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에 희생된 동생 외로울까봐"…46년째 밥 두 그릇 올린 90세 형
5·18 하루 앞둔 민주묘지 추모 발길 이어져
소복 입은 언니는 묘비 쓰다듬으며 한참 눈물
- 박지현 기자
(광주=뉴스1) 박지현 기자 = "한창 꽃다운 나이에 떠난 동생이 외로울까봐 밥은 늘 두 사람 몫으로 해와요."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노경운 열사 묘 앞에는 조의조 씨(90) 부부가 작은 차례상을 차리고 있었다. 상 위에는 유과와 약과, 전, 대추, 국과 물이 놓였다. 조 씨는 술잔을 올린 뒤 한참 동안 묘 앞 바닥에 앉아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그는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몇 번이나 힘을 줘야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숨을 고르던 그는 다시 묘비를 향해 손을 뻗어 천천히 이름을 쓸어내렸다.
조 씨는 "나주에서 새벽부터 준비해서 왔다"며 “총각으로 떠난 배다른 동생이 혼자 외로울까 싶어서 영혼결혼식도 시켜줬다. 그래서 밥도 늘 두 사람 몫으로 해온다"고 말했다.
1980년 희생된 노경운 열사는 당시 18세 학생이었다. 조 씨는 묘비 앞에 한참 앉아 있다가 "성격 좋은 동생이었다"며 "46년이 지나도 아직도 그립제"라고 말했다.
이날 묘역에는 이른 시간부터 참배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단체 깃발을 든 추모객들이 줄지어 들어섰고,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묘역을 둘러보는 방문객들도 눈에 띄었다. 경남 진주에서 왔다는 한 단체는 국화를 내려놓고 묵념했고, 각지에서 모인 교육대학교 학생들도 삼삼오오 묘역을 돌며 희생자들의 이름을 읽었다.
예비교사 네트워크 소속으로 부산에서 온 부산교대 학생 김동현 씨(22)는 묘역을 둘러본 뒤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김 씨는 "교과서에서 접할 때는 사건이 평면적으로 느껴졌는데, 직접 와보니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서사가 보였다"며 "교사가 되더라도 5·18을 단순한 역사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금 떨어진 박현숙 열사 묘역 앞에서는 언니 박현옥 씨가 하얀 소복 차림으로 묘비를 닦고 있었다. 그는 작은 수건으로 비석 표면을 여러 번 문질렀고, 먼지가 앉을세라 손바닥으로 연신 글자를 쓸어내렸다.
한동안 묘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박 씨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이내 다시 시선을 내려 묘비에 새겨진 동생의 이름과 글귀를 천천히 읽었다. 손끝은 쉽게 묘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박현숙 열사는 1980년 당시 송원여상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8세 학생이었다.
그는 전남도청에서 희생자들의 장례를 돕다 부족한 관을 구하기 위해 화순으로 향하던 중 '주남마을 버스 총격' 사건으로 숨졌다.
박 씨는 "세월이 흘러도 동생 생각은 늘 똑같다"며 "이렇게라도 얼굴 보고 가야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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