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월 광주' 총칼로 진압한 지휘관들 왜 국립묘지에 묻혀 있나

[누가 국립묘지에 묻히는가]①신군부 34명 중 13명 현충원에
박준병·소준열 등 5·18 유혈진압 지휘관 다수 포함

편집자주 ...국립묘지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거나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그러나 국립 현충원 묘지에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에 관여한 계엄군 지휘관과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인사들 상당수가 안장돼 있다.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국가폭력의 가해자와 그로 인해 희생된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 잠들어 있는 현실이다. 뉴스1 광주전남본부는 5·18 46주년을 맞이해 현충원에 안장된 인물들의 현황을 점검한다. 국가는 누구를 기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7편에 걸쳐 나눠 싣는다.

12·12 군사반란 관련 34인의 신군부 인사들의 육사 기수와 당시 계급, 생존 여부, 안장정보 등을 나타낸 표.(정성일 제공) 2026.5.8 ⓒ 뉴스1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이 잠든 현충원에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 유혈진압에 관여한 계엄군 지휘관들과 12·12 군사반란 가담자 상당수가 함께 안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법상 안장 배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군사반란이 성공하고 권력의 정상에 선 군 수뇌부의 인사가 발표된 뒤인 1979년 12월14일 보안사령부 구내에서 촬영한 이른바 '신군부 34인 기념사진'에는 12·12 군사반란 핵심 인물들이 담겨 있다.

이들 가운데 2명은 대통령이 됐고, 6명은 국회의원, 14명은 대장까지 올랐다.

현재까지 확인된 34인의 행적을 보면 12명은 생존해 있고, 18명은 사망했다. 4명은 행방이 확인되지 않는다. 사망자 18명 가운데 13명은 국립묘지인 현충원에 안장된 상태다.

대전현충원 안장자를 살펴보면 유학성(당시 국방부 군수차관보)·김윤호(육군보병학교장)·김기택(수도경비사령부 참모장)·박준병(20사단장)·정도영(보안사령부 보안1처장)·우국일(보안사령부 참모장)·송응섭(제30기계화보병사단 90연대장)·김택수(606부대 부대장)·남웅종(국군보안사령부 대공처장겸 합동수사단장)·이차군(국군보안사령부 군수처장) 10명이, 서울현충원에는 최예섭(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백운택(제71방위사단장)·이상연이 잠들어 있다.

이 가운데 유학성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생전 직접 참배했던 인물이다. 그는 군사반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반란군 승리 후 당시 요직이었던 제3야전군사령관으로 영전했다. 전두환·노태우 등과 함께 1996년, 12·12 군사반란과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돼 재판을 받았으며 징역 6년을 선고받았으나 결국 상고심 재판 중 사망했다. 신군부 핵심 인사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이 밖에도 5·18 유혈진압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진 진종채 전 2군사령관, 작전을 총지휘한 소준열 전 전투병과교육사령관, 계엄군으로 광주에 투입된 홍성률 전 1군단 보안부대장, 20사단장 박준병 등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인물들도 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특히 박준병은 전두환(당시 보안사령관)·정호용(공수특전사령관)·노태우(수경사령관)·이희성(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과 함께 오월단체에서 '5·18 오적'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현재까지 12·12 군사반란 관련 인사 가운데 국립묘지 안장이 취소된 사례는 없다.

이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것은 대부분 생전 형사 처벌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죄 판결 이전 사망했거나, 실형 선고 이후 특별사면 등으로 안장 자격을 유지한 경우가 상당수다.

현행 국립묘지법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거나 서훈이 취소된 경우 등을 안장 제외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현충원을 두고 국가보훈·추모 공간이면서 동시에 국가기억 체계의 불균형과 법적 공백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경훈 5·18기념재단 기록진실부 팀장은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국가폭력 가해자가 피해자들과 함께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breat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