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자유로운 기체 줄 세우고 배열…탄소 포집·수소 저장 새 길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김지한 교수 연구팀 '가스 격자' 첫 구현

연구 이미지(AI 생성·KAIST 제공) /뉴스1

(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생명화학공학과 김지한 교수 연구팀이 아주 작은 구멍이 무수히 뚫린 다공성 물질 안에서 기체를 결정처럼 규칙적으로 줄 세우고 원하는 기체 배열을 만드는 소재까지 인공지능(AI)으로 설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11일 밝혔다.

연구팀은 미세한 구멍에 기체를 담거나 골라낼 수 있는 금속-유기 골격체(MOF)를 활용했다. MOF는 스펀지가 물을 머금듯 미세한 구멍에 기체를 담을 수 있어 일종의 '분자 스펀지'와 같다.

수많은 MOF 구조를 탐색해 기체가 제멋대로 흩어지지 않고 결정처럼 규칙적으로 배열되는 '가스 격자' 현상을 찾아냈으며, 나아가 AI를 활용해 원하는 기체 배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다공성 구조를 직접 설계하는데도 성공했다.

지금까지 다공성 소재 연구에서는 기체가 얼마나 많이 흡착되는지가 주요 관심사였다. 기체 분자 역시 소재 내부의 빈 공간에 무질서하게 흩어져 붙는다고 여겨져 왔다. 연구팀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기체가 들어가는 미세 공간을 정교하게 설계하면 기체가 자리 잡는 위치와 배열까지 조절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단일 원소 기체인 제논(Xe)을 이용해 이를 확인했다. 방대한 금속-유기 골격체 구조를 탐색한 결과, 특정 코발트 기반 다공성 물질(Co-CAU-36) 안에서 제논이 규칙적인 격자를 이루는 현상을 찾아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GCMC) 결과, 제논은 기공 안에 제멋대로 흩어지는 대신 '체심 입방 격자(BCC)'라는 일정한 결정 형태로 정렬됐다. 이는 MOF의 미세한 기공이 일종의 틀 역할을 해 제논 원자들이 자리 잡을 위치를 유도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기체를 섞었을 때 흥미로운 분리 현상도 나타났다. 산업적으로 분리 가치가 높은 제논과 크립톤(Kr)을 함께 넣자 제논이 먼저 규칙적인 껍질 형태의 격자를 만들고, 크립톤은 그 중심부에 자리 잡았다. 두 기체가 뒤섞이는 대신 서로 다른 공간에 나뉘어 자리 잡은 것이다.

이는 혼합기체를 분리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에는 주로 소재에 더 잘 달라붙는 기체를 선택적으로 잡아내는 방식에 주목했다면, 이번 연구에서는 기체가 만드는 ‘배열’에 따라 서로 다른 기체가 공간적으로 나뉘는 새로운 현상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또 원하는 모양으로 기체를 배열하기 위해 기계학습과 유전 알고리즘을 결합했다. 원하는 기체 배열을 먼저 정하고 AI가 이에 적합한 다공성 구조를 거꾸로 찾아가는 역설계 방식이다.

그 결과 연구팀은 체심 입방(BCC)은 물론 면심 입방(FCC) 형태로 기체를 배열할 수 있는 새로운 다공성 구조를 설계하는데 성공했다.

이 기술이 이산화탄소와 수소 등 다양한 기체로 확대되면 목적에 따라 필요한 기체를 선택적으로 포집·분리하거나 효율적으로 저장하는 소재 설계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향후 이산화탄소, 물, 탄화수소 등 보다 복잡한 분자계로 소재 설계를 확장하고 실험 검증과 연계해 응용 가능한 가스 격자 소재 설계 플랫폼으로 연구를 발전시킬 계획이다.

왼쪽부터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김지한 교수, 김영훈·김도훈 박사과정, 김승우 석사과정.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임윤성 박사. (KAIST 제공) /뉴스1

김 교수는 "이번 연구는 기체를 다공성 물질 안에서 결정처럼 줄 세운 첫 사례"라며 "이산화탄소 등 다양한 분자에 적용하면 목적에 맞는 분리·저장 소재를 설계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김영훈·김도훈 박사과정이 공동 제1 저자로 참여하고 김승우 석사과정과 임윤성 박사가 제2 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온라인 게재됐다.

jongseo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