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꾼 잡겠다고 농사꾼까지…'농지 전수조사'에 농민들 "불안"

포항 7만여필지 현장 조사…구미·울진도 대규모 점검
고령농·상속농·임차농 "투기와 농촌 현실 구분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점검회의 겸 국무회의에서 자료를 보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2026.5.6 ⓒ 뉴스1 허경 기자

(대구ㆍ경북=뉴스1) 신성훈 기자 = 정부가 농지 투기를 막기 위해 전국 농지에 대해 대대적인 전수조사에 나서자 고령 농업인과 상속 농지가 많은 경북 농촌에서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19일 농림축산식품부와 경북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5월부터 1996년 농지법 시행 이후 취득한 농지를 대상으로 소유관계와 실제 경작 여부, 불법 임대차와 무단 휴경·전용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지난 7월까지 행정정보와 위성사진 등을 활용한 기본조사를 실시한 후 지난달부터 위반이 의심되거나 현장 확인이 필요한 농지를 대상으로 심층 조사에 들어갔다. 경북에서도 대규모 조사가 진행 중이다.

포항은 올해 11만 4864 필지, 1만 2399㏊가 전수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기본조사 후 현장 확인이 필요한 7만 1000여 필지, 7800㏊를 추려 연말까지 실제 경작과 불법 임대차·전용 여부 등을 확인한다.

구미도 농지 7만 5958 필지를 대상으로 100여 명의 조사 인력을 투입해 소유관계와 실제 경작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울진에서는 5만 4460 필지, 5187㏊가 조사 대상이다. 울진군은 전수조사를 피하려는 지주가 기존 임대차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할 경우 실제 농사를 짓는 임차농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보고 '임차농 보호 신고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울릉에서는 농지 5528 필지, 1254㏊ 가운데 1821필지가 심층 조사 대상으로 분류됐다. 관외 거주자 소유 농지와 공유 취득 농지, 경매로 취득한 농지, 기본조사에서 위법 소지가 확인된 농지 등이 포함됐다.

문제는 농지 투기와 거리가 먼 농촌에서 고령이나 질병으로 직접 농사를 짓지 못해 이웃에게 농사를 맡겨온 농지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돼 농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경북 농촌에서는 고령 농업인이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워지면 이웃 주민에게 농지를 맡기고 일정량의 농산물이나 임차료를 받는, '도지' 형태의 임대차가 오랫동안 이어져왔고, 부모에게 농지를 상속받은 자녀가 도시 등지에 살면서 마을 주민에게 농사를 맡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영양에서는 타지에 사는 60대가 25년 전 부친에게 물려받은 농지 9900㎡를 직접 경작하지 못해 이웃 주민에게 농사를 맡겨왔는데, 이번 조사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농지를 팔려고 내놨지만 매수자를 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성의 조사 농지는 12만 6198 필지, 1만 7320㏊에 달한다. 농촌 고령화가 심각한 지역인 만큼 고령·질병 등으로 이웃 농민에게 경작을 맡긴 농지와 투기 목적의 불법 임대차를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의성에서 마늘 농사를 하던 70대 A 씨는 "평생 농사를 지었지만 나이가 들어 몸이 따라주지 않아 이웃에게 농사를 맡긴 것인데, 이런 농지까지 투기로 보는 건 농촌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것 같다"며 "농사 지을 사람도, 땅을 살 사람도 없는 것이 농촌 현실"이라고 말했다.

농지 거래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예천과 안동의 농협 관계자들은 "2년 전만 해도 3.3㎡당 14만 원에 거래되던 일부 우량농지가 최근 9만 원에도 매수자를 찾기 어렵다"며 "농지 가격이 떨어지고 거래가 어려워지면 농민뿐 아니라 농지를 담보로 대출을 내준 지역농협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투기 목적의 위반과 농촌 현실에서 발생한 위반을 구분해 조치하겠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는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농지를 취득해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기 행위는 엄정하게 조치하되, 고령화와 농촌 인력 부족 등으로 발생한 경미한 위반은 농촌 현실을 고려해 정상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수립 이후 78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 농지 전수조사가 5월부터 시작된다. 올해부터 내년까지 2년에 걸쳐 전국 전체 농지 195만㏊를 2단계로 나눠 조사하며 올해 1단계 전수조사는 전국 약 115만ha가 대상으로, 땅값이 비싼 경기도와 수도권 중심으로 진행될 계획이다. 사진은 1일 경기도의 한 농지의 모습. 2026.4.1 ⓒ 뉴스1 김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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