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강철 소설가 산문집 '기억나지 않는 것들'출간
격랑의 시대를 함께 건너온 '이름 없는 자'들의 기록
- 조영석 기자
(광주=뉴스1) 조영석 기자 = 중견 소설가 정강철 작가 산문집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도서출판 '문학들'에서 나왔다.
"나는 왜 소설을 쓰고 있나. 그럴 때마다 들었던 회의는 깊었다. 글은 왜 쓰는가, 존재의 서슬 퍼런 확인이라는 팻말을 걸었다면 그거야 자신의 작업을 미화시킬 수 있는 방편일 수는 있겠지만 쓰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겠다는 그래서 글을 쓰는 행위가 무슨 업보나 운명쯤으로 내세우고자 하는 치장이기엔, 그간의 나의 세월은 한심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정 작가는 이 책에서 '소설 쓰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취미생활도 거두고 술도 마시지 말아야 했는데, 과연 나는 그렇게 살아왔느냐'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 확인은 책 첫 장에서부터 마지막 장까지 조용하면서도 묵직하게 흐른다.
고교 3학년 때 1980년 5·18을 겪었고, 군부독재와 싸우며 대학에 다녔던 세대. 하지만 중심에 있지 못하고 늘 주변을 떠돌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자조에서 자유롭지 못한 세대. 이 책에는 격랑의 시대를 함께 건너왔으나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온 자들의 삶이 절제된 언어와 진지한 사유로 빛을 내고 있다.
책 1부 '빗물의 온도, 문장의 습도'는 첫 경험처럼 인상적인 기억들로 엮였다. 젊은 혈기를 참지 못해 친구와 함께 지리산 종주를 나섰다가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둠 속에서 비박(Biwak)한 이야기, 인생의 중요 순간마다 어머니 손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나왔던 배냇저고리에 대한 기억, 형과 누나들의 글 쓰는 재주를 어깨너머로 훔쳐보며 흉내 냈던 추억 등이 남아 있다.
2부 '기억나지 않는 모든 것'에서는 한자 외워 쓰기를 못 해 아버지께 혼쭐 났던 기억과 함께 이제는 '옛날처럼 무섭지 않은 아버지가 슬프'고 '어머니의 굽은 등허리가 가엽'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작가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으나 잊고 싶은 기억도 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친구와 함께 시외버스를 타고 정읍 내장산으로 놀러 갔었다. 그리고 해 질 무렵 광주로 돌아왔는데, 멀리 군용트럭과 군인들이 보였다. 5월 18일이었다. 그날부터 광주는 소문으로 감금된 도시가 되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37년간 아이들을 가르친 작가는 3부 '일탈도 힘이 된다'에서는 남들이 걸었던 길보다 걷지 않은 길을 만들어 가라고 말한다.
"남들이 걷는 길을 벗어나는 것에는 일탈도 있다. 자제하고 속박하는 힘을 버리고 한 번쯤 일탈하고 싶은 충동을 깃발처럼 내걸고 싶은 학생이 있다면 불치병으로 도지기 전에 일탈해 보는 것도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
정 작가는 전남 영광에서 태어났다. 1987년 '오월문학상'과 198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이어 1993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았고, 줄곧 사회성 짙은 소재로 소외된 인간 모습을 그려왔다. 중국 텐진 조선족 삶의 현장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신·열하일기' 등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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