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왜 전자칠판 고치나"…과도한 행정업무에 무너지는 교사들

수업·담임·부장·시청각 업무…교사 죽음 계기로 토론회 열려
"학교 공통의 구조적 문제…교육에 집중하도록 업무 재설계해야"

25일 천안교육지원청 대회의실에서 교사의 교육활동 회복을 위한 학교 행정업무구조 개선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2026.8.25.ⓒ 뉴스1 이시우 기자

(천안=뉴스1) 이시우 기자 = 지난해 10월 충남의 한 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던 윤범진 교사가 과도한 행정 업무로 어려움을 호소하다 숨졌다.

수업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그는 학생 수 1300명이 넘는 대규모 학교에서 일주일에 22시간, 하루 평균 4.5시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교 운영을 위한 시청각계 업무도 맡았다. 기기 세팅부터 방송 송출, 정비까지 교내 방송과 관련된 모든 업무가 그의 몫이었다.

6월에는 중3 담임교사의 병가로 임시 담임까지 맡아 학급을 운영했다.

이어 과학정보부장 교사가 휴직하면서 부장직도 떠맡았다. 전자칠판 관리와 정보화기기 유지·보수 업무까지 추가됐다. 56개 교실에 설치된 전자칠판이 작동하지 않으면 수업을 제쳐놓고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과학교사이자 중3 담임, 과학정보부장에 시청각계 업무까지 맡은 그는 임시 모듈러를 포함해 연결 통로 없이 떨어져 있는 교내 건물 3곳을 쉴 새 없이 오르내려야 했다. 과도한 업무에 어려움을 호소하던 그는 결국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수업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25일 천안교육지원청 대회의실에서는 교사의 교육활동 회복을 위한 학교 행정업무구조 개선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고(故) 윤범진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사에게 주어진 과중한 행정업무와 학교 업무 구조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토론회에 참석한 현직 교사들은 과도한 업무 부담이 특정 학교만의 문제가 아닌 교육 현장 전반의 구조적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교사들은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지만 전문성과 무관한 업무에 치여 교사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김두리 교사(홍성 홍동중)는 "중등교사는 수업은 물론 담임, 생활지도, 평가, 기록, 상담 등을 동시에 수행해야 해 쉬는 시간에도 화장실 갈 틈이 없다. 여기에 행정 업무가 더해지면 결국 제출 기한이 있는 공문을 처리하느라 수업 연구나 학생과의 대화가 뒤로 밀리게 된다"며 "교사가 왜 전자칠판을 고치느라 수업을 포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김효성 충남교사노조 정책실장(아산 월촌초)도 "최근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교사들은 비본질적이고 과도한 행정 업무를 사직을 고민하는 사유 1위로 꼽았다"며 "나이나 결혼 유무 등 근거 없이 배정되는 행정 업무를 분리해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본질에 충실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충남 한 교사의 죽음, 교사는 왜 소진되는가?'를 주제로 발제에 나선 홍성두 서울교육대학교 교수는 교사 소진의 원인이 단순히 업무량의 문제가 아니라 '직무'(job)와 '업무'(work)의 개념을 혼동한 구조적 문제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사의 '직무'는 수업 설계와 실행, 학생 지도 등 전문적 훈련을 거쳐 수행하도록 위임받은 역할로, 학교라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수행하는 다양한 '업무'와는 구분해야 한다"며 "이런 혼동을 방치해 지속적인 개선 노력에도 교사의 업무 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최재영 충남교사노조 위원장은 "교사가 본연의 역할인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학교 업무를 재설계하고 행정 업무를 조정하는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며 "과도한 행정업무를 떠안은 고 윤범진 교사가 순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5일 천안교육지원청 대회의실에서 교사의 교육활동 회복을 위한 학교 행정업무구조 개선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2026.8.25.ⓒ 뉴스1 이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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