수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 기세다.

서거차초등학교 맹골분교와 죽도분교 등이 있었으나 학생들이 떠난 학교 터에 정자가 들어서고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물이 귀한 섬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에어컨 실외기의 냉각수조차 흘려보내지 않고 한데 모아 허드렛물로 사용했을 정도다. 2014년 해수담수화시설이 가동되면서 물 걱정은 덜었다.

맹골마을 동쪽 언덕의 긴급 헬기장. 2026.7.3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전기가 물보다 빨랐다. 1998년 맹골도에 내연발전소가 건립돼 가동되면서 맹골도와 맹골곽도, 맹골죽도의 밤을 밝힌다.

맹골도 주민 9명 가운데 내연발전소 직원이 4명이다. 평균 나이 40대로 섬의 일꾼을 겸한다.

텔레비전이 안 나와도, 보일러가 고장 나도, 가스통이 필요해도, 심지어 핸드폰이 수상해도 주민들은 내연발전소 '젊은이'를 불러 해결한다. 핸드폰 작동법을 알려주고, 텔레비전의 드라마도 나오게 해주고, 가스통도 날라주는, 맹골도 발전소 직원들은 만능 '맥가이버'이다.

박병철 맹골도내연발전소장(오른쪽)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7.3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목포에 부인과 자식을 두고 '월말 기러기 부부'로 고향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맥가이버 대장' 박병철 맹골도내연발전소장(56)은 "어르신들의 심부름꾼 역할이 오히려 따분한 섬 생활의 활력이 된다"고 웃었다.

우럭과 돔, 농어, 장어 등 '물 반 고기 반'의 섬으로 전국에서 낚시꾼들이 몰려들었으나 2014년 앞바다에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 맹골도는 인적 드문 섬이 됐다. 낚시꾼들을 위한 용도로 지었던 민박집도 문을 닫았다.

텔레비전이 안 나와도, 보일러가 고장 나도, 가스통이 필요해도, 심지어 핸드폰이 수상해도 주민들은 내연발전소 '젊은이'를 불러 해결한다. 핸드폰 작동법을 알려주고, 텔레비전의 드라마도 나오게 해주고, 가스통도 날라주는, 맹골도 발전소 직원들은 만능 '맥가이버'이다.

외진 섬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는 상괭이와 수달의 집단 서식처다. 마을 앞 선착장은 국제 멸종위기종인 상괭이 떼의 놀이터로, 1년 사시사철 상괭이의 유영을 볼 수 있다. 천적 없는 섬에 멸치 등의 먹잇감이 풍성한 탓이다.

돌고래의 한 종류인 상괭이 떼의 까만 등짝이 10여 미터 앞 수면 위에서 손에 잡힐 듯 오르내리는 모습은 맹골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경이로움이다.

맹골도 윤칠성·정호순 어부 부부가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떼어내느라 분주한 손길을 놀리고 있다. 2026.7.3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상괭이와 달리 수달은 주민들에게 귀찮은 존재다. 수달이 있으면 물고기가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않을뿐더러 살림망까지 부수고 물고기를 꺼내 먹는 수달은 맹골도 주민들에게 '깡패'로 불린다.

맹골 선착장에서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떼어내고 있던 윤칠성(63)·정호순(64) 부부는 연신 바쁜 손을 놀리면서도 "어부 입장에서 수달은 깡패나 다름없지만 멸종위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탓에 잡을 수도 없는 '앳가심'이다"며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마을 앞 선착장은 국제 멸종위기종인 상괭이 떼의 놀이터로, 1년 사시사철 상괭이의 유영을 볼 수 있다. 돌고래의 한 종류인 상괭이 떼의 까만 등짝이 10여 미터 앞 수면 위에서 손에 잡힐 듯 오르내리는 모습은 맹골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경이로움이다.

부부는 "바다에 고기가 없다"고 했지만, 그물에서는 농어. 우럭, 광어, 간재미 등 여러 종류의 물고기 40~50마리가 잇따라 걸려 나왔다. "많을 때는 100 마리 넘게 잡는다"고 하니, 부부의 바다에는 고기가 없는 것이 사실인 양 싶다.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맹골도로 시집오면서 처음으로 배도 보고, 바다도 보았다는 부인 정 씨는 "많이 잡은 날은 물고기와 그물을 손질하느라 허리가 휜다"며 슬쩍 남편의 눈치를 살폈다.

선착장으로 이어지는 마을 끝 해안가 '터넘이'의 맹골도 봉화대. 2026.7.3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마을 동쪽에 응급환자를 긴급 후송하기 위한 헬기장이 조성돼 있고, '터넘이'라 불리는 마을 앞 갯바위에 봉화대가 잘 보존돼 있다. 산봉우리 정상에 축조되는 여느 섬의 봉화대와 달리 맹골도의 봉화대는 마을이 시작되는 바닷가로 내려온 희귀성을 띤다.

봉화대는 본래의 위급상황을 알리는 역할을 접고 마을에 초상이 발생했을 때 망자의 옷을 태우는 소각장으로 기능이 바뀌었다.

'터넘이'는 화산재가 응축돼 형성된 화산력응회암 지대로 회색과 황토색의 둥그런 바위들이 뒤섞여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화산재가 응축돼 형성된 '터넘이'의 화산력응회암 모습이 특이하다. 2026.7.3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한때 물살이 센 해양 특징으로 조류발전 단지도 거론됐으나 최근 간서섬에서 신안군 만재도 사이 해상에 600MW 규모의 해상풍력단지 조성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해상풍력의 상업 발전이 시작되면 맹골도 주민들은 파도연금 대신 바람연금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외딴섬의 거센 바람을 '적군'처럼 여기며 평생을 파도와 맞서 싸워 온 사람들이 '적군' 같은 바람의 혜택을 입게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소식은 육지까지 전해졌고, 섬을 떠나 살던 몇 사람이 집을 새로이 짓고 주소를 섬으로 옮겼다.

맹골도 선착장이 곽도와 죽도 어선들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지만 바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배들은 6km쯤 떨어진 서거차도항으로 나가고, 태풍 예보라도 있게 되면 30㎞가 넘는 진도항까지 2시간가량 도망치듯 피항해야 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맹골도 주민들에게는 바람연금보다 더 시급한 염원이 있다. 제대로 된 방파제를 갖춘 선착장과 하루 두 차례의 여객선 취항이다. 작은 방파제의 맹골도 선착장이 곽도와 죽도 어선들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지만 바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배들은 6km쯤 떨어진 서거차도항으로 나가고, 태풍 예보라도 있게 되면 30㎞가 넘는 진도항까지 2시간가량 도망치듯 피항해야 하는 실정이다.

맹골도 교회. 건너편으로 안개에 쌓인 서거차도의 산봉우리가 보인다. 2026.7.3 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또 맹골도는 여객선 운항이 하루 한차례 뿐으로 당일 왕복이 불가능한 섬이다. '하루는 가고, 하루는 오는' 1박 2일이 최소한의 소요 시간이지만 이마저 '날이 궂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따른다.

임복춘 어촌계장(63)은 "대한민국이 일일생활권이 된 지 오래됐지만 맹골도는 여전히 꿈같은 얘기"라며 "오전 오후, 하루 두 차례만 여객선이 오가도 살만한 섬이 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이틀간의 맹골군도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내 말을 기사로 꼭 써달라"고 당부하던 그의 간절한 눈빛이 포말과 함께 섬사랑 9호의 고물을 쫓았다.

kanjoy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