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국립묘지 의미…국가 예우 기준 손질 시급

[누가 국립묘지에 묻히는가⑦·完] 국가폭력 가해자가 영웅으로
역사 인식 혼란 초래…관련 법 개정·안장 제한 기준 마련 필요

편집자주 ...국립묘지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거나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그러나 국립 현충원 묘지에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에 관여한 계엄군 지휘관과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인사들 상당수가 안장돼 있다.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국가폭력의 가해자와 그로 인해 희생된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 잠들어 있는 셈이다. 뉴스1 광주전남본부는 5·18 46주년을 맞이해 현충원에 안장된 인물들의 현황을 점검한다. 국가는 누구를 기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7편에 걸쳐 나눠 싣는다.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을 앞둔 지난달 30일 대전현충원의 모습. 2026.5.7 ⓒ 뉴스1 이수민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이승현 기자 =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이들에 대한 예우가 유지되면서 "민주주의를 훼손한 자에게 국가가 면죄부를 준다"는 비판이 나온다.

내란에 가담한 인물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데 이어 국립묘지 안장 자격이 박탈된 인물에게까지 국가 차원의 예우가 이어지면서 '국가가 누구를 기리고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 3월 46년 만에 12·12 군사반란에 가담했던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 등 주요 임무 종사자 10명에 대한 무공훈장이 취소됐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전두환 씨와 노태우 씨를 비롯한 주요 임무 종사자 13명의 서훈이 먼저 취소된 바 있다.

하지만 서훈이 취소된 주요 임무 종사자들 모두 현충원 안장 자격은 유지된다. 군 복무 기간 20년 이상이면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해외에서는 국립묘지 안장을 엄격히 심사하고 사후에도 재평가를 통해 안장 자격을 박탈하고 있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 전 총통이 대표적 사례다.

1975년 사망한 프랑코는 마드리드의 국립묘지인 '전몰자의 계곡'에 묻혔다. 이후 스페인 정부는 2019년 프랑코의 시신을 파내 가족 묘지로 이장했다. 이를 주도한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이번 결정으로 국가의 공적인 장소에 독재자를 찬양하는 도덕적 모욕에 종말을 고했다"고 자평했다.

프랑스는 사회 유명 인사를 국립묘지인 '팡테온'에 안장하기 전 엄격한 검증을 거친다.

최소 10년 이상 유예기간을 두고 사망자의 정치적 공과를 검증한다. 프랑스 혁명가 미라보의 '배신행위'가 드러나 안장 자격을 박탈당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1789년 프랑스혁명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는 미라보가 사망한 뒤 그를 팡테온에 안장했다. 하지만 훗날 공개된 자료에서 미라보가 혁명 중에 루이 16세 측과 밀통한 사실이 드러났고 프랑스 정부는 그의 유해를 팡테온에서 끌어낸 바 있다.

프랑스는 사후 재평가를 통해 안장 자격을 박탈하거나 애초에 안장을 허용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

한때 프랑스의 '국부'로 칭송받았던 앙리 필리프 페텡 원수는 안장 자격조차 얻지 못했다.

페텡 원수는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공로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1940년 프랑스를 침공한 독일군에 항복하고 이후 괴뢰정부인 '비시 내각' 수반으로 나치 독일에 협력했다. 레지스탕스 명단을 나치에 제공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2차대전이 끝난 뒤 부역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고 대서양의 외딴섬에서 복역하다가 사망했다. 프랑스군 최고 계급인 원수까지 지냈으나 팡테온은 물론이고 유명 장군들이 묻히는 '앵발리드 묘역'에도 안장되지 못했다.

반면 12·12 군사반란 주동자인 노태우는 내란·반란죄가 확정돼 징역 17년형을 선고받고 전직 대통령 예우와 국립묘지 안장 자격을 상실했지만,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다.

경기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있는 노태우의 묘역은 지난 2022년 보건복지부로부터 국가보존묘역으로 지정됐다. 국가보존묘역은 국가가 역사적 보존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묘역이다.

노태우의 묘역은 대전현충원 전직 대통령 묘역보다 약 7배 넓은 550평 규모로, 일각에서는 '황금 묘역'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관리 인력과 유지 비용 역시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무력을 동원했던 계엄군 73명도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제 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사흘 앞둔 15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가 참배를 위한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뉴스1 박지현 기자

시민사회는 이러한 현실이 역사 인식의 혼란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관련 문제 제기는 수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국가보훈부 등 관계 기관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정호 변호사는 "원천적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는 인물들이 안장돼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이들의 묘비에는 광주학살과 관련된 내용은 전혀 기재돼 있지 않고 전쟁에 참여해 공을 세운 사람처럼 둔갑해 있다"며 "국가보훈부가 이미 안장됐다는 이유로 손을 놓을 것이 아니라 공적 재심사 등을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국가가 누구를 기리는 것이냐'는 의문도 나온다.

김순 광주전남추모연대 집행위원장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방식으로 국가 예우를 받는 건 국가가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을 기릴 것인가에 대한 기준조차 세우지 못한 것"이라며 "국립묘지법 개정과 안장 제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5·18기념재단 측은 세대가 바뀌면 기억은 전수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최경훈 진실기록부 팀장은 "12·3 비상계엄 관련자들이 감옥에 다녀온 후 어떤 예우를 받을지 모른다"며 "국립묘지의 역할과 의미가 훼손되고 있는 것을 모두가 방치하고 있다. 민간 재단이 아닌 정부에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민병로 전남대 5·18연구소장은 2019년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던 5·18 계엄군경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 등의 개정안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민 소장은 "5·18 진압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부상한 계엄군을 국가유공자·보훈대상자에서 배제하고, 자격 취소 시 국립묘지 이장까지 가능하도록 법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관련법을 세부적으로 명확하게 지정하면 해결할 수 있다. 국회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사회문화 특성상 한번 안장되면 이장이 매우 어려운 만큼 안장 심의 절차를 더욱 강화하거나 프랑스 사례처럼 일정 기간 안장을 유보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립묘지 법을 연구한 목포대 하상복 교수는 "안장 심의위원회에 오피니언 리더 등 일반 국민도 참여시켜 구성의 다양성과 실질성을 높여야 한다"며 "현행 구조로는 국민 여론과 괴리된 결정이 내려져도 이를 견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 보훈 이념인 '호국'과 '민주'를 각각 분리된 개념으로 볼 것이 아니라 두 가치를 교차시키는 교집합적 원리로 안장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 교수는 "호국과 민주 가운데 어느 한 측면이라도 논란이 있는 경우에는 프랑스 사례처럼 안장을 유보하고 사회적 평가와 공론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며 "한번 안장되면 이후 문제가 드러나도 이장이 쉽지 않은 만큼 처음부터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립묘지는 후대에 애국의 모델을 보여주는 공간"이라며 "반민주적 행적이 있는 인물이 애국자처럼 현충원에 안장되고 아이들이 그 인물을 보며 애국심을 배우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breat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