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겠지 했다가"…저수조 등 밀폐공간 잇단 사고, 안전 소홀이 원인

'산화·미생물 증식' 산소 부족 환경, 순식간에 의식 잃을 수도
보호구 착용·감시인 배치 필수…'찾아가는 원-콜 서비스' 활용을

11일 충남 천안시의 한 재활병원 병원장 등 직원 4명이 물탱크 내부에서 질식해 쓰러졌다. 병원 물탱크 내부 모습.(천안동남소방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5.11.11/뉴스1

(전국 종합=뉴스1) 이시우 김동규 강미영 최창호 기자 = 질식 우려가 높은 밀폐 공간 작업장에서 기초 안전 수칙을 소홀히 한 인명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 충남 천안의 한 재활병원 저수조에서 병원장 등 4명이 질식해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병원 외부에 설치된 저수조는 콘크리트 구조에 지하 1, 2층 규모로, 병원은 보수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사고 당일 아침 저수조 2층에 혼자 내려간 직원이 연락되지 않자 직원들이 진입했다가 같은 장소에서 연달아 쓰러졌다. 보고를 받은 병원장도 지하 1층에 내려갔다가 함께 사고를 당했다.

저수조는 사람 1명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50×70㎝ 크기의 외부 출입구 외에는 환기 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들은 밀폐된 공간에 진입하면서 마스크 등 보호장구도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저수조 내부에서는 시너가 발견됐고, 사고 후 실시한 공기질 조사에서는 가연성이 있는 유독가스가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

다행히 이들은 구조 뒤 의식을 되찾는 등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부는 작업 중지를 명령하고, 사고 원인과 안전 수칙 위반 여부 등을 조사 중이다.

앞서 지난달 25일에는 경주 두류공단 내 아연 제조공장에서 수조 내 배관공사를 하던 근로자 3명이 유독가스 중독으로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사고 현장에서는 일산화탄소가 검출됐지만 작업자들은 보호장구를 지급받지 못한 채 저수조에 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0일에도 경남 고성의 한 양식장 저수조에서 작업하던 근로자 3명이 유독가스 중독으로 추정되는 사고로 숨졌다.

27일 경북 경주시 안강읍 두류공단에 있는 아연제조업체에서 발생한 근로자 3명 사망사고와 관련 현장 합동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2025.10.27/뉴스1 ⓒ News1 최창호 기자

밀폐 공간 작업장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기본적인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밀폐공간 작업 시 사전에 위험 요인을 파악해 제거하고, 사고 시 대처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작업자는 작업장 출입 시 개인 보호구를 착용하고, 외부에서는 별도의 감시인이 작업자를 주시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안전 수칙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장인 안호영 의원(전북 완주·진안·무주)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밀폐 공간 질식사망사고 14건 중 12건(85.7%)은 산소·유해가스 농도측정을 하지 않고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14건 중 10건(71.4%)은 보호구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감시인을 배치하지 않은 경우도 9건(64.2%)에 달했다.

안호영 의원은 "최근 급증한 밀폐 공간작업 질식 사망사고 대부분이 기본적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아 발생한 전형적인 인재(人災)"라며 "밀폐 공간작업 시 안전보건교육 이행 여부를 철저히 점검해 사망사고를 근절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고용노동부는 이같은 밀폐 작업장의 사고 예방을 위해 찾아가는 질식재해예방 원-콜(One-Call)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이는 밀폐공간 작업 시 전화 한 통화로 사업장이 원하는 시기와 장소에 전문가가 방문해 위험 요인을 점검하고, 장비를 대여해 주는 사업이다.

전문가가 작업장의 산소·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해 주고, 가스농도측정기와 환기팬, 마스크와 공기호스 등이 포함된 송기 마스크를 빌릴 수 있다.

전문가의 기술지도까지 이뤄져 사망사고를 예방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저장용 탱크 등 밀폐 공간은 산화나 미생물 증식, 유기물 부패 등으로 공기 중 산소가 부족하다"며 "유해가스 작업장은 산소 부족을 촉진하고, 신체의 운동 능력을 떨어뜨려 질식 위험성이 매우 높아 안전 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밀폐 공간은 작업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며 "저수조와 같은 밀폐 공간에 작업을 계획하는 사업장에서는 찾아가는 원-콜 서비스 등을 적극 활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11일 충남 천안시의 한 재활병원 물탱크에서 병원장 등 직원 4명이 질식한 사고 현장에서 산업안전보건공단 직원이 물탱크 내부 진입 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2025.11.11/뉴스1 ⓒ News1 이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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