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KT 등 이통사, 자존심 앞세워 고객 편의 외면

자사 건물 지하에 경쟁사 서비스 안 돼...서비스 개선 필요

전국 어디에서나 터지는 이동통신 서비스를 지향하는 이동통신사들이 상대 이통사 건물만큼은 업계 불문율을 이유로 서비스 확장에 소극적이어서 고객 불만을 사고 있다.

이통사는 업계 불문율이자 일종의 신사협정이라고 설명하지만, 근간에는 업체 간 자존심 경쟁이 깔려 있어 고객 불편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회사원 김 모 씨(40·대전 서구)는 23일 이통사 건물을 잇달아 방문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김씨는 이날 서구 둔산동 SKT 둔산사옥에 들러 지하 3층에 주차한 뒤 직장동료와 급하게 통화하려 했지만, 전화를 걸 수 없었다. 김씨 휴대전화 액정에 ‘서비스 안 됨’이 표시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SKT 사옥에서 일을 보고 나온 뒤 길 건너편 KT 탄방점 건물로 이동해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렸을 때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김씨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김씨가 있는 곳은 지하 5층이었던 것이다.

SKT 사옥 지하 3층에서는 불통이었던 김씨 휴대전화가 더 깊은 KT 사옥 지하 5층에서는 터졌던 이유가 뭘까?

답은 김씨가 가입한 이통사에 숨어 있었다. 김씨는 KT 서비스 가입자였던 것.

김씨는 “처음에는 SKT 사옥 주차장의 지하 대피소 표시를 보고 그러려니 했는데 더 깊은 KT 건물 지하에서 통화가 되는 것을 보고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이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통사는 이에 대해 경쟁사 건물에 서비스를 넣지 않는 게 업계 불문율이라는 입장이다.

SKT 홍보팀 관계자는 “보안상의 이유로 사옥에 경쟁사 중계기를 설치하는 게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지하층은 전파가 잘 안 닿지만, 지상에서는 경쟁사의 이동통신 서비스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KT 대전마케팅단 한 관계자는 “(방문객에 대한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이통사 사옥에 경쟁사 통신설비를 까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이는 업체 간 불문율이다”며 “특히 KT 탄방점과 SKT 둔산사옥은 문정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데 KT 건물높이가 SKT 사옥보다 낮자 탑을 세워 높이를 맞출 정도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자존심 대결이 치열하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해당 건물에 통신사만 단독으로 입주한 것도 한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여러 업체가 함께 입주해 있는 KT 둔산점은 입주자 편의를 위해 지하 주차장에서도 다른 이통사 서비스가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아무리 이통사 사옥일지라도 방문객 중에는 다른 이통사 서비스 가입자도 있을 수 있는 만큼 고객 불편을 외면하는 이통사 간 신사협정은 폐지돼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김씨는 “이통사 건물에 해당 이통사 가입자만 출입하는 것도 아니고, 요즘은 이통사 변경도 빈번해 타사 가입자도 잠재 고객이라고 보는 게 맞다”며 “자사 서비스 가입자가 경쟁사 건물에서도 무리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신사협약을 맺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이통사 관계자는 “고객을 생각한다면 자사 건물에서도 경쟁사 서비스가 이뤄지도록 하는 게 맞다”며 “하지만 VIP급 헤비 이용자의 클레임이 있으면 모를까 불문율을 깨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eruc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