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셋·고" 달라진 산불대응 인명피해 0…함양·밀양 일사불란 진화

과거와 달리 실행 대기 단계서 취약계층 먼저 대피 조치
산림청장 선제적 지휘권…지자체 진화인력 동원 전무는 아쉬움

23일 오후 경남 밀양 삼랑진읍 검세리 한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에 확산되고 있다. 2026.2.23 ⓒ 뉴스1 윤일지 기자

(대전=뉴스1) 박찬수 기자 = 본격적으로 봄철 산불이 발생하는 3, 4월도 아닌 2월에 대형산불이 2건이나 발생했다. 함양에서는 지난 21일 오후 9시 14분께 산불이 발생해 산림 234㏊(축구장 328개)를 태우고 23일 오후 5시 주불이 진화됐다. 43시간 46분 만이다. 밀양에서는 지난 23일 오후 4시 10분 산불이 발생해 산림 143㏊(축구장 약 200개 규모)를 태우고 24일 낮 12시 30분쯤 주불이 진화됐다. 20시간 20분 만에 진화가 종료됐다.

다행인 점은 함양과 밀양 산불 모두 '레디셋고 시스템'에 따라 주민들이 선제적으로 대피해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건조한 날씨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주로 3월 중순에서 4월 중순에 집중되었던 산불이 연중화 추세를 보인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군 헬기 등 협조체제, 신속한 주민 대피 시스템, 재난 우려 시 초기 산림청장 지휘권 등 효과적이었던 진화 체계 수행과 함께 산청 산불 관련 경남도청 공무원 3명 검찰 송치로 야기된 인근 시군의 소극적 대응 등 개선점도 살펴본다.

군 등 산불 유관기관들 일사불란한 합동 작전

우선 산림청을 중심으로 소방, 군, 경찰, 기상청 등 산불 유관기관들이 일사불란하게 펼친 합동 작전을 꼽을 수 있다.

육군은 산불 진압 과정에선 담수 용량(5000리터)인 CH-47 치누크 헬기 12대와 UH-60 블랙호크 헬기 15대를 투입했다.

지난 21일부터 충남 서산과 예산, 경남 함양과 밀양에 500여 명의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 잔불 정리, 방화선 보강, 위험지역 접근 통제 등 후속 지원을 수행했다.

소방은 민가 방향으로 산불 확산 저지 및 산불 진화 차량의 진화용수 공급을 지원하는 한편 경찰은 교통통제로 산불 진화 차량의 현장 진입을 도왔다.

기상청은 이동식 기상관측 차량 등을 설치하여 산불진화 기상여건을 제공하고, 함양에서는 KT가 재난안전통신망 유지를 위해 이동기지국 설치하기도 했다.

새 주민 대피 지침 '레디셋고(Ready-Set-Go)'

산불확산 예측에 따른 신속한 주민 대피도 빼놓을 수 없다.

행정안전부, 산림청, 기상청 합동으로 만든 개선된 주민 대피체계를 적용한 결과 인명피해 제로를 실현했다.

올해 첫 대형 산불인 경남 함양 산불과 밀양 산불의 인명피해가 없었던 이유는 정부의 새 주민 대피 지침 '레디셋고(Ready-Set-Go)' 시스템의 성과로 분석된다.

새로운 시스템에는 최대순간풍속이 초속 20m 이상이면 지역 상황을 종합 고려해 기존 마을 단위에서 읍·면·동, 시·군·구 단위까지 대피할 수 있는 계획 등을 담았다.

산불확산예측시스템을 참고해 요양원 및 장애인 시설과 같은 취약 시설은 사전대피하고, 야간 중 산불 확산 우려가 있으면 일몰 전까지 사전대피를 완료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특히 산불확산예측시스템의 위험구역을 토대로 주민 대피 단계를 '준비(Ready)-실행 대기(Set)-즉시 실행(Go)'의 3단계로 체계화했다.

준비 단계에서는 산불 발생 가능성에 주의하고 실행 대기 단계에선 취약계층이 먼저 대피하도록 하며 즉시 실행 단계에선 전체 주민이 대피하도록 한다.

함양과 밀양 산불에서도 야간 산불 확산 등이 예측되면서 레디셋고 시스템에 따라 주민이 대피했다.

