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후변화의 신호는 섬에서 시작된다

박진영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장

박진영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장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봄은 짧아지고 여름은 길어졌으며, 폭염과 폭우는 일상의 풍경이 됐다. 지구온난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기후변화는 이미 우리의 생활과 산업,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 됐다.

이 변화가 초래하는 가장 심각한 결과 중 하나는 생물다양성의 감소다. 유엔 산하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는 지구 평균기온이 2도 상승할 경우 생물종의 약 5%, 4.3도 상승 시에는 약 16%가 오직 기후 요인만으로 멸종 위험에 놓일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같은 경고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 최대 산호 생태계인 호주의 그레이트배리어리프는 해수 온도 상승으로 대규모 백화현상을 겪고 있으며, 국제사회는 지구 평균기온이 1.5도만 상승해도 전 세계 산호초의 70~90%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우리 바다의 변화도 뚜렷하다. 동해안을 대표하던 명태는 국내 연근해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고, 제주와 남해안에서는 아열대성 생물의 출현이 늘어나고 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통계 속 숫자가 아니라 우리의 식탁과 산업, 생태계를 바꾸고 있는 현재의 문제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변화의 신호를 가장 먼저 읽어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많은 연구자는 그 답을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에서 찾는다. 섬은 육지보다 면적이 좁고, 환경 변화에 민감하며 외부 환경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해수면 상승과 수온 변화, 태풍과 가뭄의 영향은 섬 생태계에 가장 먼저 나타나며, 이는 생물의 분포 변화와 서식지 이동 등 다양한 생태적 변화로 이어진다. 따라서 섬은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변화를 가장 먼저 포착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 현장이다.

우리나라 섬은 이러한 측면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국토 면적은 약 3.5%에 불과하지만, 국가 전체 생물종의 40%가 넘는 2만 5000여 종이 서식하고 있다. 오랜 시간 육지와 분리된 환경 속에서 형성된 독특한 생태계는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최근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이 섬과 연안 지역에서 새롭게 확인한 미기록 곤충 45종 가운데 25종이 열대·아열대성 곤충으로 나타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한반도 생태계가 점차 아열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징후이자, 섬이 환경 변화를 가장 먼저 드러내는 공간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섬의 생물다양성을 연구하는 일은 단순히 새로운 종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생물의 분포와 변화 양상을 장기적으로 관찰해 기후변화가 생태계와 인간 사회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고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과정이다. 또한 외래종 확산이나 생태계 교란과 같은 위험 요인을 조기에 파악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아가 미래 식량과 의약품, 친환경 소재 개발에 활용될 수 있는 생물자원을 확보하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섬의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섬의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연구하는 일은 자연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섬이 보내는 변화의 신호를 읽고 대비하는 일이야말로 기후위기 시대에 가장 현실적인 대응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yr200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