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쿵' '타닥타닥'…5년간 지속된 층간소음 갈등, 조정으로 풀었다

광주 광산구 이웃갈등 조정활동가, 163건 민원 해결
단절 이웃 간 소통 역할…대화와 체험으로 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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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1) 이승현 기자

'쿵쿵', '타닥타닥'

#1. 아파트 위층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뛰는 소리와 노랫소리는 A 씨에게 지난 5년 동안 끊이지 않는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다.

층간·생활 소음은 가장 평온해야 할 집을 지옥으로 만들었고, A 씨 가족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자녀들은 공부할 때마다 귀마개와 헤드셋을 착용했고, 가족들은 밤마다 잠을 설쳤다.

지속된 소음에 A 씨는 소음이 발생한 날짜, 시간, 종류 등을 기록으로 남기기까지 했다.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해지자 두통약을 장기간 먹어야 했고, 결국 이사를 고민할 정도로 지쳐갔다.

#2. B 씨 가족은 새벽마다 윗집 주민이 게임 중 내뱉는 고성과 키보드 치는 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천장을 두드리는 식으로 항의해 봤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이들 모두 아파트 관리사무소·층간 소음 관리위원회, 경찰 등 다양한 기관에 문의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광주 광산구 이웃갈등 조정활동가 교육 모습. (광산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이 늘면서 층간·생활 소음으로 인한 주민 갈등이 커지고 있다.

직접적인 항의는 되레 갈등을 심화시켜 형사 사건으로 번지거나 감정의 골을 깊게 해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

이런 가운데 광주 광산구의 이웃갈등 조정활동가 14명이 주민 간 대화와 타협을 이끌며 주목받고 있다.

30일 광산구에 따르면 구는 일상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 비화하기 전 자율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도록 '이웃갈등 조정 제도'를 만들었다.

광산구는 광주에서 아파트 비율이 85%로 가장 높아 층간소음과 같은 일상 속 갈등이 빈번하다.

이웃갈등 조정활동가는 지속된 갈등으로 대화가 단절된 이웃 사이에서 소통 창구 역할을 한다. 2인 1조로 갈등 당사자를 만나 중립적으로 의견을 듣고 화해를 위한 합의점을 찾는다.

이들의 조정 활동으로 해결한 갈등 민원은 지난 2022년부터 163건에 달한다. 5년간 층간 소음에 시달린 A 씨도 조정활동가의 중재로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A 씨는 조정 과정에서 그동안의 불만을 털어놓고, 윗집이 오후 9시 이후 조용한 생활을 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조정활동가는 윗집과 만나 입장을 들었고 윗집은 소음을 인정하고 사과 의사를 밝혔다.

다만 소음을 줄이기 위해 카펫과 소음 방지 슬리퍼를 사용하고 아이들을 장기 여행 보내는 등 노력했지만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을 털어놨다.

양측은 1·2차 예비조정과 본 조정을 거쳐 오후 10시 이후 소음 차단에 합의했고, 현재까지 합의 내용이 잘 이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 광산구 이웃갈등 해결 사례집. (광산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B 씨 역시 조정활동가를 통해 '소음 체험'을 하며 문제를 해결했다.

면담 과정에서 윗집 주민은 "저소음 키보드를 사용하고 소음 방지 매트를 까는 등 갖은 노력을 했는데 B 씨가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조정활동가는 양측 대화에 한계가 있는 점을 파악하고 소음 체험을 제안했다.

윗집에서 평소처럼 게임을 하고 그 소리를 모두가 B 씨 집에서 들어보는 방식이었다.

생각보다 큰 타격음과 벽을 타고 내려오는 소리에 윗집 주민은 놀랐고, B 씨가 겪어온 불편함을 실감했다. 소음이 큰 문제임을 확인하기도 했다.

체험 후 양측은 논의를 거쳐 오후 11시 이후 게임 소음을 발생시키지 않기로 하고 합의문에 서명했다.

광산구는 사례를 모아 주민들에게 이웃갈등 조정활동가를 알리고 해결 과정을 담은 사례집을 제작했다.

박병규 구청장은 "층간소음, 누수 같은 생활 갈등은 주민들의 삶의 질과 직접 연결되는 문제"라며 "이웃갈등 조정활동가 덕분에 대화를 통한 갈등 해결 문화가 확산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전문 인력과 지원 체계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pepp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