함양 산불은 산불 확산 예측 결과에 따라 피해지 인근 마을 주민 164명이 선제적으로 대피해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 산불은 순간최대풍속 초속 20m 이상의 강한 바람과 건조한 날씨, 두꺼운 낙엽층, 암석 급경사지 등 기상·지형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밀양 산불에서도 개선된 시스템에 따라 주민 안전 확보를 위해 선제적으로 대피 조치를 실시해 인근 3개 마을 주민과 요양병원 입소자 등 184명이 대피해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박은식 산림청장 직무대리는 "지난해 영남 산불 이후 개선된 주민 대피체계를 이번 산불에서 적용했다"며 "새로운 대피체계에 맞춰 지자체 주도로 경찰에 협조받아 주민들을 안전하게 선제적으로 대피시킨 결과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산림청장 선제적 지휘권 인수 효율성 제고

산림청의 선제적인 지휘권 인수로 산불유관기관들을 유기적으로 작동케 한 점도 눈길을 끈다.

기존에는 산림청은 1000ha 이상 혹은 두 개 시도 이상 걸친 규모의 산불로 확산하기 전까지는 개입할 수 없었으나, 2025년 10월부터 재난성 대형 산불이 우려되는 시기에는 산림청장이 10∼100㏊ 규모의 소규모 산불이라도 지휘체계를 가동할 수 있도록 했다.

함양의 경우는 지속적인 강풍, 건조의 산불 확산에 유리한 조건임을 감안, 22일 오후 10시부로 지휘권을 함양군수에서 산림청장으로 전환됐다. 밀양도 민가와 인접한 산불 현장으로 인명피해 예방, 재산 보호를 위해서 24일 자정 부로 지휘권을 밀양시장에서 산림청장으로 전환한 것이다.

산림청은 지난 1월 대구·경북 동해안 지역을 담당하는 '동해안 국가산불방지센터'와 경남·부산·울산 남부권 지역을 전담하는 '남부권 국가산불방지센터'를 출범시켰다.

새롭게 신설된 남부권 국가산불방지센터가 진화 전략, 자원 배치 등 총괄 진화 지휘를 위임받아 진화를 체계적으로 수행했다. 국가산불방지센터장 아래에 산림청 진화 자원뿐 아니라 함양군, 밀양시의 진화자원을 배속시켜 일사불란한 지휘를 했다.

시도지사의 경우 전문성, 인력, 장비, 타 중앙부처 협조 애로 등으로 사실상 진화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다른 의견으로 산림청 내 최소한 1급 산림재난안전본부장 자리 신설 목소리도 있다.

봄철에는 하루에 20~30건씩 산불이 동시다발 하는 경우가 많다. 산림청장 현장 지휘 시 효과적으로 주불진화가 이루어질 수 있으나, 청장이 모든 지역을 다니며 지휘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경우 산림청 상황실장을 차장이 맡고, 현장에 국장급 이하가 가야 하는데, 직급상 진두지휘에 애로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산림청 내 최소한 1급 산림재난안전본부장 자리 신설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재난 대응 공무원 송치로 얼어붙은 관가…인근 지자체 동원 전무

이번 산불에서 다소 충격적인 것은 경남 함양군, 밀양시 인근 지자체의 산불진화자원의 동원이 없었다는 점이다.

경남도청 공무원 3명이 지난해 산청 산불(2025년 3월) 진화 과정에서 안전조치·장비 점검을 소홀히 한 채 인력을 투입해 9명의 사상(4명 사망·5명 부상) 사건을 유발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산불 진화 중에 발생했으며, 사망 4명·부상 5명으로 총 9명 사상이 발생했다. 경찰은 산불현장 통합지휘본부 지상진화반 소속 도청 공무원 3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경찰은 강풍 등 기상정보로 확산 위험을 예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교육·장비 점검 없이 창녕군 공무원과 진화대원을 투입한 점을 문제 삼았다. 또한 지휘본부와 진화대원 간 통신망이 원활하지 않았고, 안전교육·장비 점검이 미흡했다는 점을 수사 근거로 제시했다.

이에 경남도는 재난 대응의 결과적 책임을 물으면 업무 기피·대응 위축이 우려된다고 반발하며, 형사처벌을 재난 활동의 예외로 보아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경남도청공무원노조도 인명사고만으로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시스템 보완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난 대응 가운데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한 것을 재난 대응 공무원에게 그 탓을 돌리면 재난에 소극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다.

pcs420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