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들아, 내 동생" 46년 흘러도 그리움 가득한 5·18민주묘지(종합)

5·18민주화운동 46주년 앞두고 추모 발길 이어져
시민군 기획실장 막내딸 추모공연…밥 두 그릇 올린 90세 형도

제 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추모식에서 추모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 뉴스1 박지현 기자

(광주=뉴스1) 최성국 박지현 기자 = "아버지. 하늘에 우리의 공연이 잘 닿았을까요."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17일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추모식에서 추모 공연을 마친 김연우 씨와 동료들이 국립 5·18민주묘역에 안장돼 있는 연우 씨의 아버지 고 김영철 시민군 기획실장 묘비에 묵념을 올리고 있다. 2026.5.17/뉴스1 최성국 기자

5·18 추모식의 추모 공연을 맡은 '나비연'은 1980년 5월 당시 죽음과 민주주의, 평화, 사람, 사랑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고민했고 결국 선택한 오월 열사들을 춤사위로 기억하고 기렸다.

공연을 지켜보던 200여명의 유족과 시민들은 공연가들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몸사위로 먼저 떠난 열사들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공연을 마친 안무가 김연우 씨(46·여)는 동료들과 공연 복장 그대로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묘역을 찾았다.

김 씨의 아버지는 1980년 최후 항쟁 시민군 지도부의 기획실장이었던 고 김영철 열사.

김영철 열사는 1980년 5월 27일 새벽 옛 전남도청을 마지막까지 사수하다 계엄군의 총을 맞아 체포됐다. 이후 각종 가혹 행위를 당한 그는 18년간 고문 후유증과 투병하다 1998년 세상을 떠났다.

연우 씨의 어머니는 뱃속에 연우 씨를 가진 채 계엄군에 붙잡혀간 남편을 찾아 헤맸다.

아버지의 묘역 앞에 선 연우 씨는 "아버지. 그곳에서 공연을 잘 보셨느냐, 이 멋진 친구들이 아버지와 오월 영령들을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공연을 준비했다"며 동료들은 한명 한명 소개했다.

연우 씨는 "아버지와 오월 영령들에게 진심 어린 위로가 닿았기를 바라. 곧 또 인사드리러 올게"라고 말했다.

노경운 열사 묘 앞에는 조의조 씨(90) 부부가 작은 차례상을 차리고 있었다. 상 위에는 유과와 약과, 전, 대추, 국과 물이 놓였다. 조 씨는 술잔을 올린 뒤 한참 동안 묘 앞 바닥에 앉아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그는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몇 번이나 힘을 줘야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숨을 고르던 그는 다시 묘비를 향해 손을 뻗어 천천히 이름을 쓸어내렸다.

조 씨는 "나주에서 새벽부터 준비해서 왔다"며 “총각으로 떠난 배다른 동생이 혼자 외로울까 싶어서 영혼결혼식도 시켜줬다. 그래서 밥도 늘 두 사람 몫으로 해온다"고 말했다.

1980년 희생된 노경운 열사는 당시 18세 학생이었다. 조 씨는 묘비 앞에 한참 앉아 있다가 "성격 좋은 동생이었다"며 "46년이 지나도 아직도 그립제"라고 말했다.

제 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희생자 시신을 모실 관을 구하러 가다 계엄군 총격에 숨진 박현숙 열사의 가족이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2026.5.17 ⓒ 뉴스1 박지현 기자

조금 떨어진 박현숙 열사 묘역 앞에서는 언니 박현옥 씨가 하얀 소복 차림으로 묘비를 닦고 있었다. 그는 작은 수건으로 비석 표면을 여러 번 문질렀고, 먼지가 앉을세라 손바닥으로 연신 글자를 쓸어내렸다.

한동안 묘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박 씨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이내 다시 시선을 내려 묘비에 새겨진 동생의 이름과 글귀를 천천히 읽었다. 손끝은 쉽게 묘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박현숙 열사는 1980년 당시 송원여상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8세 학생이었다.

그는 전남도청에서 희생자들의 장례를 돕다 부족한 관을 구하기 위해 화순으로 향하던 중 '주남마을 버스 총격' 사건으로 숨졌다.

박 씨는 "세월이 흘러도 동생 생각은 늘 똑같다"며 "이렇게라도 얼굴 보고 가야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1980년 5월시민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전남대학교 학생 이정연 열사의 묘 앞에는 어머니 구선악 씨가 아들을 부르짖었다.

이정연 열사는 항쟁 마지막 날인 5월 27일 새벽 옛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구선악 씨는 "제 손을 붙들고 '우리가 하나라도 죽음으로서 잡초를 뽑겠다'던 아들의 목소리가 46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그리움에 가슴이 꽉 막힌다"고 말했다.

이날 묘역에는 이른 시간부터 참배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단체 깃발을 든 추모객들이 줄지어 들어섰고,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묘역을 둘러보는 방문객들도 눈에 띄었다. 경남 진주에서 왔다는 한 단체는 국화를 내려놓고 묵념했고, 각지에서 모인 교육대학교 학생들도 삼삼오오 묘역을 돌며 희생자들의 이름을 읽었다.

예비교사 네트워크 소속으로 부산에서 온 부산교대 학생 김동현 씨(22)는 묘역을 둘러본 뒤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김 씨는 "교과서에서 접할 때는 사건이 평면적으로 느껴졌는데, 직접 와보니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서사가 보였다"며 "교사가 되더라도 5·18을 단순한 역사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 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진행된 추모식에서 공연을 바라보던 오월어머니가 눈물흘리고 있다. ⓒ 뉴스1 박지현 기자

star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